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한국전쟁의 기억과 진실 ②] 삐라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는 무수히 많은 삐라가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59년이 지난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삐라는 뿌려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삐라 속에는 6.25의 어떤 모습이 담겨 있을까요? 서울의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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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을 찾은 건 지난 17일.

박성우: 안녕하세요.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왔습니다.

박상학: 네. 어서 오세요.

이곳 대표인 탈북자 출신 박상학 씨는 이른 시간부터 사무실에 나와 하루 일정을 점검하다 기자를 맞이합니다.

사무실은 책상 네다섯 개와 그 위에 놓인 컴퓨터가 집기의 전부일 정도로 단출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무실이 바로 북측이 지난해 남측 당국에 공식 항의까지 하게 한 전단지, 그러니까 삐라를 만드는 곳입니다.

사무실 구석에는 비닐로 된 삐라 낱장을 구겨서 가득 담아둔 큰 비닐봉투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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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를 풍선에 담고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 - RFA PHOTO/박성우 (RFA PHOTO/박성우)


박성우: 이건 뭡니까?

박상학: 이게 저쪽에 보내는 전단지죠.

박성우: 이렇게 뭉치로 접어서 보내시는군요.

박상학: 아니요. 이걸 한 장씩, 이렇게 잡아줘야 (구겨줘야) 해요. 그냥 이대로 보내면 떨어져 버리니까. 그래서 수작업을 하죠.

박성우: 하나씩 하나씩 다 구긴다는 말씀이세요?

박상학: 네.

박성우: 비닐 (삐라) 낱장을 하나씩 하나씩 다 구겨서, 큰 비닐봉투에 넣어서, 이 큰 비닐봉투를 풍선에 매달아서...

박상학: 네.

박 대표가 지난 2005년부터 보내기 시작했다는 삐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북측은 지난해 10월 남북 군사실무회담 등에서 “삐라 살포가 계속되면 개성공단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신경실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박상학: 항목별로 크게 보자면, 왜 북한에서 탈북자가 생겼으며, 그 탈북자들이 왜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됐느냐. 두 번째로 여기서 보시다시피, 6.25 전쟁, 북한에서 그렇게 선전했던...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59년이 지났지만, 삐라 속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6.25 전쟁이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정권의 ‘허구성’과 ‘거짓 주장’을 가장 적나라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건이 바로 한국전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삐라에 북한 당국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박상학 대표는 설명합니다.


박상학: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전단지를 보낼 때, 사실과 진실을 알려 드리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6.25의 진실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근본이고 핵심이죠.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6.25는 미국과 남한의 군인이 합작해서 북한을 침략한 것이고, 그래서 미국과 남한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금년에도 6월 25일 김일성 광장에서 미국이 남한에서 당장 물러가라고 데모를 할 겁니다.

하지만 6.25가 사실은 북측이 남측을 침략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박 대표는 북한 당국이 “그간 이 같은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주민들이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했고, 바로 이 적개심에 바탕 해 북한 정권은 내부 결속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북한인연합의 이민복 대표도 박 대표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에서 북한에 삐라를 보내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이들이 각각 북측에 보내는 삐라는 6.25와 관련된 내용을 공통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관련한 내용을 기술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삐라에서 6.25와 관련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2003년 10월부터 삐라를 보내는 이 대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6.25를 누가 일으켰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호소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술 방법을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고 이 대표는 말합니다. 한국 정부는 7-80년대 북한에 보낸 삐라에서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의 회고록’이나 ‘이학구 북한 인민군 대좌가 귀순해 고백한 내용’을 남침의 근거로 들었지만, 북한에서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비방하고 중소 관계를 무너트린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혀 있고, 이학구가 귀순했다면 ‘살기 위해서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는 게 북한식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이민복 대표는 말합니다.


이민복: 그래서 나는 흐루쇼프 이야기도 안 썼어요. 아무 이야기도 안 썼어요. 이학구 이야기도 안 썼어요. 그런 건 안 먹히니까.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전쟁 초기 참가자에게 물어봐라’ ‘38선 주민에게 물어봐라’ 신천 대학살, ‘신천 주민에게 물어봐라’ 이것이죠. 이게 무서운 거예요.

이처럼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를 규명하는 게 현재 삐라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삐라를 있게 한 6.25 당시의 삐라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지난해 4월 강원도 정선에 있는 ‘추억의 박물관’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에 뿌려진 삐라를 모아 전시회를 한 진용선 관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6.25때 남북이 서로에게 뿌린 삐라는 ‘안전을 보장할 테니 투항’하라는 내용을 가장 많이 담았다고 말합니다.


