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내 운명 "
영국 런던의 한인 타운으로 알려진 뉴몰든의 한 주택가.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를 반갑게 맞은 박세염 씨 뒤로 세 명의 아이가 손을 흔듭니다.
이내 부끄러운 듯 거실로 달려가 아빠에게 안기는 두 딸, 올해 각각 3살과 2살인 찬양이와 찬미입니다.
손님이 왔으니 예쁜 공주 옷으로 갈아입겠다는 찬양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박 씨는 2007년에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이고 그녀의 남편 최재원 씨는 남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인입니다. 이들은 남남북녀 부부입니다.
두 사람은 2018년에 영국에서 처음 만났는데, 박 씨는 첫 만남의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 박세염 ] 저는 퇴근길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 신랑은 ( 독일에 있다가 ) 런던에 와서 제 지인분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 그 지인분이 저를 ( 저녁 식사 자리에 ) 초대해 주셔서 같이 밥을 먹게 된 상황이었어요 .
최 씨도 아내를 만난 것이 마치 운명 같습니다.
한국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고 있었고, 여행차 영국을 방문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 최재원 ]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 제가 머무는 숙소와 아내 집이 같은 방향인 거예요 . 자연스럽게 얘기가 길어지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저희의 신앙과 가치관 등에 대해 3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 저는 딱 그 3 시간 대화를 나누고 ' 이 여자다 . 무조건 붙들어야 된다 ' 라는 생각이 들었죠 .

이미 독일에서 다문화 환경을 경험한 최 씨에게 아내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 최재원 ] 저는 우리 와이프가 탈북한 사람인 줄도 몰랐고 , 그냥 대화를 나누고 '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 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죠 .
최 씨는 여자친구를 처음 부모님께 소개했던 당시를 떠올립니다. 여자 친구가 탈북민 출신이라는 말에 부모님은 애써 침착한 반응을 보이려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 최재원 ] 제 와이프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얘기했을 때 말씀은 안 하셨지만 , 약간 움찔하지 않으셨을까 싶긴 해요 .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항상 통일에 대한 마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를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
두 사람이 나눈 사랑과 삶의 가치관 앞에 그들이 살아온 배경은 무의미했고 결국, 두 사람은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 결혼 후 1~2 년은 성향 차이로 대판 싸웠어요 "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두 사람에게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의 차이로 자주 다투기도 했습니다.
[ 최재원 ] 저희 부부가 같이 있다 보면 다툼이 있을 수 있고 , 그러다 보면 이런 말을 해요 . ' 이럴 때만 한국 사람이냐 ', ' 한국 사람은 ( 이런 상황에서 ) 이렇게 대처하는데 왜 이렇게 받아들이냐 ' 등등 이런 ( 갈등의 ) 부분들이 없지 않았어요 .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 1~2 년은 정말 대판 싸웠어요 .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다툼도 결국,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두 사람은 말합니다.
[ 최재원 ]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 어떤 생각을 하고 ,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문화 차이라고 봤지만 , 지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문화 차이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 차이라고 생각해요 .
이들과 대화를 시작한 지 불과 30분 만에 ‘남북 부부’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색해졌습니다.
두 부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딸은 휴대전화로 한국의 인기 만화영화인 ‘뽀로로’를 보고 있습니다.
첫째 딸 찬양이와 연년생인 둘째 딸 찬미는 휴대전화를 보면서도 아빠 엄마에게 한국어로 계속 말을 겁니다. 엄마는 아이들의 말에 끊임없이 대답해 줍니다.
[ 최재원 ]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같이 있는 사람의 억양과 언어를 따라 하거든요 . 그래서 외할머니랑 있으면 북한 말을 해요 . 또 저랑 있으면 제 언어를 알기 때문에 아빠 말을 따라 해요 . 또 엄마랑 있으면 엄마 말을 따라 하고 .
[ 박세염 ]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말을 막 시작할 때는 한국말을 더 편해했어요 . ( 말투가 ) 금방 잘 바뀌어요 . 외할머니랑 하루 놀다 오면 북한 말투가 조금 느껴지는데 그 다음 날이면 또 없고 .

박 씨는 두 딸보다 조금 더 컸던 6살의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탈북했습니다.
북한에서 학교에 가 본 적도 없고, 엄마를 따라 동네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전부라 고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북한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박세염 ] 저는 북한과 남한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북한 사람도 한국말을 하지만 , 서로 다른 억양을 갖고 있고 단어도 다르다 보니 대화를 하면서도 오해하기가 쉽잖아요 . 나중에 통일이 되면 그 가운데에서 서로의 진심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영국에서 되찾은 꿈과 새 삶
박세염 씨 집에서 차로 약 10분 떨어진 그의 부모님 댁.

