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북한 젊은이 독일을 가다]② 독일인들의 통일 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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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획 특집 남북한 젊은이들의 2011년 통일연습 ‘도이칠란트를 가다’ 강대국에 의해 분단의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 통일을 이룬 도이칠란트. 이 시간에는 통일을 체험한 도이칠란트 사람들에게 통일과정과 통일 후 변화에 대해 직접 들어봅니다. 이진서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랄프 마이어: 나는 랄프 마이어입니다. 독일 중부인 튜린엥에서 장벽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66년 태어났죠. 구 동독 시절 서독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가려고 여행 비자를 신청하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것도 허가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이유는 모르지만 대부분 거절당했었습니다. 통일이 된 후엔 삶이 달라졌습니다.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 동독 출신 마이어 씨의 말처럼 도이칠란트 사람들은 통일이 가져다 준 가장 큰 해택이 인간으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 즉 인권을 찾아줬다는 거였습니다.

(교회 종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

도이칠란트 어느 지역을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웅장한 교회 건물과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 바하, 베토벤 등 세계 유명의 음악가와 칸트, 마르크스, 니체 등 수 많은 철학자가 태어난 곳 도이칠란트. 지금은 분단과 통일의 흔적을 애써 찾으려고 해야만 느낄 수 있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이칠란트는 지금은 한반도와 같은 분단국가였습니다.

(라히프찌히 거리의 오페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9년. 구 동독 정권을 붕괴 시켜 통일의 발판을 만든 라히프찌히의 리콜라이 교회. 이 교회에선 매주 월요일 젊은이들의 평화기도회 모임이 있었고 이는 훗날 동서 장벽을 허무는 불씨가 됩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모임을 이끈 이 교회 휘러 목사의 말입니다.

휘러 목사: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자리 잡으면서 밖에서 얘기할 수 없는 주제들에 대해 누구든 교회 안에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부터 그런 모임은 매주 월요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이칠란트 교회는 이미 통일이 되기 7년 전부터 슈타지 즉 비밀경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슨 말이든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파이프오르겐 음악)

휘러 목사: 특별히 오늘 분단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분단을 장벽을 열고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남과 북이 남녀가 어린아이가 서로 하나가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도이칠란트에서 시민봉기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또 대규모 집회는 어떤 식으로 진행 되었는지에 대해 휘러 목사에게 듣고 특별히 남북한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도까지 했지만 탈북 대학생 이영수 씨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영수: 도이칠란트엔 당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유와 기도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는데 북한은 그런 자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자유조차 없는 북한에서 과연 여행의 자유를 요구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북한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깝죠.

도이칠란트 시민이 경험한 통일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현재 베를린에서 대학에 다니는 구 동독 출신 아담 씨의 말입니다.

아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물론 더 좋은 세상 좋은 사회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도 정작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특히 저와 같이 국경지역에 살았던 사람은 통일이 되면서 어제까지 적이었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는 사실에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이었죠. 저는 어렸었지만 부모님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어느 정도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통일 이후 구 동독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주변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담: 구 동독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컸습니다.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유로이 어디든 갈 수 있고 생각하며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죠.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티아나 교수도 통일 후 낙후 된 동독 경제를 살리느라 국가 재정이 나빠지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또 은퇴연금이 축소 등 통일의 후유증은 분명 무시 못 할 사회 불만으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타아나: 1989년 이전에 동독 사람들이 처음에는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이 되고 난 후 서독의 경제적, 법률적 지원으로 삶이 확실히 좋아졌기 때문에 이전 동독의 생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도이칠란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서 동과 서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 도이칠란트는 구 동독 사람들의 시민봉기에 의해 단일 국가가 됩니다. 당시 동독 사람들의 구호는 ‘여행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였습니다. 이는 점차 ‘자유선거’, ‘베를린 장벽 철거’로 이어졌고 결국 “우리는 한 민족이다”를 외치며 통일을 맞았습니다.

MC: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획 특집 남북한 젊은이들의 2011년 통일연습 ‘도이칠란트를 가다’ 내일 이 시간에는 남북한의 젊은이들과 이들을 인솔한 기성세대가 전해주는 “남북통일에 관한 마음”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