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탈북자 강제 북송 중지" 유럽 대행진] ① 독일인들 "나치 정권보다 더 악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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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중국 내 탈북자에 대한 강제북송 중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폐쇄' 중국 내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향한 유럽 8개국에 울려 퍼진 간절한 외침

12일간의 여정을 담은 RFA 특별기획 <'탈북자 강제 북송 중지, 유럽 7천km를 가다> 첫 번째 시간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유럽 도이칠란드(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월 13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18시간을 날아온 ‘유럽 대행진’ 일행이 자정이 다 되어서야 공항에 도착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한국을 떠나 러시아를 거쳐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유럽 8개 국가를 돌면서 ‘중국 내 탈북자의 강제북송’에 관한 실상과 강제북송 된 탈북자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겪는 비인권적인 대우를 유럽인들에게 알리고 각 나라의 중국 대사관을 통해 이같은 정책의 중지를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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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간단체인 ‘기독교 사회책임’과 ‘북한정의연대’를 중심으로 20대의 젊은 직장인에서부터 40~50대의 가정주부까지 15명의 다양한 연령과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된 ‘유럽 대행진’ 일행. 그 중에는 중·고등학생 남매도 있고 부모님을 따라온 올해 만 4살, 김하민 군도 눈에 띕니다.

대부분 서로 처음 만났지만 ‘북한의 인권 개선’이라는 뜻을 모아 12일간 ‘유럽 대행진’에 나선 이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와 다짐이 엿보입니다.

공항 인근 숙소에서 잠시 피로를 푼 ‘유럽 대행진’ 일행. 시차가 적응되지 않아서인지, 몇몇 사람은 아직도 피곤한 모습입니다. 본격적인 ‘유럽 대행진’에 나서기 앞서 서로 소개하고 ‘유럽 대행진’의 목적과 일정을 전해 듣는데요, 이동거리와 여정이 워낙 길고 험난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첫 발걸음을 떼는 일행들의 다짐과 각오는 대단합니다.

정치적 박해와 식량난에 의한 굶주림을 피해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이 아닌 불법입국자로 간주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북송된 탈북자를 기다리는 것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와 함께 보내지는 정치범 수용소. 그곳에는 갖은 고문과 강제노동, 굶주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인신매매로 중국에 끌려간 북한 주민에 대한 처벌도 마찬가집니다.

<프랑크푸르트 중국 영사관> Chinese government, stop repatriation N, Korean refugees to death, Stop! '중국 정부는 탈북자 강제북송 즉각 중지하라‘ ~~

1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내 중국 영사관 앞. ‘유럽 대행진’의 첫 일정으로 이곳에서 “탈북자에 대한 강제 북송의 중지”을 호소하고 직접 영사관에 편지까지 전달한 ‘유럽 대행진’ 일행은 곧바로 독일의 유명한 ‘퀼른대성당’으로 향합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서 ‘북한인권사진전’을 열기 위해서인데요,

[북한사진전시회, 독일] 중국은 북한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북으로 돌려보내요. 그러면 강제 수용소로 가거나 사형 집행을 당하는데, 중국이 그 역할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유럽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서 탈북자들을 북송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겁니다.

중국에서 강제북송 된 탈북자들이 ‘국가와 어버이 수령님의 은혜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에서 겪는 갖은 고문과 공개처형, 굶주림과 강제노동. 그 실상을 담은 그림과 사진이 ‘퀼른대성당’ 앞에 전시됐습니다. “유럽에서 이처럼 ‘북한인권사진전’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유럽 대행진’ 측은 의미를 부여했는데요 독일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여학생들이 금방 관심을 나타냅니다.

한쪽에서 오랜 시간 유심히 사진을 관람하던 독일 남성. 이 사진 속의 내용이 정말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습니다.

[독일 남성] 매우 끔찍한 사진이네요. 옛 독일의 나치 시대의 수용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정말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까? 아~~! (기자: 지금 우시는 거예요?) 네, 사진이 너무 끔찍하고 가슴 아파요.

