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탈북민들] ⑧ “난 반역자 아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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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의 ‘테임사이드(Tameside)’.

테임사이드의 덴턴사우스구(Denton South Ward)에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골목길을 누비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5월 2일, 유난히 찬 바람이 많이 부는 쌀쌀한 날씨에도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는 이 지역 지방선거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한 탈북민 티모시 조 씨입니다.

올해로 지방선거에 세 번째 도전하는 조 씨.

매번 같은 지역에 출마했기 때문인지, 가는 길마다 몸이 기억하는 듯 너무나도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지역구를 누비는 이유는 선거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을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 씨의 몸과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 티모시 조 ] 혹시 제 팸플릿 보셨나요 ?

그가 출마한 덴턴사우스구는 수십 년 동안 노동당이 우세한 지역입니다.

보수당 후보로 나선 조 씨의 말에 대부분 유권자는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지만, 그는 괘념치 않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주민마다 인사를 건넵니다.

[ 티모시 조 ]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이분들이 더 많이 얘기하고 , ( 자기 생각을 ) 나누게 돼요 . 특히 저는 독재체제를 경험해 봤고 선거라는 의미 자체를 잘 몰랐는데 , 여기 와서 후보자가 되고 선거에 출마해서 받은 한 표 한 표가 엄청 소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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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조 씨(왼쪽)가 유권자들과의 만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지역 주민 조나단 씨(오른쪽)와 세라 씨(가운데)는 조 씨에게 주택가에서 과속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 RFA Photo

2008년에 영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이 정치인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이곳 영국에서 말입니다.

[ 티모시 조 ] 생각해 본 적도 없고 , 생각해 볼 수도 없었어요 . 솔직히 그땅 ( 북한 ) 을 탈출하는 순간까지도요 . 북한에서 정치권에 들어가는 당원은 극소수예요 . 누구나 평등하게 기회를 잡을 수가 없어요 . 특히 저는 ' 도망자의 자식 ' 이라는 딱지가 있어서 상상할 수 없었어요 . 저는 학교에 가도 반역자의 아들이라며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었거든요 . 그게 엄청 마음이 아팠죠 .

기자를 꿈꾼 북한 소년

조 씨가 북한에서 받은 교육은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한글도 완벽하게 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 씨의 어린 시절 꿈은 기자였습니다. 기자가 되면 전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티모시 조 ] 아버지가 역사 교사셨는데 , 제가 아버지에게 " 내가 기자가 될 수 있냐 . 전 세계를 다니고 싶다 " 고 여쭤보니까 아버지가 대답을 못 하시더라고요 . 북한 상황을 너무 잘 아시니까요 .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조 씨는 어릴 적부터 역사책 읽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책들은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 등이 기록돼 있어 북한에서는 교과서로 사용이 금지된 것들이었습니다.

두만강에서 친구들과 수영하고, 책에서 본 역사 이야기를 해주길 좋아했던 그는 고향을 생각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부모님이 탈북했습니다. 한순간에 ‘조국을 반역한 자’의 자식이 된 겁니다.

그때부터 조 씨는 길거리로 내쫓긴 ‘꽃제비’ 생활을 하게 됐는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소학교 6학년 수업 시간에 맨 뒷자리에 앉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군에 입대했지만, 그는 ‘반역자의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입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 티모시 조 ] 군대에 갔다 와서 독립적인 삶을 개척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는데 , 그게 다 무너졌습니다 . 보안부에서 " 아버지가 국가를 배신했기 때문에 ( 입대가 ) 안 된다 " . 북한에서 결혼해 자녀가 생기면 그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딱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 ' 이 땅에서 내가 어떤 걸 해도 결국 , 나는 반역자의 자식이고 내 자식들도 그렇겠구나 ' 라는 생각에 그때 마음을 먹고 두만강을 건너서 탈출했어요 .

조 씨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더 일찍 탈북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 티모시 조 ] 중국에 가보니 세상이 달랐어요 . 물론 중국도 독재정권이고 정치적 압박이나 종교적 압박 , 핍박들이 만행했지만 , 그나마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하고 , 굶어 죽는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그걸 딱 보고 나니까 무조건 살아남고 싶더라고요 . 그렇게 중국에서 세 번 , 북한에서 한 번 , 총 네 번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 '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 라는 정신력밖에 안 남더라고요 .

조 씨는 강제 북송과 감옥 생활 등 모진 고생을 이겨내고 끝내 자유의 땅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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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과정에 겪은 트라우마로 힘들었던 대학생 시절 티모시 조 씨의 집이 되어준 쉼터 ‘디 아크(The Ark)’. 혼자였던 조 씨에게 가족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소중한 사람들이다. 조 씨는 종종 이곳에 들러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 RFA Photo

영국에 정착한 이후 너무나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고, 안정된 삶을 위해 치과의사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 씨는 “영어를 배워 확성기를 들고 전 세계에 북한 인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한 탈북민의 영상을 보게 됩니다.

