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결산]② “상봉보다 생사 확인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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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지난 26일부터 엿새 동안 두 차례로 나눠 이루어졌던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10월 1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난 2007년 10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이후 약 2년 만에 재개됐습니다.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에서는 이번 상봉행사에 얽힌 이야기와 문제점을 어제부터 오늘 이틀 연속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노재완 기자가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봤습니다.

이산가족들이 10월 1일 아침 작별상봉을 끝으로 꿈같던 2박 3일의 만남을 뒤로하고 또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60년 동안 헤어졌다 만난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맺힌 한을 다 풀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산가족의 절대다수가 이마저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대한적십자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9년 6월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만 대략 12만 7천명. 이 중 약 4만 명이 이미 사망했고, 8만 7천명이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도 80세 이상 고령자가 3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언제 사망할지 모릅니다. 현재와 같이 매년 설과 추석에만 남과 북이 각각 100명씩 상봉하게 될 경우, 8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생전에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대한적십자 유종하 총재입니다.

유종하: (상봉 예정자가) 8만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100명, 북쪽에서 100명 이렇게 뽑다가 보니까 컴퓨터 추첨으로 8만 명 중에서 여러분이 당첨된 겁니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게 8대 1이라고 하면 8백분의 1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100배 어려운 관문을 여러분이 통과하신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회성 행사는 이산가족들에게 오히려 아픔만 더 커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유광석 사무총장입니다.

유광석: 실상 상봉행사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은 두 번 헤어지는 결과가 되고 있습니다. 한번 만났기 때문에 또 이젠 어떻게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한창 열리고 있던 지난 9월 28일.

한국에서는 이산가족 상봉단에 뽑히지 못한 70대 노인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던졌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이번 상봉에서도 탈락하자 상심해 순간적으로 자살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요즘 한국의 이북 도민사회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북도민연합회 동화연구소 김보균 차장입니다.

김보균: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본 이북도민들의 마음은 사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나마 2년 여 만에 개최된 이산가족 상봉을 기뻐는 했지만,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과연 나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개탄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서신교환은 물론, 생사확인 조차 못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재 이산가족 상봉은 진정한 인도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하루 빨리 정례화와 대규모 상봉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북 도민사회에서는 65세 이상의 분들에게는 남북한 합의 하에 통행증을 발급해서 자유롭게 왕래하고 고향 산천을 찾아 친지를 만날 수 있도록 남북 당국에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북한은 최근 1차 상봉행사 기간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상봉행사의 대가로 한국에 인도적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북한의 이번 요구는 쌀이나 비료 지원을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정치적으로 연계시켰습니다.

실례로 지난 2006년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쌀과 비료 지원을 끊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조선중앙TV: 따라서 우리 측은 북남 사이에 더 이상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인도주의 문제와 관련한 그 어떤 논의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합니다.

이 때문에 실향민들은 그 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문제와 분리해 대응하지 못했던 한국 정부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이산가족을 대변하는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지난 8월 17일 성명을 발표하고, 제한적으로 실시돼 온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간의 정치적 갈등만 생기면 중단을 거듭하는 지금의 이산가족 상봉 대신에 차라리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유광석 사무총장입니다.

유광석: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들은 극소수 인원으로 한번 만남에 그치는 면회 행사는 강력이 거절합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이고 인권적인 차원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생사확인 작업을 먼저 성사키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8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들을 고향에 방문하여 성묘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길 바랍니다.

이산가족들의 이러한 요구가 반영된 것일까.

최근 한국 정부에서는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와 분리해서 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쌀과 비료를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하겠다는 북한의 태도에 대해 한국 정부는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9월 25일 속초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한 말입니다.

현인택: 정부는 지난 적십자회담에서 북한에게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 없이 꾸준히 진행하자. 또 전면적인 생사 확인을 하자. 상시 상봉을 실시하자. 또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실시하자 뭐 이렇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상봉은 대면상봉, 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 그리고 서신교환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체 대면상봉은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상봉 기회도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이산가족들은 10여 전부터 민간단체를 통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서신교환을 통해 그리움을 달래왔습니다. 사실상 이산가족들 스스로 가족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산가족들은 이번 상봉 기간 통한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눈물지었고, 그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또 만남의 시간을 갖겠지만, 상봉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들 역시 기약 없는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