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탈북자의 독립기념일 캠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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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4일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지 238년이 되는 날입니다. Fourth of July, 이 독립기념일을 맞아 미국 전역은 온통 환희와 명절 분위기에 휩싸였는데요, 가족들끼리 야유회도 가고, 또 밤에는 불꽃놀이 행사도 벌입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들도 이날 캠핑도 하고, 보트도 타면서 보람찬 하루를 즐겼는데요, 자유와 환희로 떠나는 독립기념일 캠핑 현장. 지금부터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기자: "자, 떠날 준비 되었어요?"

(노래소리) "캠핑가자, 캠핑가자, 캠핑 가자…" (차 오디오소리)

미국에서 태어난 4살짜리 탈북 2세 지현이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떠있습니다.

일행이 모이기로 한 캠핑 장소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인 애나호수(Anna lake).

미국인들에게 캠핑은 자연 속에서 지친 마음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는 여가 생활입니다. 호숫가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텐트, 즉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텐트 현장>

기자: "이걸 내가 일단 다 박아놓을 게…이 자리에 텐트를 좀 쳐 보았어요?"

그러자, 이곳 별장 주인인 50대의 한인교포 여인이 대꾸합니다.

한인교포: "여기 많이 쳐보았는데……지난해에는 우리 교회에서 147명의 아빠와 아이들이 와서 텐트를 쫙 치고 잤어요. (여기는 돌이 없어서 치기 좋네요) 여름이면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와서 텐트를 치니까 동네에서 소문났어요. 올해에는 몇 명이나 오는가 하고…"

<제트스키 타기>

텐트를 다 친 다음에는 보트타기가 시작됐습니다. 20대의 함경북도 출신 탈북자 조진혜씨가 제트스키 주행에 나섰는데요, 욕망만 가지곤 안 된다고 뽐냅니다.

조진혜: "나도 작년에 한 시간 반 정도 (제트스키)타고 얼굴과 등이 새까맣게 탔어요. 올라가면 내오고 싶지 않아요. 물이 파도칠 때 옆으로 이렇게 가면 넘어져요. 파도를 타고 넘어야 되요"

일행: "아, 그렇구나……"

버지나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Anna호수는 둘레만해도 200마일, 약 800리가 넘는 인공호숩니다. 소나무, 참나무 숲 속에 둘러 싸인 호수는 금빛 은빛으로 출렁입니다. 성을 방불케 하듯 호숫가의 고급 빌라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잘 다듬어진 잔디 위에는 휴식을 즐기는 미국인들로 북적입니다.

기자: "평양의 대동강에서 제트스키를 탈 수 있을까?"

이때 평양에서 온 30대 탈북자 해연씨가 설명합니다.

해연: "대동강에서 제트스키를 탈 수 있지만, 체육선수들만 타고 일반 사람들은 못 타요. 그리고 대동강에는 누구나 함부로 들어가면 안돼요. 강 바닥 모래를 계속 파서 물이 돌아서 들어가지 못해요"

<보트 타기>

미국 친구들이 운전하는 보트 위에서 탄성이 연방 터져나옵니다. 은빛 갈기를 날리며 보트는 시속 40마일 속도로 달립니다. 호수 위에는 보트와 제트스키를 타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룹니다. 탈북 난민들도 수영도 하고, 조개잡이도하면서 휴식을 즐겼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축포 발사 현장>

(축포 발사 소리)

일행: "Wow(와우~)"

매년 독립기념일이 되면 수도 워싱턴과 미국 곳곳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작년 한해 폭죽만으로 2억1300만달러를 수입해 터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쯤 되면 미국인들의 불꽃 놀이 열기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기자: "이렇게 축포를 쏘자면 보통 얼마나 드세요?"

한인교포: "애들이 한번 사오면 400~500달러어치를 사와요. 펜실베니아에 가서 도매가격으로 사와요. 그렇게 싸게 사가지고 모았다가 1년에 한번씩 터치는 거예요"

심주안: "한국에선 이런걸 쏠 수가 없어요"

한국 유학생 심주안 씨가 한마디 합니다.

기자: "왜요?"

심주안: "개인이 쏘는 게 진짜 장난이 아니지 않아요. 펑펑…"

<우등불가>

황홀했던 불꽃놀이는 끝나고 일행은 우등불가에 모여 앉았습니다.

기자: "조개와 새우가 왔습니다."

일행: "Wow(와우~)"

우등불 위에 쇠그물을 올려놓고 조개와 새우를 굽습니다. 고구마는 은박지에 싸서 한쪽 구석에 올려놓고요. 우등불 주위에 둘러앉은 한인교포들과 북한 난민들은 고향 이야기와 이민 이야기로 밤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한인교포: "나는 미국에 1977년 7월 17일에 왔어. 내가 16살 반에 이민을 왔어요. 나는 오기 싫어서 안 오겠다고 버티다가 부모님한 테 따귀를 맞고 왔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야 하는데 부모님이 가야 한다고 무지막지하게 데리고 왔지요.

하와이에서 영주권 받고 짐 검사 받다가 LA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어요. 하와이에서 짐 검사가 오래 걸렸어요. 영어를 모르다 보니까…비행기를 놓친 거예요.

우리 엄마가 내가 중학교 때 ABCD를 배웠으니까, 나보고 해보라고 … 안내원이 뭘 도와달라고 하니까, 쳐다보고 울었다니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너무 혼나서 먹은 게 체했어요. 3일을 굶었지……"

영어 한마디 모르는 낯선 땅에서, 그리고 음식도 맞지 않는 미국땅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인들 가운데는 이렇게 맨손으로 미국에 와서 대학도 졸업하고, 큰 사업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인교포: "여기가 관광지이니까, 한국 사람들이 놀러 오는데, 우리보고 놀래요. 이런 시골에서 장사하는 한국 사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해요. '어,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사네?'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어,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오네?'하고 놀라요."

이웃에 사는 고명섭씨도 미국은 열심히 노력하면 한 것만큼 차례지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고명섭: "없는 사람이 와서 살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해요. 노력만하면 살 수 있는 곳. 그게 미국. 뭐든지 노력만 하면 충분히 성공해서 살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걸 느꼈어요."

목수일, 집수리 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번 고 씨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 두 채를 소유했던 성공한 한인이었습니다. 고씨는 탈북자들에게 열심히 살면 희망이 있는 곳이라고 용기를 더해줍니다.

(색스폰 소리)

"아, 이게 무슨 소리야?"

지난해 탈북 고아를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무료 연주를 해준 데이빗 타울러(David Tauler)씨가 색소폰 소리로 고요한 밤 공기를 깨웁니다. 하루 종일 재미있게 보낸 독립기념일의 의미에 대해 자강도 출신의 북한 난민 안드레이 조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드레이 조: "미국 독립기념일에 대해 한가지 만은 긍지로 생각하지요.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을 안 했더라면 오늘날 내가 미국에 와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미국인들이 대륙을 건너와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기독교 국가를 세운 것 자체가 미국이 정말 큰 역사를 이뤘다고 생각되네요"

이런 자유와 평등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값비싼 희생과 투쟁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느끼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탈북자들도 자유와 평화의 땅에 꿋꿋이 발붙이고 살아갈 내일을 그리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노래 아리랑)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