‘길에서 굶주리며 죽어간 친구들’, ‘군중 사이에서 공개처형을 당한 북한 주민들’, ‘감옥에서 비참한 인권 유린을 겪은 수감자들’ 등 자신이 북한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날 이후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됐고, 그의 마음에는 점점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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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한 지역구에서 음료 가게를 운영하는 유권자를 만나 인사하는 티모시 조 씨. 이 가게의 주인은 홍콩 난민인데, 조 씨는 영국 내 홍콩 난민을 위한 인권 운동에도 여러 번 참여한 바 있다. / RFA Photo

그리고 조 씨는 ‘국제외교정치’를 공부하며 영국 정치에 입문했고,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 티모시 조 ] 선거 출마 후에 탈북한 제 유치원 친구로부터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어요 . ' 너에 대한 출마 소식이 고향에 다 퍼졌다 ' 라고요 . 그러더니 우리 친구들이 북한에서 군에 입대하고 나서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중 일부는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데 , ' 만약 우리가 영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과 선택이 있었다면 과연 이 친구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 궁금했습니다 .

언젠가 북한 땅에 가서 정치를 할 기회가 온다면 서슴지 않고 북한 정치인이 될 거라 말하는 그의 눈이 반짝입니다.

[ 티모시 조 ] 북한의 문이 열리는 걸 빨리 보고 싶어요 . 북한 사람들이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지도자를 만나서 자유롭게 시장경제 활동도 하고 , 자유롭게 남한과 북한이 왕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제가 살고 있는 삶이 가끔 ' 내 삶이 아닌가 ?'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 ( 북한에 있을 때 )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했기 때문에요 .

현재 그의 삶에 가장 큰 원동력은 대학 때 만난 아내와 네 살배기 딸,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 그의 가족입니다.

중국계 영국인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건 그에게 트라우마의 벽을 넘는 치유의 시작이었다고 조 씨는 말합니다.

[ 티모시 조 ] 중국 감옥을 세 번이나 갔다 오니까 중국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어요 . ' 중국 ' 이란 말만 들어도 자다가 꿈에 나올 정도로 ... 그런 과거에 몰입하다 보면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 , 트라우마라는 게 정말 무서워요 . 그런데 나를 치유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내려놓고 싶었던 부분은 나의 부모님이었어요 . 부모님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고 , 그 벽을 넘게 되더라고요 . 이 결혼을 통해 ( 제 자신과 ) ' 화해 ' 의 단계로 접어들었어요 .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인권 상황들이 저에게 더욱 깊이 다가왔어요 .

낯선 땅에서 만난 지지자들

같은 날 오후, 조 씨는 자신의 출마 지역인 덴턴사우스구에서 유세 일정을 마친 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영국 셰필드로 향하는 기차에 서둘러 몸을 실었습니다.

영국의 명문대로 알려진 셰필드 대학(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강연하기 위해섭니다.

그를 초청한 이 대학의 사라 손(Sarah Son) 한국학 교수는 조 씨의 경험과 활동들이 영국 학생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 사라 손 ]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에 북한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 이 이야기를 직접 북한 사람에게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티모시 조 씨의 강연을 통해 학생들이 북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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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셰필드 대학교 한국학과 2학년 학생들이 티모시 조 씨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한 학생은 조 씨의 강연 내용을 공책 5장 분량으로 빼곡히 적었다. / RFA Photo

1 시간가량 진행된 강연 동안 학생들은 조 씨의 이야기에 숨죽이며 귀를 기울였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필기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조 씨를 따라 나와 북한에 대해 궁금한 점을 자세히 묻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조 씨에게 충격적인 북한의 실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도 북한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말도 건넸습니다.

이 중 조이(Zoey)라는 학생은 조 씨의 강연을 통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됐다고 말합니다.

[ 조이 ] 티모시가 지방 선거에 출마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민주주의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 그래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데 티모시는 우리보다 민주주의를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

다음날인 5월 3일에는 ‘샐퍼드 대학교’ 앞에서 조 씨를 만났습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그가 연신 깊은 심호흡을 내뱉습니다.

오늘은 조 씨가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 대학에서 동문상을 받는 날입니다.

이 상은 매년 뛰어난 활약을 보인 졸업생 한 명에게 주어지는데, 값진 상인만큼 조 씨의 얼굴엔 긴장감이 엿보이고,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 그의 걸음걸이도 왠지 경직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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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샐퍼드 대학에서 들은 첫 수업을 떠올리며 동문상 시상식에 참석한 티모시 조 씨. 북한에서 꽃제비 시절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어도 연필 한 자루가 없어 나뭇가지를 사용했다는 조 씨는 영국에 와서 볼펜을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 RFA Photo

이내 ‘티모시 조’란 이름이 호명되자 그가 환한 미소를 되찾습니다.

북한의 꽃제비 시절과 탈북, 영국에 정착하기까지 삶을 소개하며, 인간의 가치가 억압받는 것을 목격한다면 침묵하지 말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라는 그의 연설에 후배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조 씨를 축하하기 위해 모교를 함께 방문한 그의 대학교 절친 조쉬도 끊임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 조쉬 ] 처음 티모시가 북한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놀랐어요 . 북한에서 온 사람을 만날 줄 몰랐거든요 . 그의 과거를 알게 됐고 그가 겪었을 상황들을 알았기 때문에 티모시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조 씨는 중국 베이징의 감옥에 수감됐을 때 이따금 텔레비전에 등장한 영국 축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봤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영국과 인연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며 웃어 보이는 조 씨는 북한에서 펼치지 못한 꿈을 좆아 서둘러 바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