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체력검정 지시에 북 주민들 “황당”

앵커: 요즘 북한 각지에서 ‘인민체력검정’이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국은 체육 생활화를 통한 체력 증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기업소 간부들은 생산 과제가 산더미인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1일 “요즘 전국적으로 인민체력검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당국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지난 주 토요일(19일) 기업소에서 인민체력검정을 진행했다”며 “어쩌다 하는 사업이라 절반 놀음식으로 진행됐지만 종목별로 나름 형식은 제대로 갖춰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인민체력검정은 노동력과 국방력 강화를 목적으로 주민들의 체력을 점검하는 사업으로, 북한에서 그 역사가 꽤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정 종목은 건강태권도, 대중율동체조, 달리기, 높이뛰기, 너비뛰기, 철봉 현수(턱걸이), 엎드려 팔굽혀펴기 등 15개 정도로 구성되며, 통과 기준은 남녀별·연령별로 다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식통은 “인민체력검정이 존재한 지 오래되었지만 정식 검정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과거 매년 정상적으로 진행되다가 고난의 행군(1990년대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사라졌는데 최근 당국이 다시 부활시키려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요 몇 년간은 평양을 비롯해 생산이 진행되는 중요 기업소에서만 검정이 진행되고 생산을 못하는 지방 공장, 기업소는 하지 않았었다”며 갑자기 모든 기관, 기업소에서 다 실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인민체력검정은 각 공장, 기업소 직맹(노동당 외곽조직인 직업총동맹)이 주관하고 있다”며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같은 정치적인 사업은 당위원회가 직접 맡아 하지만 생산 경쟁, 인민체력검정 같은 비정치적인 사업은 대체로 직맹이 주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부분 자기 나이에 맞는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실망하는 눈치였고 심사위원인 직맹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제 기분에 들떠 좋아하는 느낌이었다”며 “유명무실한 조직인 직맹 간부들이 이번 체력검정으로 존재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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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이 날 “지금까지 하지 않던 인민체력검정이 진행되는 것에 모두가 의아해한다”며 “특히 기업소 간부들은 노동 시간을 빼앗기는 것에 안타까워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다양한 종목에 대한 체력검정이 진행되는 동안 종업원들은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업소 간부들의 인상은 울상이었다”며 “농촌동원, 국토관리총동원 등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하루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속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우리 기업소 지배인은 체력검정이 포치(하달)되자 사무실 성원들에게 ‘내일 종업원을 총동원해 강하천 정리 과제를 하려 했는데 인민체력검정 때문에 하루를 날렸다’며 뜬금없는 체력검정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이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North-Korea-taekwondo 2019년 11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이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AFP)

체력검정이 혹시 전쟁준비?

반면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체력검정을 하는지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혹시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계속해서 소식통은 “요즘 어디를 막론하고 부과된 과제가 많아 부지깽이가 동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를 모르지 않는 당국이 왜 갑자기 체력검정을 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며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지시가 내려오는 게 처음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