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9년.
북한 함경북도 은덕군이 고향인 김은주 씨는 당시 12살의 어린 나이에 엄마, 언니의 손을 잡고 중국으로 탈북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한 그날 밤, 세 모녀는 끔찍한 비극을 맞았습니다.
그의 언니는 14살의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고, 엄마는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면서 세 사람은 시골 마을로 팔려가 고된 농사일을 하게 됩니다.
꼭꼭 숨어살았지만, 결국 세 모녀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습니다.
그후 수용소에 수감돼 ‘쓰레기’라 불리며 고된 노동에 시달린 김 씨는 또 다른 강제 북송 피해자입니다.
지난 3월 19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 보고서 발간 10주년을 맞아 주제네바 한국대표부가 주최한 인권 행사에 증언자로 나선 김 씨는 ‘자신이 너무 과거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 김은주 ] 제가 하는 얘기는 ( 탈북한 지 ) 오래 된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 제가 탈북하고 , 강제 북송되고 나서도 정말 많은 시간이 흘러서 가끔은 ' 내가 너무 과거 얘기만 하는 게 아닌가 ' 라며 스스로 돌아볼 때가 있어요 .
그랬던 그가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지난해 10월 강제 북송된 피해자의 언니인 김규리 씨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비록 자신의 이야기는 26년 전 과거의 일이지만, 똑같은 비극과 슬픔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 김은주 ] 규리 씨나 강제 북송 피해자분들을 보면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쭉 이어지는 현재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래서 더 얘기를 계속해야 하고요 .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강제 북송되고 어려움에 처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 그런 마음으로 이번 행사에 오기도 했고요 .
제네바 시내에 위치한 레만 호숫가 앞, 이곳에서 김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스위스가 처음이라는 그는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호수의 풍경에 감탄하며 한국에 있는 두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김 씨지만, 엄마와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한동안 말없이 호수를 바라봅니다.
김 씨는 한국에서 북한 인권 활동을 시작한 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수없이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함께 겪은 엄마와 언니에게는 과거의 상처를 나눌 용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 김은주 ] 서로 좀 다퉜을 때 , 언니가 상처를 받아 예전 일을 꺼냈어요 . 엄마를 조금 원망하듯이 얘기했는데 , 엄마가 ' 미안해 ' 라고 했으면 다 풀릴 상황이거든요 . 근데 엄마가 그 한마디를 안 하시는 거예요 . 그냥 ' 미안해 ' 라고 하기에는 책임감 , 지켜주지 못한 마음 , 그런 것들이 너무 무겁게 엄마의 마음 저편에 있기 때문에 ' 마음속으로는 미안할지언정 쉽게 이 말을 꺼내지 못했겠다 ' 라는 생각을 했죠 . 그래서 중국에서 첫날 밤 언니가 겪었던 경험에 대해서도 아직 한 번도 얘기를 못했어요 .
김 씨가 수많은 증언을 했어도 아직 나누지 못한 말과 곪은 상처는 지금도 그를 괴롭힙니다.
또 자신처럼 수많은 탈북민에게는 말 못할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는 김규리 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합니다.
[ 김은주 ] 저도 강제 북송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동생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 너무 공감이 되는 거예요 . 그래서 규리 씨를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 계속 울었어요 . 공감대가 있고 , 또 강제 북송 당하는 많은 사람을 보면 북한 정권에 대한 공통된 분노가 있고 , 그 감정이 있어서 그냥 얼굴만 봐도 서로 통하고 이해하는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

우리가 제네바에 모인 이유
지난해 10월, 동생이 강제 북송된 후 동생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북한 인권 활동에 뛰어든 김규리 씨도 동생의 이야기를 수십 번 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김 씨의 동생 김철옥 씨는 15살 때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팔려가 현지 중국인과 결혼해 딸을 낳았고, 26년 만에 탈출을 감행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결국, 북송됐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활동하면 혹여나 북한으로 끌려간 동생의 상황이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 김규리 ] 이거 하면서 마음이 참 무거워요 . 그전의 삶은 진짜 암흑 속에 살았어요 . 매일같이 울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 이렇게 말을 할 때마다 더 많이 아파요 .
그래도 김 씨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 김규리 ] ( 마음이 ) 무거운데 , 오늘 이렇게 마무리하면서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높여준 걸 항상 기억하고 , 빨리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하는 여러 대사님들의 말씀을 듣고 나니 헛된 걸음이 아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
특히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그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탈북민 강제 북송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겁니다.

