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17일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저지른 납치 사건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 최악의 사건중 하나는 1978년에 있었던 최은희 신상옥 부부 납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1978년 1월 11일, 영화 제작과 관련해 한국의 배우 최은희 씨가 홍콩에 거점을 둔 북한 대남 공작원 김규화와 이상희 등의 초청을 받고 홍콩에 도착합니다.
김규화는 당시 한국 모 영화사의 홍콩지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최은희 씨는 이들의 초청이 단순히 합작영화 제작 때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홍콩에 도착해 퓨라마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최 씨가 3일 후인 1월 13일 갑자기 실종되고 맙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규화의 초청장은 최 씨를 홍콩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책에 불과했고, 북한 공작원인 이상희가 강제 납치한 뒤 배편을 이용해 황해남도 해주로 데려간 것입니다.
당시 최 씨를 마중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일 위원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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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영화배우
] 최 선생 날 좀 보라요. 내가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니까? 이러고 사람들을 웃기더라고요. 나도 피식 웃고 말았는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은희 씨의 전 남편이던 영화감독 신상옥 씨도 같은 해 7월 14일 홍콩에 입국했다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역시 강제로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갑니다.
한국에서는 1984년 4월 북한에 의한 강제 납북으로 실종되었음이 공식 발표됐고 이후 전 세계에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됩니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최은희 신상옥 씨 부부를 납치한 뒤 ‘신필름’이라는 영화제작소까지 만들고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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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영화배우
] (김 위원장은) 북한 영화계의 낙후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영화를 활성화 시키고 국제영화제에도 내보내고 싶다고...
하지만,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두 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합니다.
이 때문에 5년 가까이 수감됐습니다.
그러던 중 1986년 3월 탈출에 성공합니다.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최은희 신상옥 씨 부부가 일본 기자의 도움으로 택시를 타고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한 겁니다.
자유의 몸이 됐지만, 최은희 씨는 공포 나날을 살아야 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최은희 납치 사건의 장본인인 김 위원장은 이처럼 만인에게 알려진 배우도 마음에 드는 여자라고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납치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을 권력남용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온 뒤 최은희 씨는 그의 사망에 대해 “제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지만 그렇게 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