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탈북민들] ⑨ 청진에서 온 보수당 후보

0:00 / 0:00

[ 박지현 ] 처음 영국에 와서 선거권을 갖고 투표하러 갔을 때 , 남편과 둘이 양복을 차려입고 아침 일찍 갔어요 . 북한에서는 새벽 4 시에 시작하니까요 . 그런데 투표장에 사람이 없는 거예요 . 그래서 ' 벌써 선거가 다 끝났나 ?' 막 이랬죠 . 알고 보니 영국은 7 시부터 투표를 시작하더라고요 .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는 2015년 봄, 영국 국민으로서 처음으로 투표한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유권자로서 참여한 첫 선거 날을 생각하면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 박지현 ] 처음 투표권을 갖고 투표하러 들어갔는데 , 투표장 안에 들어가면 북한은 감시를 하잖아요 .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게 없는 거예요 . 그냥 주소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주면서 투표하라는 거예요 . 처음 투표하면서 , " , 이런 게 선거의 자유구나 .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구나 . 북한에서는 박탈돼 있는 …"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 나는 보수당 후보 박지현입니다 ."

지난 5월 4일, 영국 맨체스터 인근 도시 베리 사우스(Bury South).

‘프레스트위치(Prestwich)’라고 쓰인 전철 역 주변에 카페와 식당들이 모여있고, 많은 사람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영국 보수당을 대표하는 파란색 외투를 입고, 가슴에는 천으로 만든 보수당 상징물을 단 박지현 씨가 지나가는 시민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박 씨는 올해 3년째 구의원 선거에 도전했는데, 이 베리 사우스 지역이 그가 출마한 지역구입니다.

[ 시민 ] 한국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

[ 박지현 ] , 북한에서요 .

[ 시민 ] 북한에서요 ?

길거리 유세 중 한 남성이 박 씨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탈북민 출신이라는 박 씨의 말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png
프레스트위치 역 앞에서 만난 한 노동당 지지자는 “박 씨의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운 영국의 정치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 RFA Photo

탈북 난민이자 이민자인 그녀가 지방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 요양원과의 인연 덕분입니다.

[ 박지현 ] 코로나 때 한국에 있는 탈북민이 보내온 마스크를 이곳 ( 영국 ) 요양원에 기부했어요 . 그때 요양원 직원들이 " 영국에 온 난민이 이렇게 우리를 도와준다는 것에 너무 놀랐고 ,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 고 하더라고요 . 그 한마디가 저한테 새로운 발걸음을 제시해 준 것 같아요 . 비록 제가 난민으로서 여기에 왔지만 , 영국 사회에서 영국 시민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

박 씨가 영국에 정착한 지 15년. 그는 그동안 영국 정부와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지역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베리사우스의 세인트마리스(St Mary’s) 구의원 후보 명단에 당당히 오른 이름, 박지현.

[ 박지현 ]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 북한에서는 제가 후보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 봤고 , 당에 입당한다는 것도 한평생 가도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 그런데 여기는 누구나 당에 입당할 수 있어서 참 놀랐어요 . 제가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잖아요 . 당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했거든요 . 후보자 신청을 할 때도 저는 난민이어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 그런 제약이 없어서 놀라웠어요 .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박 씨가 지금은 영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도전하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더는 북한에서 온 이방인이 아닌 영국 사람이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거 홍보물에서 ‘탈북민'이라는 단어도 지웠습니다.

[ 박지현 ] 두 번째 출마부터는 제가 탈북민이라는 걸 명시하지 않았어요 . 사람들이 저를 영국인들과 같은 위치에서 바라봐 주는 게 감사했거든요 . 그래서 굳이 북한에서 왔다는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 우리 당원분들은 알지만 , 주민들은 잘 모르죠 .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 오히려 제 백그라운드 ( 배경 ) 를 내세우면서 투표해달라고 하는 건 마치 구걸처럼 보여서 싫고요 . 저는 정정당당히 다른 후보자들처럼 투표 받고 싶어요 .

탈북민이 아닌 영국인과 똑같은 입장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고 싶다는 박 씨의 가슴에 달린 보수당 상징물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유난히 펄럭입니다.

2.png
세인트마리스 구의 한 투표장. 박 씨는 5월 4일 선거일에 지역구 내 투표장 세 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박 씨는 지난 2017년에 탈북민으로서 최초로 영국 보수당에 정치당원으로 가입했다. / RFA Photo

" 엄마는 왜 나를 버렸어 ?"

빨간 벽돌집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이곳은 박 씨가 사는 동네, 베리 노스(Bury North)입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는 아기자기한 화분과 귀여운 강아지 모양 조각상이 보입니다. 한편에는 작은 텃밭도 있는데, 푸른 채소들이 제법 자랐습니다.