지난 3월 18일, 제네바 유엔 회의장.
회의에 참석한 시 취 중국 대표는 강제 북송 문제에 중국이 언급되는 것은 ‘공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시 취 ] 중국은 북한 사람들의 중국 입국을 언급한 보고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결코 난민이 아닙니다 . 그들은 중국 법과 이민 질서를 위반했습니다 . 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가들의 ( 강제 북송 문제로 중국에 대한 ) 공격을 거부합니다 .
이틀 뒤, 북한 인권 문제를 토론 할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북한의 방광혁 주제네바 대사대리는 일반 주제에 대한 자유 토론이 시작되자 회의장에 들어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이었습니다.
방 대사대리는 준비해 온 4쪽짜리 발표문에서 “유엔 인권이사회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심각한 인권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며 ‘미국’을 11번 언급하면서 북한 인권 보고서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 방광혁 ] 북한은 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결의를 기반으로 한 보고서와 토론 내용을 절대적으로 거부합니다 .
또 그는 주어진 1분 30초 동안 강제 북송된 탈북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발언 이후 곧장 회의장을 나서는 방 대사대리에게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은 강제 북송 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해 수차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적반하장 태도에 분노한 탈북민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김은주 ] 사실 강제 북송은 중국에서 시작됩니다 . 그리고 중국이 멈추면 끝나거든요 . 그 문제는 해결되거든요 . 그리고 강제 북송을 멈춤으로써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성폭행을 당하는 탈북 여성들의 인권 문제도 많은 부분에서 해소될 수 있어요 . 왜냐하면 이걸 ( 중국에서 ) 당하면서도 탈북민들이 말을 못해요 . 중국 경찰이 나의 존재를 알면 내가 잡힐 거고 , 범죄자보다 내가 먼저 잡혀서 강제 북송될 거니까 범죄가 발생하고 피해를 당해도 말을 못하는 거예요 . 그러면 이 범죄자들은 아무런 책임을 안 져도 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
이처럼 탈북민들과 북한 인권 단체, 한국과 미국 등의 호소에 화답하듯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강제 북송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증폭됐습니다.
특히 나다 알-나시프 유엔 인권최고부대표는 중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들에게 강제 북송 중단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 나다 알 - 나시프 ] 모든 국가에게 강제 북송을 중단하고 탈북민들에게 필요한 보호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촉구합니다 . 강제 북송은 해당 개인들을 고문 , 임의 구류 또는 기타 심각한 인권 침해의 실제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
" 동생아 , 견뎌 ... 제발 살아만 줘 "
주말을 맞은 제네바 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기분이 한껏 들뜬 김규리 씨는 잠시 짬을 내 유엔 제네바 건물 건너편에 있는 국제 적십자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 김규리 ] 일단 'Red Cross', 적십자라는 거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 인권에 관한 거잖아요 .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김 씨가 마주한 건 ‘가족 간 유대 회복’ 전시장.
전시장 입구에 적힌 문구가 그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인간은 서로 연결돼 있는 사회적 존재다. 이들간의 유대 관계가 끊어지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 일부분을 잃는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은 중요하고 또한 필수적이다.’
한 줄 한 줄 글을 따라가는 김 씨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오릅니다.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사이로, 보고 싶은 가족들에게 쓴 손편지에 김 씨의 시선이 멈춥니다.
[ 김규리 ] 편지를 써서 ( 동생이 ) 받을 수 있으면 써주고 싶어요 .
편지를 통해 동생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 김규리 ] ' 보고 싶다 ' 고 하면 울 거 같고 , ' 견뎌 ' 라는 말밖에는 ... ' 살아남으라 ' 는 말밖에는 ... 살아남아야 만날 수 있으니까 . 아마 지금 죽을 것만 같을 거예요 .
김 씨는 끝내 꾹 참고 있던 울음을 떠뜨렸고, 한참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만약 30여 년만에 동생을 다시 만난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은 것이 그의 마지막 소박한 꿈입니다.

[ 김규리 ] ( 동생을 만나면 ) 제일 먼저 먹이고 싶은 게 만두요 . 엄마가 항상 만들어 주던 만두 . 제 동생 기억에도 그 만두는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만든 두부 , 초두부가 아닌 모두부로 먹이고 싶어요 .
‘강제 북송’은 지금도 수많은 탈북민과 그들의 가족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 아픔이자 비극입니다.
또 그들이 ‘강제 북송 중단’을 외치는 이유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미국에서, 영국에서, 한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제네바에 모인 이유이자, 강제 북송된 가족들이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 김규리 ] 강제 북송된 우리 모든 탈북민들 그 수가 얼마인지는 저는 알 수 없지만 , 견뎌내야 한다는 거예요 . 많이 아프고 , 많이 배고프고 많이 힘들다는 거 알아요 . 그렇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굳건히 살아남기를 . 살아남아야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는 거 . 그래서 앞으로 나와서 북한의 만행들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전해줬으면 좋겠고요 . 지금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감옥에 아직 있는 그 탈북민들에게도 그 내부에서라도 용기 있게 견뎌내주는 게 그게 싸우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지난 3월 15일부터 시작된 북한 인권에 관한 논의에서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0주년과 함께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가 핵심 의제였습니다. 또 이 자리는 강제북송 피해자와 가족들, 북한 인권을 위해 싸우는 각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함과 동시에 중국, 북한 대표부와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진 현장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같은 이유와 목적으로 제네바에 모인 탈북민과 인권 단체들의 7박 8일간 여정을 동행 취재하며 이들의 흘린 눈물과 땀의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