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특집] ② ‘팔프공장’서 노동...술로 외로움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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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 반세기가 넘는 남북 분단의 비극 한가운데는 납북자들이 있습니다. 6.25전쟁 시기에 북한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고 전쟁 후에는 하늘과 바다, 해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체제 대결 속에 끌려간 납북자들은 북한에서는 이방인으로 감시 받고, 남한에서는 잊혀진 존재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납북자 이야기. 오늘은 두번째 순서 “납북어부 ‘팔프공장’서 노동...술로 외로움 달래”를 보내드립니다. 보도에 정영기잡니다.

1975년 1월 천왕호의 사무장 최욱일 씨가 북한에 끌려가 있는 동안 남한의 가족은 살기 위해 별의별 고생을 다 해야 했습니다.

최욱일씨 : 제가 없는 바람에 배우자가 자식들 공부도 제대로 잘 시키지도 못하고 이러다 보니 잘 살지도 못합니다. 집도 없고 고생 많이 했죠.

그런데 최욱일씨는 함경북도 김책시의 농촌에 정착한지 5년 후 북한 노동당에서 정해준 여성과 가정을 꾸리게 되습니다. 본의 아니게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 셈입니다. 납북되기 전에 이미 남한에 가정이 있던 최욱일 씨는 북한에서 만난 부인과 같이 살면서도 늘 감시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에서 끌려간 어부들을 정착 시켜 체제선전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개인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한 가정을 산산조각낸 것입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세대주(가장)가 없어졌으니, 남한의 가족은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최성룡 이사장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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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당시 서울 종로구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앞에서 북한인권증진센터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최성룡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최성룡 이사장 :아버지가 납치당했으면 가정이 파괴되는 겁니다. 우선 저희는 집 재산을 다 뺏겼지 않습니까? 아버지 뺏겼고 재산 뺏겼고 어머님 혼자 우리 자식들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그러면 정부가 쌀이라도 주고 직장이라도 알선해주고 먹고 살게 끔 자리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혹시 북한에서 남파가 안 됐나, 북한하고 내통을 안 했나 이런 거를 감시했단 말이야. 연좌제 피해 여기에 대한 (정부)책임이 큽니다.

북에 끌려간 납북 어부들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어 냉가슴을 앓고, 남한에 있는 자식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교육을 못 받고, 평범한 직장에 조차 취직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북한에 끌려간 납북자들은 행복했을까?

함경북도 길주군에 무리배치된 납북어부들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탈북민 김영란 씨(보안위해 익명 요청). 2015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김영란 씨는 “1970년대 길주군 팔프 공장에 배치된 납북자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란 씨: 내가 아는 사람(납북자)이 3명입니다. 우리 있는 곳에 왔을 때 나이를 보면 20대초반이나 40대 후반에 납북된 것 같아요. 한 분은 이름은 모르는데 길주팔프공장에 배치 받아왔는데, 그 분은 나이가 좀 있었어요, 그는 한국에 가족이 다 있었고 자기네는 생활이랑 다 괜찮은데, 어떻게 재미로 배 탔다가 납북되었다고 해요. 그래 술만 마시면 계속 자기는 '한국에서 이밥만 먹고 살다가 이렇게 북에 와서 고생한다'고 계속 울었어요. 그러면 보위부에서 '계속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놓고는 술만 마시면 또 그렇게 말하고, 하여튼 가정도 안 이루고, 홀로 살다가 돌아갔어요. 너무 부모 그립고 고향 그리워서 남한 노래 '그리운 고향' 계속 혼자 불렀대요.

<한국가요: 그리운 내고향> 타향에서 우는 사람 고향을 왜 떠났나~

납북된 지 41년만에 탈북에 성공한 오대양호 선원 전욱표씨도 한국으로 탈북 할 당시, 중국에서 남한 대통령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대독 ] "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께 , …북쪽에서 40 년간 고생하며 생활하던 나이가 68 되고 보니 고향 친척 형제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가면서 고향땅으로 고향사람들 , 친척 형제들과 남은 여생을 고향 땅에서 살다가 묻히고 싶어 고생 끝에 탈출할 기회가 생겨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 대통령님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 2013 8 11 전욱표 "

하지만, 그 역시 남한에 정착한 뒤, 북한에 남겨진 가족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북쪽에 있을 때나 남쪽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탈북에 성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전후 납북자는 모두 9명,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전후 납북자는 516명에 달합니다. 그러면 납북자 문제는 왜 풀리지 않고 있을까?

