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착 탈북자 가족 특별 대담 ② 목숨을 건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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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지난 6월 동남아 국가 라오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서원경 씨 가족과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보는 특별 대담 시간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3일 저희 방송국을 방문한 서 씨 가족과의 특별 대담을 모두 세차례에 걸쳐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된 제 1부 ‘북한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편에서는 서씨 가족이 북한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탈북과정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의 생활과 제 3국까지 여행하며 겪었던 위험했던 경험에 대해 얘기해 보는 제 2부 ‘목숨을 건 탈출’편을 보내드립니다.

진행에 이원희 이수경 기자입니다.


이수경:

지난 시간에는 서원경 씨가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면서 북한과 중국 정부에 분노를 느끼고 제 3국으로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사실 중국 대륙을 거쳐 남방으로 가는 길은 매우 긴 여정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가셨는지 궁금해요.

서원경:

우선 제가 두번째 강제 북송 전에 돈이 있었는데 강제 북송 당시 다 없어졌습니다. 세번째 탈북해서 중국에서 두 아들과 셋이서 번 돈을 조금도 허술하게 쓰지 않고 아꼈습니다. 식품도 완전히 저질 식품, 싼 식품만 사먹으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중국 돈으로 1만 5천위안 정도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교단체에서 후원해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수경:

서원경 씨 가족이 중국에서 제 3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주변의 탈북자들도 알았나요?


서원경:

처가 중국에서 식당에서 일할 때 중국 조선족 남자랑 결혼한 탈북 여성이 있었는데 이 여성에게 우리 처가 한국에 같이 가자고 하니까 안간다고 했습니다. 그 여성은 아직 북한에서 김정일에게 교육받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냥 중국에 있겠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자기 식구들이 잘못된다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수경:

중국내 동북 3성 지역에는 탈북자들이 꽤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지내다 보면 같은 탈북자 끼리 만나고 교제하실 기회도 있을 텐데요. 탈북자들 사이에서 제 3국으로 가는 경로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고 접하는 일도 있나요?

서원경:

힘듭니다. 대체로 알고는 있지만 힘듭니다. 지금은 몽골로 가는 길이 차단되고 남방으로 해서 베트남 태국 라오스로 간다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이 기나긴 여정을 우리가 말도 서툰데 가짜 신분증도 없이 어떻게 가냐고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신분증이 없어도 중국말만 잘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말 서툰 사람은 힘듭니다.


이수경:

그렇게 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을 결심하고 중국에서 제 3국으로 떠나셨는데요, 그 여정을 잠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서원경:

우리 가족이 목단강에 있었습니다. 그때 미국의 선교사님에게 우리를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우리끼리 심양까지 갔습니다. 심양에서 베이징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신분증 없다고 하니까 그럼 주소가 어디냐고 물어서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왜 물어보냐고 했더니 앞에 초소가 있다고 검색을 하는데 신분증 없으면 주소라도 말하라고 하는거예요. 나 중국 사람 아니다 나는 내리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그냥 내리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돈은 어떻게 하냐. 돈은 다 가져라. 중국 돈으로 1천200위안을 아까운 돈을 그냥 줬지요. 신변 안전 때문에 돈은 포기했습니다.

이원희:

초소가 있으면 공안에게 걸릴까봐 그러신거죠. 중국 분들도 돈만 주면 봐준다는 얘긴가요?

서철:

정확한 단서가 없고 그분들은 또 버스 기사고 그러니까 공안과는 상관이 없고 가는 도중에 아버님께 물어본 거니까 바쁘지요. 손님은 가득 탔고 그래서 보내준 거지요.

이원희:

그 이후에는 위험한 순간이 없었나요?

서원경:

그때가 가장 황당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면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우리 네식구가 중국을 탈출하는 입구인데 말입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막내 아들을 데리고 몽골로 탈출하다가 경찰 추격을 받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가겠다고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했지요. 그랬더니 거기서 2-3일만 있으면 안내원을 보내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조선족 어느 집에 들어가니까 그 사람이 있고 싶은대로 있으라고 해서 그곳에서 머물다 안내원을 만났습니다.


이수경: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제 3국으로 가는 여정은 혼자서도 발각될까봐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분이 함께 움직이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고 반면에 서로 힘이 되고 재밌었던 일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 생각나는 일화가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서철:

