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맨해튼까지] ③ 서현 씨 가족의 ‘비욘드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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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의무는 아니지만… ."

지난 3월 말 어느 늦은 오후,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의 국제 공공정책대학원 건물입니다.

한 여학생과 친구들이 상자를 들고 옮기고 있습니다.

[이서현]아 잠시만요. 아이고. 내동댕이 쳐버렸어.

꽤 버거워 보이는데요. 결국 내려놓고 상자 속 책자를 들어보이는 이 여학생은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생 탈북민 이서현 씨.

[이서현] 저희가 한국 유엔 대표부의 후원을 받아서 (이 책자를) 질문해 주신 분들하고 당첨된 분들에게 (드리려고) 이벤트 행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게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현 씨는 다음날 있을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교내 시사회에 나눠줄 북한인권자료 책자를 옮기고 있던 겁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해 개봉한 탈북민 일가족의 탈북 여정을 담은 미국 다큐멘터리(기록영화)로 각종 영화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서현 씨가 속한 한인 학생회 ‘코리아 포커스’는 지난해부터 북한 인권 실태와 탈북 과정의 어려움을 컬럼비아 대학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시사회를 계획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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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대학원생 이서현씨가 컬럼비아 대학 한인 동아리 코리아포커스 친구들과 짐을 옮기고 취재진에 설명하고 있다. /RFA Photo

다음날 오후 수업이 끝난 서현 씨는 또 정신없이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취재진을 만날 때 마다 숨이 찬 모습으로 대답을 합니다.

[기자] 어디 가시는 거예요?

[이서현] 지금 15층에 행사장으로 (갑니다).

15층 시사회 장소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자 큰 강당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강당 뒤 한 켠엔 관람하는 학생들을 위해 코리아 포커스가 준비한 김밥과 과자, 음료가 놓여 있습니다. 이제 김밥은 미국에서 낯선 음식이 아닙니다.

한국 대중문화인 K-팝, K드라마를 넘어 한국의 음식인 K-푸드 열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해엔 냉동김밥이 한 유명 식료품점에 출시됐고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품절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학생들도 낯설지 않은지 김밥을 집고 객석에 앉습니다.

상영회가 시작됐지만 서현 씨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강당 밖 창가에 걸터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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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씨가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교내 시사회 중 시험을 마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모습. /RFA Photo

[기자] 뭐하고 있는 거에요?

[이서현]질문이 생각보다 많아서 시험을 마무리를 못해서. 마감 제출 시간 전에 끝내야 돼서 Q&A시간 전에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시사회장에) 들어가 있고 싶은데, 보다 보면 집중하기 힘들어서 나와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 행사를 개최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이서현] 이 활동이 학생으로서 의무는 아니지만 북한에서 탈출한 학생으로서 이를 알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 전 많은 컬럼비아 대학생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한 뒤 상영회장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바로 서현 씨 오빠 현승 씨입니다.

오빠 현승 씨는 처음 ‘비욘드 유토피아’를 봤을 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탈북민으로써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현승 씨는 탈북 실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현승] 지금 (영화에서) 오신 분들은 전통적으로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오신 분들이잖아요. 붙잡힌 사람들도 많고. 저도 2년 동안 2~3분을 구출한 경험이 있는데 아프리카하고 중국하고, 중국에서 탈출하려던 분들이 잡혔어요. 북송되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저는 저희 가족은 결심을 하고 행동을 빨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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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씨가 오빠 현승씨와 함께 뉴욕 맨해튼에 있는 유엔본부를 방문했다. 총회장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매의 모습. /RFA Photo

서현 씨 가족의 ‘비욘드 유토피아’

[이서현] 여기 비둘기들조차도 자유로워 보여요.

비둘기조차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은 뉴욕 이스트강 옆에 위치한 유엔본부.

서현 씨와 오빠 현승 씨는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직원과 탈북 청년 행사 조율을 위해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이곳은 두 남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릴 수 있는 활동 무대이기도 하고,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서현 씨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비공식 회의에서 연설을 했고, 현승 씨는 ‘청년 탈북민 지도자 총회’를 조직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유엔에 들어서자 회원국의 국기가 걸려 있는 모습이 두 남매의 눈에 띄었습니다.

