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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부터 불어 닥쳤던 북한의 식량난이 2월 상순이후 갑자기 풀리면서 그 배경에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막바지에 달하는 이때쯤이면 식량가격이 절정에 이르고 아사자가 속출했는데 올해는 그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북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북한의 식량위기설, 그 불안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문성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지난 1월 13일. 양강도 혜산시와 함경북도 청진시를 비롯한 여러 곳의 장마당들에서 일제히 입쌀 1킬로에 3300원까지 식량 값이 뛰어 올랐습니다. 북한 물가의 기준으로 되는 식량가격이 폭등하면서 환율도 덩달아 급등해 중국인민폐 1원당 북한 돈 540원이 되었습니다.
북한 전역은 그야말로 쑤셔놓은 벌 둥지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2000원대를 유지하던 식량가격이 뛰기 시작한 것은 새해 첫 전투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은 해마다 새해 이튿날부터 ‘새해 공동사설을 관철하기 위한 첫 전투’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름생산에 동원됩니다. 이때면 장마당이 일시적으로 폐쇄되고 식량가격이 오르는 추세를 보여 왔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주민들도 장마당이 정상화되는 1월 10일쯤이면 식량가격이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동계훈련이 한창이어야 할 군인들 속에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탈영병들이 속출하고 보위부나 보안서 간부들에게 나가는 배급조차 미처 말리지 못해 곰팡이가 핀 통 강냉이가 배급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적은 량의 감자만 먹고 영양실조로 쓰러져 ‘동계훈련’조차 치를 수 없게 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민들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여기에 새해부터 시작된 도 무역국과 세관들에 대한 국가보위부, 보위사령부 검열로 북-중 무역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그나마 장사꾼들이 중국을 통해 조금씩 들여오던 보따리 밀수 식량마저도 막혀버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당국은 1월 12일, 전 주민들을 상대로 ‘군량미 헌납운동’을 선포했습니다. 한 달 사이에 군량미 10만 톤을 거둔다는 계획까지 미리 정해 놓고 우선적으로 노동당 입당대상자들과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들에게 ‘군량미’ 헌납을 강요한 것 입니다.
지어 함경남도와 평안남도를 비롯해 지난해 농사형편이 좋았다는 고장들에서는 한 가정에서 무조건 50kg씩 군량미를 바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런 발표가 나온 1월 12일 첫날에 벌써 식량가격은 2300원에서 2800원으로 뛰어 올랐고 다음날인 13일에는 식량가격이 3300원으로 치솟아 화폐개혁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사상 최고 가격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식량사정에 정통한 함경북도의 소식통은 “부족한 군량미를 메우기 위해서는 1월이 적기였다”고 증언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식량위기가 들이닥치기 전인 1월에 여유식량을 거두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북한 당국이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은 주민들의 불만과 항의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1월 30일경에는 슬그머니 ‘군량미 헌납운동’을 중단해버렸습니다.
군인들마저도 감자로 끼니를 에운다는(때운다는) 소문에다 ‘군량미 헌납운동’이 강제적으로 시행되면서 생긴 혼란은 주민들에게 ‘화폐개혁’ 직후의 악몽을 다시금 되새겨주었습니다.
먹는 문제를 두고 주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1월의 식량가격 폭등현상은 북한당국의 미숙한 정책이 불러 온 식량위기였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군량미 부족과 당국의 엉뚱한 대책이 지속되는 한 대량아사를 동반한 식량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소식통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