*이번 방송에서 북한 노동자를 지칭하는 음성은 대화를 재구성해 음성 대역을 활용해 녹음한 것입니다.
북한 노동자들의 땀 : 아프리카 르네상스 조각상
[북한 노동자]우리 조선 사람들이 일하는 데 대해서는 상부에서 의도하는 대로 밑에 사람들이 죽여주는 대로 해요. '이거 오늘 해야 한다' 그러면 관계없어요. 쭉 끝내버려요. 여기 사람들도 좋아해요.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혈통이야 어디 가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국제 탐사보도 단체인 ‘조직범죄∙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가 지난 5월 세네갈에서 어렵게 만난 북한 노동자는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 이야기를 꺼내자, 북한 노동자들의 부지런한 면모를 자랑했습니다.
건장한 아프리카 남성이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 아프리카 최대 규모로 꼽히는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입니다.
[북한 노동자] 서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동상이에요. 옛날에 세네갈 (압둘라예)와데 대통령이 조선하고 관계가 좋았는데 그때 한겁니다. 이거 가지고 세네갈 자체에서 시비가 많았어요. 그 다음 미국, 프랑스, 영국이 압력도 가하고. 그런데 지금 이걸로 세네갈 관광 많이 벌죠.
북한 ‘만수대창작사’ 소속 예술가들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현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의 해외 노동자를 앞세운 외화벌이 문제점을 지적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취재진은 현지 외교 소식통을 포함한 복수의 소식통으로부터 북한 노동자들이 세네갈 현지 건설업체에 고용돼 외화벌이에 내몰렸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세네갈을 찾았습니다.
2017년 통과된 유엔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2019년까지 해외에 있는 모든 북한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대북제재가 규정한 노동자 송환 기한인 2019년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 북한은 국경봉쇄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 약 10만 여명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식민 지배의 흔적을 보듯 곳곳에 회전 교차로가 있는 세네갈 수도 다카르 시내. 신호등 없는 무질서와 혼잡함 속에서도 나름 차량과 보행자 사이에 교통 규칙이 있습니다.
마치 사고가 날 것 같은 아슬아슬함에 몇 번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소규모 현지 업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수소문 끝에 현지소식통(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 요청)으로부터 북한 노동자가 한 사업가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기자] 이야기를 해보니 만났던 때가 작년이었대요. 자기 사무실에 인테리어(내부공사)를 맡기기 위해서 이분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 전화를 해서 맡겼더니 북한 사람이 같이 와서 일을 했다고….
취재진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현지 사업체의 연락처를 어렵게 구해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라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을 북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다카르 시내에 식당을 새로 열려고 하는 사업가로 소개하며 ‘실내 공사 견적을 의뢰하고 싶은데 직접 만날 수 있냐’고 제안했습니다.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를 포함해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돼 있고 기자와 접촉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사업체 대표는 다카르 시내의 한 카페 앞에서 오전 11시에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약속 시간으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난 오후 2시. 한 트럭에서 두 남성이 내립니다.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한 남성, 북한 노동자로 보입니다.
취재진이 질문하자 이 남성은 자신을 조선(북한)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기자] 조선분이세요?
[북한 노동자] 네, 한국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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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생활하는 북한 노동자
공사 견적에 관한 문의를 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이 세네갈에 6년 이상 체류중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북한의 국경이 봉쇄되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고, 북한 당국의 승인이 있기 전까지는 계속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자] 원래는 오래될 계획없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들어가고 있죠. 조국에서 이거 들어오라고 해야….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 파견된 대부분의 북한 노동자가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이후 최소 4년 넘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 여기와서 일감이 없어서 처음에는 돌아다니다가 여기 세네갈 건축 디자인이 돈이 작아요. 그래서.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요) 여러가지로. 여기와서 처음에는 산업 건설 했었는데, 이거 하나로는 안되요. 이거 안되겠다 해서는 여러곳으로 진출하면서 잘 모르면 자료 찾아보고.
[기자]하루 일당이 얼마나 되시나요?
[북한 노동자]우리는 하루로 일은 안하고 한달.
[기자] 일할 때 담배 많이 피시죠?
[북한 노동자] 하루에 한 갑 반정도. 일감 없을 때가 더 많이 피고, 일감 없으니까 많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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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반가웠던 걸까?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민감한 이야기엔 답변을 피합니다.
[기자] 그럼 세네갈에 몇 분이나 계세요?