사건이 있었지요. 저희 다 잡힐 뻔 했어요. 심양에서 남방까지 가는 도중에 12시간 기차를 탔어요. 남방에 거의 다 도착해서 경찰이 신분 검열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 형이 신분증을 보여줬더니 경찰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 신분증 가짜라고 하면서 어디서 만들었냐고 물어봤어요. 형은 중국말도 잘 모르지 황당하지 그래서 공안이 만들어 줬다고 그랬습니다. 경찰은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중국에는 공안이 많은데 어느 공안인가를 다시 물었어요. 그냥 공안에서 만들었다고 계속 말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이 어처구니가 없으니까 신분증으로 형의 머리를 탁 치면서 다시는 이런 가짜 신분증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그랬어요. 바로 옆에 어머니와 제가 앉아있었는데 경찰이 저희에게도 다가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경찰이 물어보면 경찰 밀어버리고 기차 유리 깨고 도망가야지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경찰이 저희에게도 신분증 보자고 물었어요. 저는 안가지고 왔다 목단강에 있다고 말했고 어머니도 없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중국 이름을 다 쓰라고 했어요. 제가 학교를 못다녀서 중국글 모른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이 그냥 지나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서원경:

그 다음에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하고 같이 가던 북한에서 금방 탈북한 여성이 10살쯤 되는 아이 둘을 데리고 같이 가는데, 이 여성은 경찰이 오니까 그냥 화장실에 가서 숨었습니다. 8살난 딸이 화장실 밖에서 경찰이 지나가나 지키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화장실을 검색하다가 이 여성이 숨은 화장실 문이 안 열리니까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짜 신분증 걸렸는데 머리 한대 툭 치고 가버리고, 화장실에 숨었는데 문이 안 열리니까 그냥 가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로 걸리면 경찰서로 끌려 갑니다.

서철용:

중국말을 잘 못해도 끌려가거든요. 근데 신분증이 걸렸는 데도 안 잡혀간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원희:

어머님은 그런 위험한 순간에 가슴을 졸이고 그러셨는데 괜히 왔다는 생각에 남편이 원망스럽지는 않으셨나요?

김연화:

그럴 때도 있었지요. 중국에서 살 때는 남편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재미에 우리가 이 돈을 가지고 제 3국으로 가야겠다고 그런 목적이 있으니까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제3국으로 가는 길에도 심양에 있는 조선족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라오스 국경의 산을 넘을 때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경찰에게 걸려서 경찰이 우리에게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에 숨어 있다가 다시 라오스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성공한 후 가족들 얼굴을 보니까 얼굴색이 백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수경:

중국을 탈출해서 많은 어려움과 발각될 뻔 한 순간을 다 넘기셨는데요. 하지만 라오스에 왔다고 해서 쉽게 미국으로 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라오스에서는 또 어떤 절차를 거쳐서 미국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서원경:

우리가 라오스에 갔는데, 2008년도 10월에 라오스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습니다. 라오스 국경에서 한국 대사관까지 중개인을 통해서 갔는데, 그 중개인은 우리에게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에 가면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게 되는데, 일단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도중에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감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사관 사람을 만나자고 요청해서 우리는 한국 가는 사람이 아니다 미국에 가려는 사람이다. 중개인이 거짓말을 하라고 해서 한국에 간다고 거짓말했는데 미국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된다고 짜르더라구요. 전화도 못 쓰게 하고 그렇게 한국 대사관에서 한 2-3달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자꾸 가니까 생각하다 못해서 작은 우리 아들을 시켰습니다. 아들이 대사관 밖으로 나가 한국 사람을 만나서 전화기를 빌렸습니다. 미국 선교사님께 전화를 했지요. 우리 실정이 이렇게 됐다고 알렸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손을 쓰셨는지 미국 의원의 보좌관이 우리를 보러 오시고 그 후 미국 대사관 직원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이수경:

한국 대사관에서 그렇게 기다리면서 미국에 가겠다고 아버님께서 계속 요청을 하셨다고 말씀 하셨는데, 온 가족이 같은 의견이었나요? 혹시 한국으로 가자거나 다른 의견을 가진 가족은 없었나요?

서원경:

우리 큰아들이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서철:

그 때는 탈북자들이 모두 한국으로 갔는데 우리 가족만 대사관에 남아 있으니까요. 한 8개월 정도 기다리니까 조급한 생각에 그랬습니다.

김연화:

저도 라오스에만 오면 미국 대사관과 연계해서 빨리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는 다른 탈북자들은 빨리 빨리 빠져 나가는데 우리는 미국으로 간다는 약속도 없고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기다리다 보니까 한국으로 가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반대했습니다. 마침 기다림에 지쳐있던 때에 막내 아들이 전화를 해서 다행이었지요.

이수경:

얘기를 들어보니 막내 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네요. 라오스 대사관에서 나가서 어떻게 한국 사람을 만났나요?

서철:

마음에 드는 건물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그곳에 한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빌려 주었구요.

이수경:

네, 중국에서 라오스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미국에 가기위해 참 많은 일들을 겪으셨는데요. 다음 이 시간에는 계속해서 낯선 땅 미국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지난 6월 동남아 국가 라오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서원경 씨 가족과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보는 특별 대담 시간, 그 두번째 순서로‘목숨을 건 탈출’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앞으로 3부가 계속 방송될 예정입니다. 많은 애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