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레이션) : 미국에 사는 한인 이산가족은 고국을 떠나 이국에 정착해 살면서 북한에 둔 가족과 상봉하는 꿈을 70년 넘게 감춰야 했습니다. 이제 여든이 넘고 아흔을 넘겨가는 이산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호소합니다. 가을 나무에 매달린 낙엽 같은 심정이라는 한인 이산가족들은 생애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라며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배경 음악>
(나레이션 ) RFA 미북 이산가족 특집, "보고싶다. 누이야" 오늘은 네 번째, 마지막 순서로 '아픔과 그리움은 대물림된다'입니다. 제작, 진행에 김진국 기자입니다.
< 배경 음악 /나의 살던 고향 >
(김진국) 영 김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이 이산가족이 쓴 엽서를 읽습니다.
(영 김)안녕하세요. 저는 3세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정부 계획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력해 주시고 어르신들이 살아계실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상봉) 프로그램이 곧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북한 여행이라도 추진해 주세요. 돌아가시기 전 북한 땅 밟아보시고 사셨던 곳도 가 볼 수 있는 북한 여행 추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김진국) 미국 연방 의회에서 한반도를 담당하는 하원 외교위 인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으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인 김 의원도 2세대 이산가족이라면서 부모님의 한(恨)과 아픔을 잘안다고 했습니다.
(영 김)이산가족 1세대가 여든, 아흔이 넘어가기 때문에 손자, 증손자들인 4세대, 5세대들까지 많이 태어났습니다. 제 시어머니도 북한 출신인데 한국전쟁 때 군사분계선(DMZ)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남한으로 데리고 왔거든요. 그 결과로 제 남편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됐고 남편과 제가 결혼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이 됐고 그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김진국) 2021년 8월 한국 통일부가 공개한 '제3차 남북이산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이산가족 1세대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6%)는 자손세대 간 교류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겠지만 이산가족 2,3세대의 91% 후손들 간에라도 교류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김진국) 특히 미국에서는 2세, 3세가 나서야 이산가족 상봉이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노래)"언제나 그리웠던 오빠야, 꿈결에도 보고 싶던 오빠야, 우리 형제 찾기 위해 눈물 흘린 오빠야, 오빠야.
(김진국) 미국에서 온 오빠를 수십 년 만에 평양에서 만난 칠십대 두 자매가 애절한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하는 기록영화 '헤어진 가족들(Divided Families)'를 만든 제이슨 안 씨는 이산가족의 손자인 3세대입니다.
(제이슨 안)뉴욕과 로스 엔젤레스에서 17명의 이산가족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김진국) 하버드 의대생이었던 안 씨는 2008년부터 영화 제작을 시작해서 2014년 미국 의회에서 연방 의원들과 국무부 한반도 담당자들을 초청해 상영회를 했고 LA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미국 정치권에 이산가족에 관심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이슨 안) 2016년 에드 로이스 의원과 찰스 랭글 의원이 협력해서 이산가족 법을 통과 시켰을 때을 잊지 못합니다. 미국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를 미국시민의 문제로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김진국) 애틀랜타의 이산가족 모임 행사에서 만난 김연아 씨도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뿌리인 평양을 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김연아)아버지 고향이 평양 길음리였습니다. 형제가 12명이었는데, 1990년대 초반 평양을 다녀오셨어요. 아버님을 잘 알던 목사님이 평양 봉수교회에 갔는데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는거예요. 그래고 "혹시 김흥규씨 아세요?" 물었더니 우리 오빠라고 하면서 울지도 못하고 눈이 빨개지더래요. 그래서 그 다음해에 제 아버지가 평양을 가셨죠.
(김진국)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북한의 가족들을 보살펴 달라고 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김연아)내가 죽더라도 못사는 동생들, 저한텐 사촌 동생들이잖아요. 그들을 도와줘라.했는데 한번도 못했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난 뒤, 형제, 자매, 가족들은 힘들 때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 정말 많이 느꼈어요. (눈물) 만약에 북한의 식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해 줄 수 있을 만큼은 다 해주고 싶어요.