진용선: 이게 삐라들, 6.25때 평양에 뿌려졌던 삐라에요. 뒤에 보면 ‘평양 시민 여러분’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리고 이건 안전, Safe Conduct Pass(안전보장통행증)이고. 이걸 주워들고, 지금 여기에는 없는데, 사진이 있었어요, 어린아이 북한군이 (안전보장통행증을 들고) 미군에 귀순한 거예요.


박성우: 6.25때 뿌려진 삐라는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진용선: 넘어오라는 거죠. 북한 병사들이 전쟁을 그만두고. 심리전이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넘어오라고. 또 북한에서도 미군들에게 삐라를 뿌렸고요.


박성우: 북한에서 남측을 상대로 뿌린 삐라의 내용은 어떤 건가요?

진용선: ‘싸우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또는 ‘여기 와 있는 군인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다’ (웃음) 또는 ‘부모가 애타게 기다린다’ 이런 내용이었죠.

박성우: 내용이 차이가 좀 있네요.

진용선: 차이가 많지요. 우리나라는 그냥 북한 병사들에게 이 증명서를 들고 귀순하라는 게 많고, 또 (폭격을 하니) 피하라는 게 많은데. 북한에서 뿌린 건 ‘돌아가라’거나 학살 장면이 많이 나왔죠. (이런 내용을 담은 삐라가) 저기도 하나 있어요.

진 관장의 말처럼 6.25 당시 삐라의 내용은 심리전 차원의 전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59년이 지난 현재의 삐라에는 당시 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규명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삐라를 뿌리는 주체의 차이도 생겼습니다. 과거엔 남북 모두 정부 차원에서 삐라를 뿌렸습니다. 하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 모두 당국 차원의 삐라 살포는 중단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는 탈북자를 위시한 민간인들이 북측에 삐라를 뿌리고 있습니다.

삐라를 전달하는 방법의 차이도 있습니다. 6.25 당시 삐라는 대부분 비행기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뿌렸지만, 요즘 삐라는 풍선을 이용해 뿌립니다. 요즘 삐라는 민간인들이 뿌리기 때문에 비용이 저렴한 방법을 찾다 보니 풍선을 이용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또 풍선은 소리가 나지 않고 낮게 날아가 잘 들키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용선 관장은 설명합니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삐라와 관련해 다양한 차이점이 생겼지만, 전쟁 당시 뿌려진 삐라가 현 시점에 와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특히 6.25 당시 삐라는 이제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수집가들에게 금전적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대상입니다. 진용선 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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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한에 있는 미군을 상대로 뿌린 삐라 (뒷면). - RFA PHOTO/박성우 (RFA PHOTO/박성우)


진용선: 삐라가 종이쪽지 한 장에 비해서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쌉니다. (웃음) 칼라 삐라 같은 경우는 한 장 구입하려면, 멋있는 거 같은 경우는 100달러가 넘어요. 6.25때 만들어진 칼라 삐라는 한 장에 좋은 건 100달러가 넘고. 특히 북에서 남으로, 미군들이 보게끔 만든 삐라들 있죠. 이건 아주 희귀합니다. 이건 100장에 한 장도 안 나올 정도로 희귀하니까, 그런 삐라는 더욱더 귀하죠. 그래서 지금 미국에는 한국전쟁 관련 삐라 수집하는 분들이 여러 사람이 있어요. 아마 6.25 전쟁 삐라는 우리보다 그분들이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주 좋은 삐라, 북한 인공기에 미군 깃발이 있고, 미군 깃발을 짓밟고 하는 (그림이 있는) 삐라는 미국에서 500달러 이상에도 팔리고 그래요.

전쟁 당시 삐라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면, 요즘 북한에 뿌려지는 삐라도 소위 ‘돈이 된다’는 이유로 북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박상학 대표가 보내는 삐라에는 말 그대로 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삐라마다 돈이 다 들어 있는 건 아닙니다. 박 대표는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6차례에 걸쳐서 북한 최고액권인 5천 원권 지폐 1,500여 장, 그러니까 총 750만 원가량을 삐라에 섞어 뿌렸다고 말합니다.

박상학: 엄청나죠. 그냥 전단지 보내는 것보다, 돈을 넣어서 보내니까, 무지하게 좋아하지요. 전단지를 받아봐서 좋은데다, 돈까지 넣어 주니까. 그게 한 달 월급 이상인데, 그걸 갖고 장에 가서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 먹으면, 굶어 죽는 북한 주민에게, 우리 많은 탈북자도 북한에서 그런 걸 체험했으니까 (아는데), 제일 중요한 게 배고플 때 밥 한술이라도 떠 주는 게 최고의 은덕이거든요. 또 그런 사람들의 말을 믿게끔 돼 있고요.

6.25 전쟁 당시 한반도를 뒤덮었던 삐라. 그 비극적인 역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으로 남북이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북측 주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조금이나마 금전적 도움을 주고자 하는 남한 민간인들의 삐라 보내기도 계속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