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3일 저희 방송국을 방문한 서 씨 가족과의 특별 대담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제 1부 '북한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편에서는 서씨 가족이 북한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탈북과정에 대해 전해드리고 제 2부 '목숨을 건 탈출' 편에서는 중국에서의 생활과 제 3국까지 여행하며 겪었던 위험했던 순간들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마지막 제 3부 '미국, 기회의 나라로' 편에서는 서 씨 가족이 겪는 좌충우돌 미국 생활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서씨 가족이 북한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과정에 대해 전해드리는 제 1부 '북한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편을 보내드립니다.
진행에 이원희, 이수경 기자입니다.
이수경:
지난 23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주신 서원경 씨 가족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원경:
안녕하세요? 아버지 서원경이라고 합니다.
김연화:
어머니 김연화입니다.
아들:
서철, 서철용입니다.
이수경:
북한에서 어디 사셨는지 인적 사항은 신변 안전상 밝히지 않겠습니다. 서원경 씨 가족은 북한을 언제 떠나셨습니까?
서원경:
아버지인 저는 탈북을 혼자서 세번 했습니다. 강제북송 두번 되고 마지막 탈북은 2005년에 막내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나왔습니다.
이수경:
처음에 서원경 씨는 어떤 계기로 탈북을 결심하셨나요?
서원경:
북한에서 경제난으로 아이들 셋이 죽고 나니까 경제난을 타개하려고 중국에 나왔습니다. 중국에 나와서 외국 방송을 듣고 머리가 깨었고, 또 첫번째 강제 북송을 계기로 제 3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이원희:
중국에서 북한 내부의 사정과 지도자의 진실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이군요.
서원경:
네. 처음에는 돈만 벌어서 북한에 가려고 했는데 먹고 살려고 돈 벌러 온 사람들을 다시 강제북송해서 다시 노동 단련대 보내고 징역살이 시키고 돈 다시 다 뺏고 온전한 물건은 보위부와 안전부가 다 뜯어먹고 그런데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수경:
그런 이유로 가족과 다 함께 북한을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서원경:
두 번째 탈북할 때 가족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처가 당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수경:
왜 그러셨나요?
김연화:
그때 김정일에 대한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았기 때문에 무서움증이 나서 그랬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가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되고 형제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밖에 좋은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다른 곳을 다녀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중국을 다녀왔으면서도 중국이 좋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서우니까. 서로 그런 말을 못했습니다. 남편은 그래도 다시 중국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다시 가면 내가 보위부 가서 말하겠다고 그랬습니다.
이원희:
자녀 다섯 중에 셋이나 잃었음에도 북한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셨어요?
김연화:
네. 저는 그래도 내 나라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막내 아들이 돌 때였는데 아이를 허리에 개처럼 끈을 문에다 매 놓고 우리는 이삭을 줍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아이가 하루종일 울다가 앞에 놓여있는 음식을 떠먹다 잡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했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 죽으니까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남편이 중국에서 잡혀서 오고 북한의 정치 체제가 한 사람만 탈북하면 온 가족이 다 반역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남편을 따라야 했습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그렇게 따라야 합니다.
이수경:
당시 어렸던 두 아드님, 서철, 서철용 씨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부모님이 중국에 간다고 했을때 어땠나요?
서철:
저희는 어려서 느낌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아버님이 중국 간다고 말씀 안 하시고 그저 어디 멀리 간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커서는 중국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중국이 잘 살고 중국보다 한국이 더 잘살고 그런 얘기는 서로 합니다.
이원희:
중국에서는 어떻게 생활을 하셨나요?
서원경 :
중국 연변에 사촌들이 살았습니다. 중국 친척들이 저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가족이 다 중국에 왔을 때는 이미 제가 중국말을 할 줄 알고 일정하게 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두 아들을 데리고 일하러 나갔습니다. 처는 산막에 혼자 두고 우리 셋이 공사판에서 일했는데 괜찮게 돈을 벌었습니다.
이수경:
북한에서의 생활과 비교해서는 더 나았겠네요.
서원경:
그럼요. 꿈만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여기 미국에 비하면 더럽지만 북한에 비하면 아주 좋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번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 가고 싶어서 물도 사먹지 않고 아껴서 살았습니다.
이원희:
그 때부터 미국에 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나요?
서원경:
네. 강제북송 때부터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중국에서 한국과 미국 방송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냐면 한국의 노무현, 김대중이가 인민들 먹지 못하는 쌀과 돈을 퍼주는 데 짜증이 나더라구요. 내가 한국에 가면 그 꼴을 어떻게 봅니까? 그래서 미국에 가야겠다. 미국에 가서 김정일한테 손가락질 하면서 살아보자. 일개 백성이 김정일한테 싸움하자고 선전포고는 못해도 하다못해 방송을 통해서 욕이라도 한마디 하고 돈을 벌면 후원단체한테 돈을 줘서 맞서 보라고 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수경: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두 아들인 서철와 서철용 씨에게 묻고 싶어요. 아버지가 일을 시키러 데려갔다고 말씀 하셨는데 한창 뛰어 놀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일을 해야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었나요?
서철용:
사실 놀고 싶지요.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에 가면 지금 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을 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더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는데 지금 힘든 일을 하는 것은 그것에 대비한 시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PC방, 컴퓨터를 사용하는 그런 곳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습니다.
이수경:
그때 한국 음악도 들었나요?
서철용:
그럼요. 한국 음악만 들었어요. ‘7년의 사랑’과 ‘대장금’을 즐겼습니다.
이수경: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서철용:
물론 했지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공부를 하려면 경찰에 등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잡힐까봐 학교에 등록을 못하고 공부를 못했습니다.
이원희:
철이 씨의 경우는 중국에서 살면서 다른 또래들이 부러울 때는 있었나요?
서철: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3국으로 간다는 생각도 처음에는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방송을 들으니까 같이 들으면서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탈북자들에 대한 소리, 제일 기억에 남는 방송이 탈북자들을 데리고 가다가 잡혀 감옥에 간 선교사님 얘기입니다.
이원희:
그러니까 서씨 일가족은 외부의 방송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네요.
이수경:
그렇습니다. 얼마나 외부의 정보가 탈북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대화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의 생활이 일도 하시고 돈도 버시고 북한에서의 생활보다 풍요로웠다고 말씀 하셨는데 많은 탈북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으로 신분문제 때문에 언제 발각될 지 몰라서 힘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원희:
그렇습니다. 공안에 쫓겨다니는 생활을 저희가 잘 알고 있는데요, 어머님은 그런 경험 없으셨나요?
김연화: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항상 경찰차 소리만 나도 몸서리가 칩니다. 밤에 사람들의 음성이 높아도 우리 때문인가 조바심이 나고 그랬습니다.
이수경:
중국에서 일자리도 있고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는 굳이 내가 목숨을 걸고 제 3국으로 가야하나?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보자, 아니면 북한에 다시 돌아가자 라고 생각하는 탈북자도 있다고 하던데요, 서원경 씨는 그런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서원경:
강제 북송을 당했을 때 북한 정권과 중국에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돈을 벌러 온 사람을 잡아가서 돈을 빼앗고... 지금도 악독한 중국 경찰들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정권이 미워서 탈북했는데 다시 북한에 가도 그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갈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한 우리네 사는 것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3국에 가려고 했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지난 6월 동남아 국가 라오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서원경 씨 가족의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보는 특별 대담 시간, 그 첫 번째 순서로 ‘북한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앞으로 2부, 3부가 계속 방송될 예정입니다. 많은 애청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