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탈북민들] ③ “나는 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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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리 ] 뭔가 단절된 느낌이랄까요 . 한국인 , 북한 사람 , 조선족 등이 다 모여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 저는 그 속에서 조금 이질감을 느낍니다 .

영국의 한인타운 뉴몰든의 중심가인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건물마다 한글로 적힌 상점 간판들이 붙어 있고, 거리는 남녀노소 한인들로 북적입니다.

그 사이로 까무잡잡한 얼굴의 한 남자가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의 모습에서 왠지 쓸쓸한 분위기가 묻어 나옵니다.

식당 2 층에 사는 거북이

뉴몰든에서도 제법 인기가 많다는 한국식당 ‘야미’(Yami).

이 식당 뒤쪽에 웬만한 성인 남성 크기의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바닷속에 온전한 형태로 가라앉은 거북선과 그 옆을 헤엄치는 작은 거북이 두 마리,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입체적입니다.

손님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에 이 그림이 걸려있는 게 의아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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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작업한 설리 씨의 작품. 거대한 거북선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모습을, 두 마리의 작은 거북이는 자아(거북선)를 찾아가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 RFA Photo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탈북민 화가, 설리 씨(Surl Lee)입니다. 그의 본명은 이명관. 설리는 그의 활동명입니다.

작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친한 친구의 가게에 맡긴 겁니다.

[ 설리 ] 2 년 반 동안 , 이 작품을 그렸던 것 같아요 . 깎다가 부수고 , 깎다가 부수고 저기 거북이 두 마리가 있는데 , 이건 미지의 내 마음속에 있는 나와 , 현실 속에 있는 내가 ( 진짜 ) 나를 찾아가는 것을 표현했어요 .

설리 씨를 따라 식당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방 하나가 나옵니다.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옷장 등 소박한 살림살이로 꾸며진 이곳이 그의 보금자리입니다.

의자 위에 쌓여있는 짙은 색 작업복 더미, 그가 생계를 위해 건설 노동을 할 때마다 입는 옷입니다.

방 한 켠에 놓인 여러 개의 커다란 나무판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가 작업 중인 작품인데, 그림에 들어갈 올록볼록한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만져집니다.

[ 설리 ] 중국인 친구가 작품을 하나 해달라고 해서 하는 중인데 ,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풍경인가 봐요 . 나무 자체가 포인트인데 , 중국에 자주 못 가니까 집에 가고 싶은 그리움이 크겠죠 . 자기 집에 붙여 놓고 싶으니 만들어 달라고

설리 씨의 작품은 나무 판에 석고를 이어 붙이고, 석고가 마르면 이를 조각한 뒤 페인트를 칠해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영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인데, 그가 어떻게 영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졌습니다.

[ 설리 ] 영국에서 도자기를 만들려면 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 돈도 많이 들고요 . 그래서 대신 석고의 성질을 살려 작품을 해볼까 싶어 처음에는 나무판에다 그냥 석고를 붙였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까 생각해 봤는데 , 건축 재료를 접목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한 번 해봤는데 성공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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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화가 설리 씨가 자신이 스케치한 그림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 RFA photo

내 꿈대로 살지 못하는 나라

어린 시절 설리 씨의 꿈은 도예가였습니다.

[ 설리 ] 북한에 있을 때부터 저희 할아버지가 도예가셨어요 .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도자기에 대해 많이 접했고 , 할아버지의 작품집을 보면서 따라 그려보기도 했죠 . 그러다 ' 나도 나중에 커서 멋진 아티스트 ( 예술가 ) 가 돼야지 ', 이런 생각을 했어요 .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설상가상 어머니가 중국으로 먼저 탈북했습니다.

고작 14살의 나이에 그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됐습니다.

[ 설리 ] 북한이라는 사회가 너무 어렵잖아요 .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집안이 너무 어려우니까 어려서부터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 너무 어렵더라고요 .

1997년 겨울,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설리 씨는 엄마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곧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고, 함흥에 있는 노동 교화소(55호 노동단련대)에서 성천강 바닥을 파는 노동을 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6살이었습니다.

[ 설리 ] 감옥에서 너무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 엄마 찾으러 간 것이 죄냐 . 아직 나는 미성년자인데 " 이런 반감이 많이 생겼어요 . 그래서 " 이 나라에서는 못 살겠다 . 어떻게든 나가야겠다 ", " 이 나라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 어차피 내 꿈은 다른 데 있는데 "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내가 꿈꾸는 대로 살지 못하는 나라,’ 설리 씨가 묘사한 북한입니다.

