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비밀리에 복구를 끝낸 '8월 제련소'를 몇 년이 지나도록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합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혜산청년광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은 오늘부터 네 차례에 걸쳐 ‘8월 제련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점검해보는 「8월 제련소의 흑막과 전망」이라는 기획보도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8월 제련소, 왜 해체되었나?』를 보내드립니다
문성휘 :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6년 여름, '조선국영보험총회사' 관계자들이 양강도 운흥군 일건노동자구에 위치한 '8월 제련소'에 나타났습니다. 뼈대만 남은 '8월 제련소'에 두 달 가까이 머물며 사진을 찍고 각종 '설비문서'도 만들었습니다.
형체만 남은 ‘8월 제련소’를 사고로 위장해 폭파시키고 외국의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타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국영보험총회사’를 통한 국제보험사기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보험사기 계획이 사전에 외국의 언론들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북한의 구리정광 제련소였던 ‘8월 제련소’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에 대해 북한 내부 양강도 소식통들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8월 제련소’ 노동자들이 공장의 기계와 부품을 모조리 뜯어내다 팔아 치웠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8월 제련소’는 1979년 4월, 김일성 주석의 생일에 맞춰 착공식을 가진 후 1983년 9월 ‘공화국창건일’에 완공했다는 것입니다. 부지면적만 13만 2천 평방, 한때 종업원은 2천명이 넘었던 대기업으로 양강도에 있는 '혜산청년광산'과 '갑산광산', '8월 광산'에서 생산된 구리정광을 제련해 구리를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 갑산광산이 폐광되면서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었고 1994년 겨울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혜산청년광산’과 ‘8월 광산’이 잇달아 폐업하면서 제련소는 완전히 가동을 멈추었습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에 대한 배급이 중단되면서 아사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이 팔아먹을 수 있는 기계와 부품을 모두 뜯어냈습니다. 김정일 정권 역시 1996년 봄부터 폐쇄 직전에 놓였던 제련소에서 남은 기계설비들을 해체했습니다.
1996년 여름, ‘혜산청년광산’과 ‘8월 광산’까지 연결되어 구리정광을 실어 나르던 장거리 삭도까지 해체되면서 쓸모없는 고철더미만 남은 ‘8월 제련소’는 공식적으로 완전 폐쇄됐습니다.
한 푼의 딸라가 급했던 김정일 정권은 폐쇄된 ‘8월 제련소’를 놓고 사고로 제련소가 파괴된 것처럼 위장해 보험금을 타내는 국제보험사기극 까지 벌이려 했으나 외부로 비밀이 새어 나가면서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폐쇄되었던 ‘8월 제련소’는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2010년 여름,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비밀리에 다시 복구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함께 하는 ‘8월 제련소’, 왜 다시 복구되었는지, 또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 것인지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