오경섭 남한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의 말입니다.

오경섭 실장 : 문제는 북한 쪽에서 납북자들에 대해서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과 방침을 정하고 우리 정부의 요청에 호응하지 않았죠. 그래서 납북자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또 어떤 납북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 측의 자유 의사로 북한에 정착한다 이렇게 얘기해서 납북자 송환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 납북자 문제가 장기화된 근본 원인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자면 우선 북한이 인정해야 하는데, 북한은 ‘풍랑을 만나 구조된 사람들’이라고 실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납북 어부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구조돼 공화국에 자진 남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북한을 탈출해 내려온 납북자들의 증언과 다릅니다. 48년 전 납북됐다가 탈북에 성공한 ‘천왕호’ 사무장 최욱일씨는 함경북도 김책시 농촌에 배치받은 뒤, 육체적 고난과 정신적 외로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최욱일씨 : 뭐, 내보내 주지 않는 거 어떡합니까? 계속 농장에서 강제 노동만 하고 있었죠.

납북자 문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진 비전향 장기수 북송 때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의 말입니다.

오경섭 실장 :우리가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 쪽에 올려보낼 때 이 납북자들과 교환하는 제안을 북한 쪽에 했으면 사실 상당 부분 해결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한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한 ‘6.15남북공동선언’ 3항에는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있습니다. 이에 따라 남한은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전원 북한으로 보냈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납북자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정부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국정과제로 명시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성룡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납북자 문제 해결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성룡 이사장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우리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가 처음 들어갔어요. 그 상황을 보고 다른 정부보다는 이 정부가 확실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좀 찾아보는구나. 이런 거를 제가 피부로 느꼈어요.

윤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납북자 가족 그리고 한국전쟁때 북한으로 끌려간 가족 등을 만나 위로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14일 납북자 가족 대표를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했습니다. 현직 대통령 내외가 납북자 가족을 만나기는 처음입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새로 개편되는 통일부 조직에 장관 직속 '납북자 대책반'을 설치했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 등 인도주의적인 요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오경섭 실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대책반을 설치하고 납북자 송환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일단 정부 입장을 표명한 건 굉장히 잘한 결정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될 정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 실장은 또 “납북자를 한국으로 실제로 데려오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그 과정에 북한에 있는 납북자들과 납북자 가족 또는 국군 포로와 국군 포로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속하여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 지연될 경우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이 했던 비공식적인 방법, 즉 탈북 브로커들을 통해 납북자나 국군 포로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민간차원의 노력들에 대해 정부가 일정한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렉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납북자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유엔 차원에서 북한에 지속적으로 생사확인 요청과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 :다른 나라 사람들도 납북되었습니다. 일본사람들, 루마니아, 네덜랜드, 태국도 있지요. 그래서 14개국이나 되는데요. 그런 나라들과 협력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정부대 정부 역할도 중요하지만, 시민단체, 비정부기관들끼리 협력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지난달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도 북한에 끌려간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 송환에 3개국이 함께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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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한미일 정상회의가 끝난 뒤에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 녹취 : 바이든 대통령 ] "We're committed to working together to see the return of all prisoners of war and those who have been abducted and detained" (우리는 (북한에)납치되고 억류되어 있는 모든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포로의 석방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국군포로와 납북 어부 가족은 수십년간 이어진 비극의 사슬이 끊어지기를 두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획 특집, [516명, 당신 어디있나요?]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납북어부 '팔프공장'서 노동...술로 외로움 달래"를 보내드렸습니다. 보도에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기자였습니다. 내일은 제3편 "파란 배지와 사라진 일본인들"을 보내드립니다. 여러분의 많은 애청 바랍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