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집 휴먼다큐] “아빠, 사랑해요” (I love you, Father)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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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한국전쟁 고아 출신으로 북한 어린이를 돕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의 고(故) 샘 한(Sam Han) 대표. 골수암 4기란 병마의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도 막지 못한 북한 어린이를 향한 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한 아들을 통해 살아 숨 쉬는 북한 고아를 향한 열정.

RFA 특집, 휴먼다큐 "아빠! 사랑해요!", 첫 번째 고백입니다.

[녹취: Sam Han] 참 기뻐요, 제가 하는 일이 너무 기뻐요. 정말 불쌍한 (북한) 아이들을 위해서 저 같은 사람이 매일 도울 수 있어서요. 오로지 제 건강보다 탈북 고아들이 빨리 미국에 와서 좋은 가정에 입양돼 나같이 사랑도 많이 받고 구원받는 것이 매일 저의 꿈입니다.

[Arthur Han]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계속 기도했어요. "하나님, 내가 여기서 뭐 해야 해요?"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아빠의 일을 이어가기로 했어요. 그것에서 내 삶의 목적과 비전을 봤어요. 북한 아이들을 도울 거예요. 이제 이것밖에 없어요. 내 직업, 내 삶은 북한 아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평화로운 도시 몬테벨로 (Montebello). 이곳에 북한 고아를 돕는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 (Han-Schneider International Children's Foundation)'이 있습니다.

여느 날처럼 화창한 날씨를 보인 지난 9월 6일, 3층으로 된 아담한 가정집을 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 앞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Act] Welcome to Headquarters!!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직원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이 청년이 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한 어린이를 돕고 있는 아더 한(Arthur Han, 한국명: 지호) 이사입니다. 지난 6월, 북한 고아를 도왔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사무실을 이곳으로 이전하느라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지만 한 이사와 직원들의 모습에서 분주함과 진지함이 묻어나옵니다.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이 직접 북한 고아원까지 전달하는 영양식품. 현재 1,800명의 고아들을 돕고 있다. RFA PHOTO/ 노정민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이 직접 북한 고아원까지 전달하는 영양식품. 현재 1,800명의 고아들을 돕고 있다. RFA PHOTO/ 노정민

아더 한 이사의 아버지는 이 재단을 설립한 '샘 한(Sam Han)', 한국 이름으로 한상만 대표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6살의 나이로 부모 형제를 잃어 고아가 됐고, 1961년 미국인 양아버지의 도움으로 특별법을 통해 미국에 입양됐습니다. 당시 양아버지였던 아더 슈나이더 박사는 독신자였는데, 샘 한 대표는 독신자에게 입양이 허용된 첫 번째 사례였습니다.

그 후 샘 한 대표는 양아버지의 극진한 사랑 속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수백만 달러를 자산을 보유한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했는데요, 하지만 2002년의 어느 날, 골수암 4기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북한 고아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과 양아버지의 이름을 딴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골수암 선고를 받은 지 5년 만인 2007년의 일입니다.

[녹취: Sam Han] 1995년에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많은 고아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굶주림과 환란 속에서 사는 것을 보고 '바로 여기가 내가 와서 이 아이들을 위해 생을 보낼 곳이구나!'라는 사명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후반에 제가 골수암 4기로 사형선고를 받고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의 아들인 아더 한 이사도 아버지가 왜 이 재단을 설립해 북한 고아들을 돕기 시작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전쟁고아였고, 미국인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큰 사랑을 북한 고아에게 되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더 한 이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자신을 괴롭히는 암과 싸우면서도 늘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북한 고아를 돌보고 주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아버지의 소망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북한 고아를 돌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Arthur Han] 아빠는 다른 사람에게 걱정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돌보셨고요, 자신은 상관없었어요. 아빠의 목표는 자신이 살아서 더 많은 아이를 더 돌보는 것이었어요. 그것밖에 없었어요. 아빠가 투병으로 너무 힘들었는데요, 기운도 없고, 식사도 잘 못하고..., 그래도 아빠는 전혀 불평이 없었어요. 늘 행복하려고 노력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빠를 만나는 사람들은 저절로 아빠를 사랑했어요.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이 돕는 북한 고아는 약 1천800명. 북한 평안남도 평성과 황해도 황주에 있는 두 개의 고아원에 영양실조와 설사 등으로 고통받는 신생아부터 8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영양식품과 의약품 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확보한 식량이 중국을 거쳐 북한 고아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운송을 책임지는 겁니다.