[이현승]여기 국기들이 다 있어요. 여기 보면 북한 국기도 있을 텐데. 한국 국기도 있고. 북한 국기가, 제가 볼 때는 이건가. 역시 한 번에 찾았어.

익숙한 북한 인공기를 발견하자 만감이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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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씨가 유엔 본부에 있는 국기들 중 인공기를 발견해 가리키고 있다. /RFA Photo

아버지 리정호, 어머니 김부경, 자녀 이현승, 이서현씨 네 가족은 2014년 10월 중국에서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출연진들처럼 국경을 넘고 또 험지를 거쳐 고생길을 건너진 않았지만, 아찔했던 마음은 같았습니다.

[이서현] 탈북을 하는 과정 기간 동안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꿈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 그냥 딱 탈북 과정만 본다면 너무 긴장이 되었죠. 어느 순간 누가 나타나서 우리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것에서 얻는 불안감과 공포감 이 겹친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딱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는 우리가 안전하구나 하는 안전감은 들지만 대신에 '이제는 정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고, 주변 인물들도 같이 처형하면서 서현 씨 가족은 중국에 나와 있던 주변 인물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특히 서현 씨는 중국에서 4년 내내 기숙사를 함께 썼던 북한 친구가 하루 아침에 자신의 눈 앞에서 보위부 요원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처형된 장성택의 부하였던 이 친구는 이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 졌다고 합니다.

주변 인물들이 숙청당하자 언제라도 자신들이 다음 차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서현 씨 가족은 중국의 한 공원에서 비밀리에 회동을 합니다.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 차안에 휴대폰과 각종 전자기기를 두고 ‘탈북’에 대한 토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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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서 취재진이 따로 만난 서현 현승씨의 아버지 리정호, 어머니 김부경씨./RFA Photo

취재진이 나중에 따로 만난 아버지 리정호 씨에 따르면 당시 탈북에 대해 가족들의 결심은 섰지만 두고 온 가족들에 미안한 마음만 남았습니다.

[아버지 리정호]가족이라는 것은 운명 공동체니까 그런 체제에서는 한 사람이 잘못되면 연좌제로 인해 가지고 다 같이 잘못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토론을 하니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제 한쪽으로는 북한에 두고 온 형제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이제 눈에 밟히고….

한국에 도착해 조용한 삶을 살았지만 완전한 자유를 누리진 못했습니다. 북한 당국에서 계속 추적해왔기 때문입니다.

북한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는 리정호 씨 가족이 탈북한 2년 뒤인 2016년 리씨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출연시켜 재입북을 종용했습니다. 사실상 리정호 씨 가족에 대한 북한 당국의 협박 메시지였습니다.

게다가 북한으로 추정되는 도청과 해킹 공격에 시달리면서 결국 2016년 3월 미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했습니다.

미국 생활도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다고 서현씨 가족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이서현]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는 가족밖에 없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주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을 하고, 오빠를 보면서 항상 어려움이 있는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또 조언도 듣고 생각도 많이 변하면서 그렇게 성장해 왔던 것 같아요.

[이현승]사실은 탈북을 해서 정착하고 이미 30년 넘게 또는 20년 넘게 살았던 고향을 떠나와서 이제 새롭게 정착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도 어느 정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게 가족들이 우리는 좀 이렇게 너무 뭉쳐서 서로 이게 잘 도와줍니다.

부모들도 같은 마음입니다. 북한에서 한 평생을 살아 언어도, 문화도 서툰 미국생활이지만 자녀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아버지 리정호]근데 그때 북한에 있을 때는 시간이 없었지 내가 아침에 나가면 밤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여기가 시간이 많으니까 얘기할 수 있고…. 우리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왔으니까. 이제 우리가 북한 체제 변화시키자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논의합니다.)

[어머니 김부경]항상 걱정은 하지만 가족이잖아요. 가족이 힘을 먹고 가족이 뭉쳐서 헤쳐 나가는 거지.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자유와 기회의 도시 미국 뉴욕 맨해튼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중인 탈북민 남매가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은 4박 5일 동안 뉴욕을 방문해 이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