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에서 북 인권을 외치다] ① ‘적반하장’ 중국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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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제발 때리지만 말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만 해주세요. 저한테 안 와도 돼요.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만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다른 바람이 없어요. 언니 곁으로 안 와도 됩니다.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만, 중국에서 제발 좀 받아줘서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만 하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의 친언니 김규리 씨.

당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발 동생을 때리지만 말라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김 씨를 지난 3월 중순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아직 북송된 동생으로부터 소식은 없는 상황입니다.

탈북한 지 28년이 지났지만, 김 씨에게 북한 인권 문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내 가족의 일’입니다.

[김규리] 살고자 나왔잖아요. 우리가 살고자 그 나라를 어렵게 나왔는데 (중국은) 우리 탈북 여성들을 이용해 먹고 진짜 아기 낳는 짐승으로밖에 안 본 거예요. 탈북민들은 배고파서 강을 넘었잖아요. 인간답게 자식들과 살아갈 수 있는 비자라도 줬으면 누가 중국을 떠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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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북한 인권 관련 부대행사를 앞두고 회의실 앞이 북적인다. 행사를 이끈 한보이스의 션 정 대표는 지난해 11월 소규모 대표단과 함께 제네바를 사전 방문해 유엔 회원국 대표들을 만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지난 1월부터 후원 국가들을 모색했다고 한다. /RFA Photo

“중국이 문제다”

지난 3월 15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의 한 회의실 앞.

11시에 열릴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 행사를 앞두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유엔 회원국 외교관들과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들 사이에 단정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규리 씨가 인사를 건넵니다.

[기자] 이제 10분 남았는데 어떠세요?

[김규리] 긴장됩니다. 처음에는 (동생 문제 해결을 위한) 앞날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유엔 뉴욕 본부에서도 증언했고 이제 더 범위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탈북 후 지난 2007년 영국에 정착한 김 씨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생업을 잠시 접고 제네바까지 왔습니다.

동생 철옥 씨와 함께 북송된 600명의 탈북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규리] 집중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중국이 문제다’, ‘중국과 타협을 봐야한다’는 거예요. ‘북한에서 넘어오는 탈북민들을 받기 싫으면 제3국으로 보내 달라, 다시 그 험한 나라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는 것을 집중해서 말하고 싶어요.

16살의 나이에 두만강을 건넜던 20대 탈북 청년 김일혁 씨도 한국 인천공항에서 꼬박 17시간을 날아 제네바에 도착했습니다.

특히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에 진심인 김 씨는 시차 적응도 못 한 채 새벽까지 영어 발표 연습을 했지만,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며 발표문을 몇 번이고 들여다봅니다.

[김일혁] 회의장에 가서 당당하게 하려고, 떨지 않으려고 준비를 많이 하긴 했는데.

오랜 비행에 지칠 만도 한데, 오히려 씩씩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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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관련 부대행사에는 처음으로 얼굴을 비친 중국 대표. 그는 며칠 뒤 유엔에서 열린 다른 부대행사에도 참석했지만, 행사 시간 문제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 /RFA Photo

드디어 열린 회의실.

25개 유엔 회원국 외교관들을 포함해 70여 명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책임을 지적하는 가운데 한 남성이 ‘CHINE’, 프랑스어로 ‘중국’이라고 적힌 국가명패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옵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그를 향합니다.

행사를 주최한 인권 단체 활동가들도 예상치 못한 중국 대표의 등장에 경계하는 눈빛을 주고받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죄가 없어요”

[김규리] 북한의 감옥은 정말 열악합니다. 처벌은 강하고, 먹을 것은 없습니다. 저희 오빠 역시 감옥에서 고통받다 죽었고, 그의 시신은 산에 버려져 찾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제 동생과 모든 북한 사람들을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세요.

영어로 발표하던 김규리 씨가 주최 측에 양해를 구하더니 한국말로 발언을 이어갑니다.

[김규리] 제가 한 가지만 더 추가할 것은 우리 모든 북한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죄라면 북한에서 태어난 거예요.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은 김정은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눈물을 삼키는 김 씨.

참석자들은 눈을 감고 듣기도 하고, 김 씨의 증언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노트북에 열심히 받아적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숨죽여 듣는 회의실의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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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탈북민 김일혁 씨, 패트리샤 맥컬라 제네바 주재 캐나다 차석대사, 션 정 한보이스 대표, 탈북민 김 씨, 김규리 씨, 미셸 테일러 유엔 인권이사회 주재 미국 대사. 탈북민들의 증언이 끝나고 발언권을 요청한 중국 대표가 말하고 있다. /RFA Photo

예정된 행사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중국 대표가 발언 신청을 하더니, 미리 준비해 온 두 장짜리 종이를 읽어나갑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중국 대표] 경제적 이유로 인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은 불법 이민자입니다. 난민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강제송환금지조약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고문 또는 이른바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사람들에 대해 강제송환금지조약을 적용하기 위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중국 대표의 발언에 참석자들의 표정이 굳기 시작합니다.