70년 된 낡은 수첩이 유언이 되다
(김진국) 애틀랜타에서 만난 선우 인호 씨는 아버님의 유언을 듣고 외동 아들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서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의사로 사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선우 인호)제 이름은 성이 선우, 이름은 인호입니다. 아버님은 평양의과대를 나오셨습니다. 82년에 미국에 오셨고 202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는 제가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고 처음 들었습니다. 저도 그때까진 안물어 봤죠. 아무래도 외동아들이라는 환상을 깨기 싫어서였지 않았을까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그때 하신 말씀은 다 유언이 되니까, "될 수 있으면 남북 통일이 언제될지 모르겠지만, 갈 수 있다면 생사라도 확인해주면 고맙겠다" 저는 그걸 유언으로 받았어요.
(선우 인호)아버님 유품을 정리하는데, 조그마한 수첩이 나왔어요. 거기에 저와 배다른 형님,누님의 생일, 할아버지, 할머니 생년월일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매일 뒤적이며 보셨겠죠. 그런 분이 제 아버님 뿐이었겠어요? 나이가 드니까 제가 아버지 입장이었어요 똑같이 했을거예요.
< 배경 음악 >
고향을 질문하면 화를 냈던 아버지
(김진국) 미국의 이산가족은 남북이산가족상봉이 21번 진행되며 가족이 만나는 모습을TV로 보며 눈물을 삼키고 침묵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자식에게도 북한 출신임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미국과 일본의 주요 언론에 기고한 쉐론(Sharon) 김 씨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Sharon Kim) (미국)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지도(가계도)를 만들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화를 내시고 말씀을 안하셨어요. 평양이 고향인 엄마 쪽 가족만 쓰고 아버지 쪽은 커다란 물음표만 남기고 냈습니다. 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이라는 것을 거의 평생 말 안하셨어요.
(Sharon Kim)이산가족 1세대의 고통과 아픔은 우리의 뿌리이고 유산이기도 합니다.미국과 유럽의 언론에 이산가족 사연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했고 알려야 했습니다.
< 배경 음악 >
(김진국)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은 유언으로 대를 이어 전해집니다.
(폴 리, 이규민)저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셨던 외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하지만 고향이 황해도인 북한 출신 이산가족이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처음 알았습니다.
(김진국)미 국평화연구소(USIP)를 거쳐 유럽에서 분쟁과 갈등해소를 연구하는 폴 리 전 연구원은 예일 대학 졸업 후 워싱턴 디시에서 국제 평화를 연구하며 한인 이산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2세 청년단체를 이끌었습니다. 미국 의회와 국무부를 자주 방문하면서 영어로 소통이 어려웠던 어른들의 소원을 전달하고 국무부에 가족상봉을 바라는 이산가족의 명단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폴 리)이산가족 1세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돌아가신다고 이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이산가족 손자, 손녀인 2세, 3세들도 우리 부모님, 할머니의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는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받았습니다.
(배경음악)
미국 연방하원이 북한의 이산가족에 보내는 메세지
(김진국) 영 김 하원 인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은 한인 이산가족의 소원에 응답해야 하는 미국 정치권을 무게감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가족이 궁금하고 다시 만나기를 원하는 북한의 이산가족에게도 희망을 잊지 말자고 합니다.
(영 김 의원)안녕하세요. 저는 캘리포니아 40지구를 대표하고 있는 영 김 연방 의원입니다. 북한에 계신 동포 여러분들, 여러분도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의 가족처럼 자유 평등, 인권을 존중받으며 사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FA를 통해서 여러분들도 이곳 소식을 잘 듣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날 기쁜 마음으로 포옹하면서 만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배경음악)
(나레이터)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미북 이산가족 특집 "보고싶다 누이야">> 제4편, '아픔과 그리움은 대물림된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제작,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 기자입니다.
기사 작성 김진국,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