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 강의를 듣는 북한 사람
지난 3월 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대학원 건물 415호에서 북한에 대한 토론이 한창입니다.
[학생] 북한과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과 국제사회 간에 기본적인 관계가 먼저 수립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마주 앉은 노정호 교수가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질문합니다.
[교수] 현승 씨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현승 씨가 경험한 북한 정권의 반미 적대정책은 어땠나요? 일반 주민들 역시 미국에 대해 비슷한 공포감이나 적대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한반도 법과 분쟁의 지정학’ 수업을 듣는 약 스무 명의 대학원생들이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이현승] 북한 주민들은 한국 전쟁 때 미군이 많은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교육받습니다. 북한 정권의 많은 교육용 선전물을 통해 제가 배웠던 것은 '미국이 북한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협상은 없고 무조건 승리만이 북한이 가진 선택지라고 가르칩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을 나눈 그는 2014년 탈북한 이현승 씨입니다.
[이현승] 여기가 메인 캠퍼스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입구가 양쪽으로 있어서, 암스테르담 대로와 브로드웨이 대로에서 모두 들어올 수 있어요.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학교 건물이 위치해 있는거죠.
컬럼비아대 메인 캠퍼스.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변에 위치해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교정에 들어서자 탁 트인 시야에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의 돔 건물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도서관이었지만 지금은 총장실과 교무 담당 사무실로 쓰이는 로우 도서관 건물입니다.
햇살 가득한 봄날, 학생들이 도서관 앞 계단과 야외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로 가득합니다.
[이현승] 여기가 컬럼비아 학생들이 주로 생활하는 장소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이시죠? 햇빛 쬐러 나온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승 씨도 로도서관 앞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이현승] 제가 이메일을 좀 보낼게요. 하루에도 이메일이 100개씩 올 때가 있어요. 그때그때 답장을 해줘야 해요. 학교 그룹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이메일로 소통을 많이 하기 때문에.
현승 씨는 지난해 9월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 공공정책대학원(SIPA)에 입학했습니다.
[이현승] 마음 졸이는 것 있잖아요. 온라인으로 (합격 발표를) 열어서 보는데, 축하하는 별이 뜨거든요. 그게 안 뜨면 떨어진 거죠. 근데 별이 뜨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죠. 아 다행이다.

1년짜리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현승 씨에게 이번 학기는 벌써 마지막 학기인데요.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한 듯합니다. 근처에서 공부 중이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 한참을 이야기합니다.
[이현승] 시험 준비는 어떻게 돼 가? 오픈북이지?
[친구] 내일 시험 말하는 거지? 응.
다음 날 있을 시험 때문에 현승 씨도 마음이 조급합니다.
[이현승] (한숨 소리) 읽을 자료도 양이 워낙 많은 데다가, 공부하려고 하는데 워낙 많으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우리말로 번역이 된 게 있어요. 그런 게 있으면 그걸 먼저 보고, 안되면 영어로 된 걸 봐야죠. 영문을 읽는 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놀 시간도 없이 공부한다는 현승 씨. 그의 성적 역시 궁금한데요, 현승 씨가 선뜻 노트북에 지난 학기의 성적표를 띄워 보여줍니다.