그의 아버지인 박하경 씨가 영국의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리버풀(Liverpool)’과 ‘토트넘(Tottenham)’의 경기에 한국의 유명 축구 선수인 손흥민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 기자 ] 아버님 , 원래부터 토트넘 팬이셨어요 ?
[ 박하경 ] 에이 ~ 토트넘 팬 아니에요 . 토트넘도 손흥민이 있기 때문이지 . 원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었어요 . 박지성이 거기서 뛰더라고 . 그런데 박지성 선수가 가고 그 다음으로 손흥민 선수가 유럽에서 또 뛰니까 .
거실 옆 주방에서는 때마침 끓고 있는 떡만둣국 냄새가 솔솔 풍겨옵니다.
[ 기자 ] 북한 식이에요 ?
[ 박순녀 ] 모르겠어요 . 북한에서는 이런 음식이 없어서 못 먹어봤는데 , 그냥 저희 입맛에는 맛있으니까요 .

박 씨의 어머니(박순녀)는 직접 담근 김치와 명이나물을 담은 접시를 거실로 들고나오고, 이에 맞춰 아버지는 상을 폅니다.
상 곳곳에는 손녀들의 공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저녁 식탁의 모습입니다.
저녁 식사 중에 박 씨 가족이 북한을 떠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듣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로 꼽히는 북한에서 박 씨 가족은 한 선교사의 영향으로 신앙을 갖게 됐고, 이로 인해 탈북하게 됐습니다.
[ 박순녀 ] 북한에 있을 때 다른 신분으로 위장한 선교사분들이 와서 찬양을 전해주고 돌아갔어요 . 그때는 예수님이 뭔지 모르죠 . 그냥 그분들이 맛있는 것도 가져다주고 하니까 좋아서 . 북한은 아무 것도 없는데 쌀 , 화장품 , 사탕 같은 것도 가져다주니까 . 사실 굶주리고 배고파서 죽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 저희는 이래도 죽고 , 저래도 죽는 거잖아요 . 그때는 그런 두려움이 없었어요 .
박 씨의 어머니가 먼저 탈북을 결심했지만, 아버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북한에서의 삶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 박하경 ] 그때 저는 술만 먹고 삶이라는 게 없었어요 . 가정이란 의미도 모르고 , 아내의 소중함도 모르고 . 그렇게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 생활은 여전히 어렵고 ….
그러다 박 씨의 어머니가 먼저 탈북했고, 중국에 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온 가족이 뒤따라 중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박 씨 가족은 강제 북송의 위기를 넘기고 한국을 거쳐 2007년 영국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박 씨의 아버지는 뉴몰든에 정착하면서부터 한인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는 예정된 예배 시간보다 일찍 교회에 도착해 주차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차 안내를 할 때 입는 주황색 조끼의 등에는 한반도기가 그려져 있는데, 그는 이곳이 영국 뉴몰든이기에 한반도기가 어색하지 않다며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또 박 씨의 아버지는 현재 ‘재영탈북민협회’에서 선교부장을 맡아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한인 교포들도 모여 북한에 대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마치 작은 한반도를 넘어 삼국 통일 기지가 되는 것 같다고 박 씨의 아버지는 강조합니다.
[ 박하경 ] 북한에서도 , 한국에서도 , 영국에서도 , 또 중국에서도 살아봤는데 , 사람 마음의 중심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가 있어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았고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이었어요 . 물질적으로 , 위로의 말도 받아봤지만 , 그때 한 순간뿐이지 내 마음이 자유롭고 평안하게 산 적이 없어요 .
하지만 영국에서 점점 밝게 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박 씨도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소망을 찾지 못한 북한 땅을 떠나 영국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박세염 씨 가정.
이들이 꿈꾸는 미래와 앞으로 만들어갈 가정은 얼마나 더 행복한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 박순녀 ] 통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저희 소모임이 있는데 조선족 , 북한 사람 , 한국 사람도 있어요 . 이 세 그룹이 다 속해있는데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하나가 돼 문제도 안 생기고 , 같이 섬기면서 음식도 나누다 보니 너무 좋거든요 .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서로 배려해요 . 그러니까 저는 하나님 안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통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