미셸 테일러 유엔 인권이사회 주재 미국 대사는 눈썹을 추켜세웠고, 패트리샤 맥컬라 제네바 주재 캐나다 차석 대사는 입술을 꾹 다문채 그를 쳐다봤습니다.

중국이 북한 인권 관련 부대 행사에 참석해 공식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행사를 이끈 북한 인권단체 ‘한보이스’의 션 정 대표는 중국 대표가 회의장에 들어오던 순간 놀랐다고 회고했습니다.

[션 정] 그가 들어왔을 때 우리 팀원들은 “중국이 발언하려고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라며 단체 문자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근데 솔직히 신나기도 했어요. 중국이 이런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탈북민들의 이야기와 증언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중국 스스로가 발언을 통해 자국의 신용을 떨어뜨릴 테니까요.

발언을 마친 중국 대표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김 씨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규리] (마음이) 아팠어요. 역시 그렇구나, 중국이 그렇지. 예상한 반응이었습니다. 중국이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중국인들이 우리 북한 사람들을 인신매매로 팔고, 탈북민들이 중국인들과 결혼해서 가정을 만들었잖아요. 이번에 강제북송된 사람들 중에는 중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들의 자녀들은요?

김일혁 씨도 중국 대표가 책임을 부인하는 모습이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일혁] 사실 기대도 안 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중국 대표가 말하는 동안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중국에 ‘도대체 너희는 왜 그러냐’. 중국이 지금까지 20년 넘게 탈북민들을 강제북송하고 있는데, 전 세계가 지적하는데도 계속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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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규리 씨는 바쁜 일정 때문에 알프스 산을 오르지 못해 아쉬워하며, 언젠가 동생 철옥 씨와 함께 다시 제네바를 방문할 날이 오길 기도했다. /RFA Photo

“언젠가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김규리]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아침에 비가 오더니. 너무 맑다.

다음 날 아침, 김 씨가 머무는 숙소 앞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김규리] 나는 항상 나오면 보는 게 저기 눈 쌓인 산. 너무 좋아요.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산 타러 가고 싶어요. 북한에 있는 산 같지 않아요? 북한에서 늘상 보는 소나무도 있고.

영국과 달리 스위스의 맑은 날씨에 김 씨의 마음이 설레면서도,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마음 한 구석이 무겁습니다.

[김규리] 매일같이 울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렇게 아프면 동생은 더 아플 텐데’라는 생각. 지금 언론에 나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더 많이 아파요. 계속 동생 생각이 나고요. 그래도 한 발 한 발 내딛고 전진하고 있으니까 언젠가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씨의 동생 철옥 씨는 중국에서 한 구출 단체를 통해 한국행을 시도했다가 그 길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안전하게 오길 바란다”는 마지막 통화 이후 두 시간 만에 중국 공안에 붙잡힌 겁니다.

[김규리] 동생이 (탈출을) 결심했을 때는, 성공할 수 있겠다고 믿었거든요. 제가 모든 것을 동원하려고 했어요. 직접 중국에 가서 데리고 올까란 생각도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가 너무 한심한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게 너무 후회가 돼요.

체포 후 중국 감옥에 억류됐던 철옥 씨는 지난해 5월에 태어난 손자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국, 북송됐습니다. 김 씨는 중국에 있는 조카 손주를 위해 주기적으로 분유를 보내는 것으로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 영국에 있는 김 씨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규리] 어, 딸. 지금 일어났어? 그랬구나. 어제 학교 어땠어? 어제 엄마랑 통화 못했잖아.

누구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딸과 통화하는 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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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 씨의 휴대폰에 가득한 철옥 씨의 영상. 규리 씨는 자랑스럽게 동생이 노래하는 영상들을 보여줬다. /RFA Photo

중국에 있던 동생과도 북송되기 전까지 자주 영상 통화를 하며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지금도 김 씨의 휴대전화에는 동생의 사진과 영상이 가득합니다.

[김규리] 우리 같이 대화할 때면 항상 이렇게 노래를 불러서 저한테 보내줬어요. 철옥이가 고독하니까 노래를 하면서 푼다고 하더라고요. 재작년에 찍은 비디오예요. 노래를 너무 잘해요, 목소리도 너무 좋고.

휴대전화 속 동생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김 씨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습니다.

지금 동생은 북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언제 다시 동생을 볼 수 있을까.

3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제네바 유엔 본부 정원에 울려퍼지는 철옥 씨의 노랫소리가 마치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듯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지난 3월 15일부터 시작된 북한 인권에 관한 논의에서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0주년과 함께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가 핵심 의제였습니다. 또 이 자리는 강제북송 피해자와 가족들, 북한 인권을 위해 싸우는 각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함과 동시에 중국, 북한 대표부와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진 현장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같은 이유와 목적으로 제네바에 모인 탈북민과 인권 단체들의 7박 8일간 여정을 동행 취재하며 이들의 흘린 눈물과 땀의 의미를 짚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