[ 설리 ] 북한에서는 글쎄요 , 할아버지의 작품들을 보면 항상 김 부자에 대한 충성심이라든지 , 이런 게 조금씩이라도 들어가야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으니까요 .

노동교화소에 수감된 지 1년 만에 설리 씨는 풀려났지만, 하고 싶은 도예나 미술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북한을 떠나고 싶어도 또 붙잡힐 것이 두려워 희망없이 1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됐다고 그는 털어놓습니다.

[ 설리 ] 어차피 이 나라에서 살아도 내가 숨 쉬는 것 같지 않고 , 항상 감시 체제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나라에서 무슨 희망으로 살아야 될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북에서 쓸 자금을 줄 테니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다시 한번 북중 국경을 넘었습니다.

[ 설리 ] 국경을 넘어와 엄마를 딱 보는 순간에 엄마가 " 이젠 가지 마 " 라고 그러더라고요 . " 더 좋은 세상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자 " 라는 거예요 . 그러더니 엄마가 이미 한국에서 받은 시민권을 보여주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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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뉴몰든 한인타운에 있는 ‘야미’ 식당 앞에서 처음 만난 설리 씨. 그는 영국에서도 이질감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 RFA Photo

거북이의 유랑생활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설리 씨의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내 꿈이 성취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할 것 투성이었습니다.

[ 설리 ] 많이 어려웠죠 .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고 ,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 그런데 한국의 일상생활에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고요 . 예를 들면 은행이라든가 , 교통카드라든지 .

그러던 중 2014년, 그는 예술가에 대한 꿈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현실도 생각과 달랐습니다.

[ 설리 ] 어떤 갤러리 원장님을 만났는데 ,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너무 상처를 받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 너는 자격 미달이야 "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 예를 들면 졸업장이라든가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작업을 해야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하더라고요 .

설리 씨가 영국에 올 때 가졌던 기대들은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를 더 힘들게 했고, 무엇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이었습니다.

[ 설리 ] 단절된 느낌 . 제가 " 북한에서 왔어요 " 라고 하면 어느 정도 편견을 갖고 시작해요 . 그때부터는 이미 나도 모르는 상처가 되죠 .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대화가 되더라고요 .

같은 언어를 쓰는 탈북민과 한국인 이민자, 그리고 조선족들이 함께 살기에 뉴몰'동'이라 불리는 영국의 한인타운에서 그는 이방인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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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SNS에 올린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설리 씨. 그는 자기 작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때면 늘 힘이 난다고 했다. / RFA Photo

" 꼭 북한을 그려보고 싶어요 "

설리 씨는 지금도 건설 노동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로 살고 싶은데, 삶에 치여 자꾸 자신의 꿈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영국에 온 지 3년이 지나서야 작품 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 설리 ] 2~3 년쯤 지나서 영어 공부도 하고 ,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 그래서 내가 어떤 작은 꿈의 연결고리로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이걸 시작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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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씨가 작품 활동을 할 때마다 사용하는 팔레트. / RFA Photo

대화 도중 설리 씨는 문득 조각칼과 물감이 든 바구니를 말없이 응시합니다.

그에게 꿈은 ‘현실'입니다. 그가 꿈을 쫓아 국경을 넘었듯이, 지금도 그 꿈이 삶의 이유이자 목표라고 말합니다.

[ 설리 ] 사람들이 나보고 " 생각 없는 놈 ", " 철없는 놈 " 이라고 해요 . " 왜 이 나이 되도록 소꿉놀이하듯이 아직도 ' ', ' ' 거리고 , 나이를 40 이나 먹었는데 , 아직도 꿈꾸고 있냐 " 고 물어요 . 하지만 내가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고 , 그걸 성취하는 성취욕도 생겨야 삶의 의미라는 게 있잖아요 .

그는 주변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거라며 웃습니다. 작업 중인 작품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그에게 자유롭냐고 물었습니다.

[ 설리 ] 자유롭지 않으면 이런 것도 안 할 것 같은데 ,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잖아요 . 북한에 있으면 원하는 그림을 못 그리죠 .

예술가로서의 꿈을 놓지 않는 그는 고향이었던 북한의 풍경,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 설리 ] 누가 뭐라 해도 제가 북한 사람인 건 변하지 않잖아요 .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을 한번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 북한에는 멋있는 동네가 정말 많잖아요 . 좋은 곳 , 아름다운 곳들이 정말 많은데 어렸을 때 봤던 기억 속의 이미지들 , 내가 겪고 봐왔던 멋있는 장면들을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어요 .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작품은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북한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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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그가 그려보고 싶은 작품과 화가로서의 꿈을 이야기하며 웃어 보이는 설리 씨. / RFA Photo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