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미얀마를 가다’ ] 1부: 오바마, 양곤에서 북한 언급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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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5월 16일은 한국과 버마, 그러니까 미얀마가 수교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계기로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미얀마가 201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 조치, 이로 인한 경제 발전, 그리고 미얀마에 불어 닥친 한류 열풍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미얀마의 정치 개혁이 북한에 시사하는 바를 점검해 봅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양곤시 까마윳에 위치한 양곤대학. 지금은 여름방학 기간이라 교정은 한산합니다. 학교 정문 근처에서 더위를 피하느라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교직원들이 낯선 방문객에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이 대학은 1878년에 설립됐습니다. 역사만 깊은 게 아닙니다. 이곳은 미얀마 반식민지 운동의 본산이자 민주화 운동의 모태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2년 11월 19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미얀마를 찾았을 때 바로 이곳 양곤대학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이 주먹을 펴면 우리도 손을 내밀겠다(We will extend a hand if you are willing to unclench your fist)"고 말한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 미얀마에 왔다고 말합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의 경제 재건에 미국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통해 미얀마 정부에 2년간 미화로 1억7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원조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미얀마의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당시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미얀마는 군부 독재가 이뤄졌던 국가입니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지던 나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경제는 곤두박질치는데 군부만 잘 먹고 잘 살던 나라. 미국은 왜 이런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기로 한 것일까.

그 이유는 2011년 3월 취임한 미얀마의 테인 세인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과 개방 정책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양곤대학 연설 당시 어떤 평가를 내놨는지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지난 1년 반 동안 미얀마에서는 극적인 변화(dramatic transition)가 일어났습니다. 50여년간 이어지던 독재 체제가 느슨해진 겁니다. 테인 세인 대통령 체제 하에서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바람은 개혁 의제로 충족됐습니다. 이제 민간인이 정부를 이끌고 있고, 국회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한때 불법단체로 규정됐던 야당인 민족민주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은 선거에 참여했고,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우정의 손을 내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미국이 미얀마와 관계를 개선한 이유를 놓고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해석을 내놓습니다.

첫째는 미얀마가 선거를 통한 정치 민주화를 추진하는 등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둘째는 미국이 추진 중인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구현하는 데 개혁·개방을 추진 중인 미얀마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오바마 정부가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게다가 미얀마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목표 중 하나인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진하는 데도 일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미얀마 방문에 대한 화답으로 테인 세인 대통령은 비밀 핵시설로 의심받아온 장소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을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핵 의혹을 대부분 해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얀마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앞서 미얀마가 주먹을 편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군부 출신인 테인 세인 대통령은 왜 핵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개혁과 개방을 선택했을까. 군부가 직접 나서서 사회주의를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1년 이전 미얀마 군부는 독재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 가지 위험 요소를 맞닥뜨리고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지속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야당의 민주화 요구, 그리고 높아지는 대 중국 의존도.

이 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예속되다시피 한 미얀마의 정치와 경제가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받아들여졌다고 부산외국어대학교 미얀마어과 김성원 교수는 말합니다.

미얀마 정치 전문가인 김 교수는 "과거에는 중국이 지원해 주던 소비재와 무기 덕분에 미얀마 군부가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서 "하지만 중국이 자국의 서남부 지역 발전과 인도양 진출을 위해 미얀마를 활용하고자 하면서 미얀마에 대한 개입 수위를 높이자 미얀마는 이를 위험 요소로 간주했다"고 설명합니다.

김성원 교수: 문제는 중국 세력이 너무 깊게 들어오니까, 이게 잘못하면 미얀마가 중국의 속국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진행된 거죠.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마침 미국 쪽에서 경제제재 조치도 많이 완화해 주고 예전의 차관도 많이 탕감해 주면서 미얀마에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거죠.

이처럼 미국과 미얀마가 손을 잡은 데에는 각자의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얀마와 관계를 개선한 미국이 이젠 북한을 향해 '미얀마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미얀마 양곤대학 연설에서 북한이 주목할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양곤대학 연설): 이곳 양곤에서 나는 아시아 지역에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자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감옥(prisons of the past)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의 지도부에게 나는 한 가지 선택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라, 그리고 평화와 전진의 길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그렇게 한다면, 북한도 미국이 내민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양곤대학 연설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측 고위급 관료들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할 때 미얀마의 경우를 예로 드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미국의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2월 4일 워싱턴에서 외신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미얀마의 경제와 생활의 변화, 국제 협력과 지원은 혁명이라는 비용을 치르지 않고 평화적 과정을 거쳐 얻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러셀 차관보는 미국이 북한 정권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언급합니다.

러셀 차관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북한이 6자회담에서 했던 약속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며 우리와 성의 있게 협상하려 한다면 우리는 북한에 현존하는 정부(the government that exists in North Korea)와 협상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보여야 하는 변화가 미얀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정권교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However, change in North Korea does not need to be regime change, as the example of Burma shows.)

러셀 차관보의 발언은 '북한도 미얀마처럼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라'는 내용에 방점이 찍혀있지만, 김정은 정권은 '북한이 보여야 하는 변화가 정권교체일 필요는 없다'는 내용을 주목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사실, 미얀마도 외형상으로는 민간 정부가 들어선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군부의 집권이 연장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김성원 교수: 무늬만 민간 정부죠. 실제로는 테인 세인 대통령 자체가 군부 출신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현역 군인이 포함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군인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그 어떠한 정책도 실현시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지금은 겉으로는 다 사복을 입고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의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군인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8년 개정된 미얀마 현행 헌법에 따르면, 의석의 4분의 1은 자동으로 군부에 할당됩니다. 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선 재적 의원 4분의 3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군부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 한 헌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헌법 때문에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도 없습니다. 수치 여사처럼 외국 국적의 자녀가 있는 사람은 후보가 될 수 없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총선 직후 간접선거로 선출합니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군부가 각 1명씩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 후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이 중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겁니다. 군인 출신 테인 세인 대통령도 이런 절차를 거쳤습니다. 군인이 군복만 벗었을 뿐, 여전히 군부가 미얀마를 통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성원 교수: 제가 볼 때는 이 구조에서는 절대로 헌법이 개정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다고 했을 때 아웅산 수치 뿐만 아니라 야당 쪽 사람들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나 국가 경제가 활성화되고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넓어지면 어느 나라든 국민이 요구하는 민주화 수준이 점차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미얀마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김성원 교수를 포함해 전문가들은 전망합니다. 미얀마 군부도 언젠가는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군부처럼 정치권력에서 퇴진해 국방을 담당하는 주체로 전문화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미국이 북한에 타산지석으로 제시한 미얀마. 이 나라에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여전히 기본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총선이 실시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11월 초'에 한다는 두리뭉실한 일정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미얀마의 선거 제도가 아직은 엉성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미얀마는 이제 동남아 경제 부국이었던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30년까지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화로 2,000~3,000달러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한 미얀마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며 국제사회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실례로 미얀마는 2014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의장국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2014년 11월 13일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오른 쪽에서 세 번째)이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미얀마는 2014년 아세안 순회 의장국을 맡았다. RFA PHOTO/ 김진환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2014년 11월 13일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오른 쪽에서 세 번째)이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미얀마는 2014년 아세안 순회 의장국을 맡았다. RFA PHOTO/ 김진환 (RFA PHOTO/ 김진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아니라 군부가 내린 결정, 즉 위로부터의 결단에 따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에 '미얀마를 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도 미국이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성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