[북한 노동자] 그렇게 민감한 정보는 조금….
[북한 노동자] 제가 서두에 말하겠지만, 지금 조선과 한국 관계가 좋지 않아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은 노동당 간부 또는 보위부 직원의 감시 아래 집단으로 생활하는데, 이 노동자는 비교적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기자] 어디 많이 다니셨어요?
[북한 노동자] 여기뿐 아니라 다카르를 벗어나 생루이, 카올라크. 조선이나 한국은 먹을 곳 많고 놀 데가 많잖아요, 가볼 데도 많고…. 그런데 여기는 갈 데가 없어. 바다 밖에는 없으니까.
과거 북한 노동자로서 중동 오만에 파견된 뒤 2018년 한국으로 탈북했던 최명천 씨도 RFA와 통화에서 “당시 북한 대사관이 없던 오만에서는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생활했다”고 말했습니다.
[최명천]저 같은 경우는 자유분방하게 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오만 대사관이 없었고요. 그리고 제가 나갔을 때 기존의 당 비서와 보위부 요원들이 임기가 돼서 다 (본국으로) 들어갔어요.
현재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관도 이미 지난해 11월 철수한 상황입니다.
" 통일되면 감격있게 만나겠죠 "
이역만리 낯선 땅, 이곳에서 6년 이상 홀로 지내 온 그에게 가족은 늘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기자] 가족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립니다.
[북한 노동자] 조국에 아직도 있어요.
[기자] 보고 싶으시겠다.
[북한 노동자]말할 것도 없죠. 근데 일 없어요. 애들도 다 컸고요.
40~50대로 보이는 그는 북한에 남겨둔 자녀가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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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외로우시겠네요. 여가 시간에는 뭐 하세요?
[북한 노동자]돈 버는 게 기본이니까 자질 향상을 위해서 (시간을 씁니다.) 내가 아는 것만큼 버니까. 아무 쪽이든 누가 '이런 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가만히 보면 대학 졸업은 상관없어요. 전문가가 따로 없어요. 하면 된다니까. 한국 분들이나 조선 사람들 머리가 좋잖아요. 처음엔 몰라도 한 번 보면 쉽게 할 수 있죠.
2015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해외노동자 출신 탈북민 20명을 인터뷰해 발간한 ‘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노동자 대부분이 임금의 80% 이상을 북한 당국에 바치는 등 임금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정작 노동자들은 이것이 노동 착취인지 모른 채 낯선 땅에서 국가와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북한 노동자는 헤어질 때쯤 다시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자]통일이 되면 감격있게 만나겠죠
아직 북한 당국으로부터 송환 통보를 받지 않은 북한 노동자들은 마음대로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북한 대사관까지 철수한 상황에서 그들은 사실상 세네갈에 기약없이 방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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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세네갈 회사'
이처럼 세네갈 현지에는 아직 북한 노동자가 남아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유엔대북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하청업체와 모종의 계약을 맺어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2021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적자들로 이뤄진 '코르만 건설'은 세네갈에서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해왔습니다.
이 보고서는 ‘코르만’이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가짜회사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7년 10월 북한 건설 회사 ‘코르만 건설(Corman Construction)’은 세네갈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하나인 EMG의 자회사인 세네바와 다카르 해변가에 고급 호텔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아울러 세네갈 언론 리버레이션은 2019년 세네갈의 신도시 프로젝트 쟘나조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세네갈 아랍에미레이트 합작 기업인 세메르가 코르만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공개된 사진에는 유엔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노동자자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세네갈 정부는 해당 매체에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관련 조사가 진행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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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복수의 소식통으로부터 북한 노동자들이 아직도 세네바가 진행중인 해변가에 고급 호텔 건설일을 하고 있단 소식을 듣고 세네바측에 연락을 했습니다.
취재진을 한인 사업자라고 소개하고 언어가 통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싶단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그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현재 회사가 3명의 북한 기술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월 25일부터 수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습니다.
9월 11일 EMG 그룹 산하 세네갈 피니시 프로필의 이브라힘 디알로 국장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디알로 국장] 세네바 CEO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네바는 북한 노동자들과 계약을 맺었지만 2019년, 미국 대사관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계약을 맺고 있지 않습니다.
*해당 취재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조직범죄∙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가 협력해 이뤄졌습니다. 북한 노동자와 기자의 신변 안전, 원활한 취재를 위해 일부 과정에서 언더커버 취재가 이뤄졌음을 알립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 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