또 중국이나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 고아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될 수 있도록 미국 의회를 상대로 '탈북고아 입양법안'의 통과를 추진하는 운동도 함께 전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샘 한 대표의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요, 자원봉사자로, 재단의 직원으로서 그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샘 한 대표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이윤경] 북한 어린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한상만 이사장과 인연이 시작됐어요. 암 투병으로 치료 중이었는데 제가 이메일을 하니까 그 다음날 바로 전화를 주셨어요. 너무 인자하신 목소리로 '누구나 환영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거기서 열정과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자원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당신의 최고의 치료약은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생각을 할 때만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것이 최상의 치료제였다는 것을 믿어요.

[Leonard Tham] 그분은 항상 긍정적이었고, 투병 중에도 북한 어린이를 돕는 열정은 식지 않았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자신도 고아였기에 배고픔이 무엇인지, 부모 없이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골수암과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북한 고아를 위해 헌신했던 샘 한 대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재단에서 그와 함께했던 3년의 시간을 회고하는 잭 로페즈 씨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고 끝내 눈물이 그의 볼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Act] Meeting and discussion

골수암과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금은 아들인 아더 한 이사가 재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기 전에는 탄탄한 금융회사에 다녔고 자신의 꿈도 근사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고아들을 돕는 일에 자신은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2010년부터 아버지를 곁에서 조금 도운 것이 경험의 전부입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자동차를 타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와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아더 한 씨, 영어는 유창하지만 한국말은 다소 서툴렀는데요, 차 안에 놓인 그의 힙합스타일 모자를 보니 아직은 젊은 청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굉장히 젊어 보이세요.)

[Authur Han] 몇 살처럼 보여요? 30살입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큰일을 맡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Authur Han] 힘들어요. 저는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어서 감당할 수 없었어요. 내가 너무 젊고 한국말을 잘 못해서요.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요, 사람들이 놀라요. 어떻게 비영리단체를 이끌 수 있는지... '네가 뭘 알아?' '네가 무슨 경험이 있어?'. 하지만 나에게 아빠는 매우 소중하고요, 그래서 그건 상관없어요. 내가 배울 거예요.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가르침과 조언을 들을 겁니다. 하지만 때로는 단체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두려울 때가 있어요.

(이 일을 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Arthur Han]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물어봤어요. "네가 이 재단을 운영해 볼래?" 내가 솔직하게 말했어요. "나는 합당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아빠처럼 열정이 없어요." 라고요. 나는 식당을 운영하며 일하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늘 갖고 있던 꿈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내가 여기서 뭐 해야 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식당 운영해요? 아니면 아빠 뒤를 이어서 재단 일을 해요?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아빠의 일을 이어가기로 했어요. 목적과 비전을 봤어요. 북한 아이들을 도울 거예요.

(그럼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시겠다는 거예요?)

[Arthur Han] 이제 저에게는 이것밖에 없어요. 내 직업은 북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고요, 이것이 내 삶이에요

아더 한 이사가 아버지의 재단을 운영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컸습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키워준 아버지.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높여주라고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으로 재단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서투르고, 자신의 미래도 불안하지만 아더 한 씨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북한 고아를 돕고 재단을 잘 운영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동기를 스스로 부여합니다. 또 '난 잘할 수 있다'는 용기도 불어넣는데요,

[Arthur Han] 어리고 경험도 없지만 해결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고요, 난 잘할 거에요. 이제 이것은 새로운 목표이자 저의 새 인생이에요. 이제 이쪽으로 가야 해요. 북한 아이들을 위해, 또 아버지를 위해 너무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이에요.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래서 아빠를 위해 할 겁니다.

아들을 통해 북한 고아들을 향한 사랑을 계속 전해줄 수 있게 된 고(故) 샘 한 대표. 아들의 굳은 다짐을 보며 하늘나라에서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캘리포니아주의 하늘처럼 기분 좋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