결국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이 독일 남성은 길을 가는 뒷모습에서도 계속 눈물을 닦아냅니다. 이렇게 많은 유럽인이 ‘북한인권사진전’에 관심을 보였는데요, 젊은 층도 그렇지만 과거 독일의 나치 시대를 기억하는 노년층. 이들이 받아들인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심각성은 더 진지합니다. ‘유럽 대행진’을 이끈 ‘북한정의연대’의 정 베드로 목사입니다.

[정 베드로 목사] 아직도 북한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박해가 끝나지 않고 있고, 완전통제구역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기구가 이런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속히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적 분단국가인 독일에서 사진 전시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 자전거 앞쪽에 답시다. 잘 보이게..., 끈이 두꺼웠으면 좋겠어요. 단단히 묶으세요.>

15일 네덜란드에서 맞은 아침. ‘유럽 대행진’ 일행이 자전거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네덜란드 헤이그시를 돌면서 ‘탈북자 강제 북송의 중지’을 호소하기 위해서인데요, 자전거 앞에는 ‘강제북송 금지’라고 쓴 빨간색 현수막도 달았습니다.

[서영애 씨] 엄마의 마음으로 탈북 여성의 마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나고 싶어요.

막 떠나려고 하는 데 결국 흐린 하늘에서 내린 굵은 빗방울. 그래도 ‘유럽 대행진’ 일행은 비를 맞으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헤이그 시내를 누빕니다. 이번 ‘자전거 행진’에 나선 최연소 참가자인 올해

14살의 김진하 양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 꽤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김진하 양] 힘들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기자: 어떤 마음으로 자전거 탔어요?) 북한 주민이나 탈북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평지가 대부분인 탓에 자전거가 교통수단인 헤이그 시의 시민.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일렬로 행진하며 ‘중국 내 탈북자의 강제북송 중지’을 호소하는 ‘유럽 대행진’ 일행을 그들도 관심 있게 바라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Netherlands pray, International pray! Please help us N. Korea's political camps shut down right now, please~~!!

이날 오전 자전거 행진과 중국 대사관 앞 집회까지 마친 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유럽 대행진’ 일행은 이곳에서 유명한 중앙역 광장 앞에서 다시 한 번 ‘북한인권사진전’을 열었는데요. 이번에는 북한 인민군이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쓴 탈북자를 무참히 폭행하는 상황극까지 연출하며 탈북자에 대한 강제북송과 정치범 수용소의 심각성을 알립니다. 관심을 보인 유럽인들에게 자세한 내용이 담긴 전단까지 건넵니다.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사진전과 상황극을 지켜본 유럽인들의 반응을 들어봤는데요.

[네덜란드 시민] 우리 가족도 독일 나치 시대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희생됐습니다. 가족 생각이 나면서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네덜란드 시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 (북한에서) 이런 일이 있다며 모두를 깨워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이 일을 알게 하고 유엔의 인권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곳을 지나던 유럽 각지의 많은 사람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내 고문과 공개처형 등을 묘사한 그림과 사진, 내용을 본 뒤 “어떻게 하면 정치범 수용소 내 북한 주민을 도울 수 있느냐?”며 묻기도 합니다. 또 어떤 유럽인은 이 사실을 전 세계인의 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올려서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지를 약속했는데요, 전시된 사진을 찍거나 이를 동영상으로 담는 유럽인들. ‘유럽 대행진’의 일행도 유럽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모습입니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다음 국가인 벨기에로 향하는 ‘유럽 대행진’ 팀. 잠시도 쉴 틈 없이 자동차로 4~5시간을 달려 12시가 다 되어야 숙소에 도착하는 힘든 여정입니다.

(기자: 참 힘든 여정을 가고 있는데요,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왜 북한 인권에 대해 부르짖는 거예요?)

[정 베드로] 개인적으로 탈북동포들을 중국에서 접촉하면서 그분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 고통의 현장이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고, 그분들의 고통을 모르거나 방관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아서 누군가 죽어가는 데 외치기라도 한다면 그분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각 국가에서 예정된 일정을 마친 뒤 다음 행선지를 향해 자동차로 밤늦도록 먼 거리를 이동할 때면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치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올해 만 4살의 김하민 군이 지은 노래에 ‘유럽 대행진’ 팀은 다시 힘을 얻고 다음 국가의 일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노래...달려라~~달려라...달려라 인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