[기자] 학점은 좀 어떠세요?
[이현승] 학점 괜찮아요.
지난 학기 들은 7개 과목에서 모두 A와 B+를 받았습니다.
[기자] 잘하시는구나. A+는 없네요?
[이현승] A+는 잘 안 줘요, 선생님들이. 이번 학기 수업 하나는 이미 끝나서 A를 받았고요.
다음 수업 강의실로 향하던 현승 씨가 잠시 들를 때가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계단을 따라 뛰어 내려가더니 지하 도서관 입구에 서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이현승] 간식을 받으려고 합니다. 수업 시작 전에 너무 아무것도 안 먹어서 허기가 집니다, 지금.
잠시 후 등장한 한 여학생에게 초코 과자 두 개를 건네받는데요, 혹시 여자친구일까요?
[이현승] 동생한테 받았어요. 두 분 것은 없네요, 미안합니다.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며 금방 도서관 안으로 사라져 버린 여학생은 바로 현승 씨의 여동생 이서현 씨입니다.
“뉴욕에서 성공하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
서현 씨는 오빠인 현승 씨보다 한 해 먼저 컬럼비아 국제 공공정책대학원에 입학한 선배입니다.
남매인 두 탈북민이 동시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겁니다.
현승 씨와 서현 씨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간부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10년 전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지난 2016년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들을 ‘북한 상위 1% 엘리트 계층’으로 소개하며, 평양에 살면서 마치 뉴욕 맨해튼과 같은 삶의 수준을 누렸다며 이들이 사는 세계를 ‘평해튼’이라는 신조어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기차가 고가 철로를 지나가고 빵빵거리는 경적이 끊임없이 들리는 복잡한 뉴욕의 거리.
비가 곧 올 것처럼 흐린 날씨에 두꺼운 겉옷을 입은 서현 씨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서둘러 어딘가로 향합니다.
[이서현] 지금 비지니스스쿨에 가고 있는데요, 친구들을 만나러요. 한 명은 SIPA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군데 작년에 졸업했고, 다른 한 명은 비지니스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근데 못 본 지 되게 오래됐어요. 다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까, 그냥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지금은 이곳 생활이 익숙해진 ‘뉴요커’지만, 서현 씨는 스무 살이 되도록 뉴욕이라는 도시를 몰랐습니다.
[이서현]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북한에 있을 때는 나라와 수도는 다 배우거든요. 그래서 워싱턴 디씨는 알았는데 뉴욕은 딱히 몰랐었어요. 처음 왔을 때 한 거의 2~3개월 동안은 저녁에 해가 지면 못 나가겠는 거예요, 무서워서. 근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봐요. 바로 적응해서 지금은 잘 다녀요.
서현 씨는 탈북 전 북한의 최고 명문대학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 문학부를 2년 다니다 중국에 유학을 나가 오빠 현승 씨가 다니고 있던 동북재경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서현] 솔직하게 비슷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대학(김일성종합대학)은 그때 당시 제 입장에서는 최고의 대학이었고. 지금은 뭐 제가 김일성종합대학 입학 허가증을 받았다고 하면 그냥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겠죠.
서현 씨는 이번 학기에 6개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서현] 지금 수업 가고 있어요. 북한학에 관한 수업인데, 지각은 아니에요. 2분을 남겨두고 가고 있어요. 스케줄이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강의실. 국제 공공정책대학원의 ‘북한:국가, 사회, 외교’ 수업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자랐지만, 서현 씨 역시 오빠 현승 씨처럼 북한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서현] 제가 북한에서 배웠던 것들은 북한 정권에 맞게끔 다듬어진 내용 위주였는데,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북한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남기는 코멘트나 질문이 저에게 좋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이 수업을 선택했습니다.

열댓 명 남짓, 소규모로 이뤄지는 수업에서 서현 씨는 ‘비핵화와 외교’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에게도,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도 서현 씨의 역할은 특별합니다.
[조나단 코라도 교수] 제가 수업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에 대해 서현 씨는 북한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합니다. 서현 씨는 자신의 귀중한 시각을 더해 학생들이 교과서나 강의를 넘어 북한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앤드류 림] 처음 이 수업에 북한에서 온 학생이 있다고 들었을 땐 정말 비현실적인 기분이었어요. 미디어를 통해 폐쇄된 사회인 북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들이 있었는데, 서현의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가 책으로 읽고 공부한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북한.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
책에서만 보던 북한 사람 서현 씨와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는 북한학 수업에서 만나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평양에서 자라고 중국에서 유학한 남매가 왜 뉴욕 한복판의 학교를 선택한 걸까요?
[이서현] 제가 국제관계학에 대해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추천을 받았던 학교들이 몇 군데가 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컬럼비아를 택한 건 아시듯이 좋은 대학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 도시 자체가 어떻게 보면 배움의 장인 것 같아서. 그런 말이 있잖아요. '뉴욕에서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딜 가든 성공할 수 있다'고.
[이현승] 다른 분들이 '뉴욕을 한 번 경험을 해봐라, 그래야 미국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와보니까,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장점이 많아요. 특히 국제 외교무대, 금융의 중심지니까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요.

평양 금성학원과 외국어학원을 거쳐 중국 동북재경대학까지, 유치원부터 늘 같은 학교를 다녔던 두 남매가 미국에서까지 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수업과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을 주고 받는 것부터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하며 서로의 식사를 챙기고, 대신 장을 봐주기도 하는 다정한 남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6살 차이의 남매. 서로에게 서로는 어떤 오빠이고 어떤 동생인지 물었습니다.
[이현승] 착하고 말도 잘 듣고, 그리고 동생은 초등학교 때 북한의 분단 위원장, 그러니까 여기로 말하면 학급 대표죠. 그런 것도 해서 리더십도 있었고.
[이서현] 자랑스러운 오빠죠. 다 같은 코스를 밟다 보니까, 일단 오빠가 학교생활을 너무 잘 해줬고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저에 대한 기대치가 일단 높았고, 저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빠 동생이라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나도 어느 정도 공부도 잘해야 하고.
서로의 칭찬이 술술 나옵니다.
그러나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느냐’는 질문에는 둘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이현승] 어떤 분들은 쌍둥이냐고 하는 분들도 있고. 미국 분들은 구분을 잘 못하니까.
[이서현] 어, 저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근데 오빠는 어렸을 때는 더 잘 생겼었어요. 꽃미남 과였는데, 나이가 드니까.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어 보이는 두 사람. 여느 남매들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자유와 기회의 도시 미국 뉴욕 맨해튼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중인 탈북민 남매가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은 4박 5일 동안 뉴욕을 방문해 이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