[ 박지현 ] 취 있잖아요 , 쌈 싸 먹는 거 . 취나물이에요 . 한 번만 심으면 계속 자라거든요 . 지금은 부추를 베려고요 .

안내를 받아 집안에 들어가 보니 거실 책꽂이에는 영어책과 북한 관련 책들로 가득합니다. 박 씨가 북한 인권활동을 하며 받은 감사패와 상패들도 전시돼 있습니다.

박 씨에게는 중국에서 낳은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8년에 처음으로 탈북한 그는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붙잡혀 중국인에게 팔려 갔습니다. 당시 중국 돈으로 5천 위안, 박 씨의 몸값이었습니다.

팔려 간 시골에서 매일 농사일과 음식 장사를 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때 태어난 아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누군가의 신고로 박 씨는 한밤중에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고, 노동단련대에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게 됩니다.

[ 박지현 ] ' 내가 만약 여기서 죽으면 아들을 다시 못 보지 않냐 ' 는 생각에 , 그때는 저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이 아들 하나뿐이었거든요 . 그때는 ( 아들을 만나기 위해 ) 제 자신을 막 팔았죠 . 인신매매로 가겠다고 . 그 길밖에 없으니까 .

노동단련대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박 씨는 아들을 꼭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한번 북중 국경을 넘게 됩니다.

일 년 만에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순간, 박 씨는 온 우주를 안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박 씨에게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 박지현 ] 2012 년이었어요 . 아들이 " 엄마는 왜 나를 버렸냐 " 고 묻더라고요 . 그때 당시 5 살 아이의 기억에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 알고 있더라고요 . 그 아들의 질문 전까지는 내가 북한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가장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 나만 피해자가 아니구나 , 다른 탈북민들도 있고 내 아들도 피해자였겠구나 .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이 7년간 마음속에만 담아왔던 질문. 그로 인해 박 씨는 북한 인권 문제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 박지현 ] 이게 저 하나만이 아니잖아요 . 많은 북한 여성이 이런 식으로 북한이나 중국에서 아이들과 헤어지잖아요 . 부모들이 아이들을 버린게 아니라 , 북송돼서 강제로 헤어지고 , 장기간 감옥에 있거나 , 감옥에서 죽으니까 돌아오지 못해 못 찾는거죠 . 누군가는 꼭 입을 열어줘야 되잖아요 .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들 ( 피해자 ) 의 이야기는 다 묻혀버리니까 , 사명감이 저에게도 있겠죠 . 그래서 나도 이제 누군가를 위해 뭘 해야겠다 .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인권 실태와 북한 인권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고, 2017년부터는 탈북 여성과 북한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한 민간단체 ‘징검다리'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3.png
박 씨는 지난 2020년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영국 지부가 수여하는 ‘브레이브 어워즈' 인권상을 받았다. 그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악몽을 꾸지만, 절대 인권 운동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 RFA Photo

누워계신 아버지 옆 쌀 한 공기

박 씨의 집 부엌에서는 요리가 한창입니다.

그의 남편이 소고기볶음 요리를 만들고, 그 옆에서 박 씨가 그릇에 밥을 옮겨 담습니다.

두 부부는 멀리서 귀한 손님이 왔다며 아삭한 겉절이김치에 잡채, 미역국, 고기볶음 요리까지 내놨습니다. 동그란 모양의 나무 식탁이 어느새 음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박 씨는 두 번째 탈북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는 박 씨가 몽골 국경을 넘으려다 중국 공안에 쫓길 때, 박 씨의 어린 아들을 대신 둘러업고 달려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행복한 저녁 식사 자리지만, 박 씨는 쌀밥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말합니다.

4.png
박 씨가 남편이 만든 음식을 식탁으로 옮기고 있다. 박 씨 가족의 식탁은 한식과 중식이 조화를 이룬다. / RFA Photo

수백만 명이 굶주려 숨진 고난의 행군 시기.

[ 박지현 ]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주워와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 물고기 내장이나 오징어 똥조차도 서로 가져오려고 치열하게 싸우고요 . 그건 짐승도 안 먹는 거잖아요 . 그거라도 먹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 왜 우리는 여기에서 태어났을까 ', ' 우리가 한평생 충성을 바쳤던 그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게 대체 뭔가 ' 진짜 처절하게 느꼈어요 . 배신도 그런 배신은 없을 거예요 .

먹을 게 없어 말 그대로 굶어 돌아가신 큰아버지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자식들만이라도 북한을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 박지현 ]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 진짜 뼈에 가죽만 있던 아버지 , 그리고 아버지 옷 자체를 그 당시에 다 팔아버려서 , 마지막 가실 때 입힐 옷이 없었어요 . 그냥 내복 한 벌밖에 없었거든요 . 그리고 옆에 쌀 한 공기를 놨거든요 .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누가 보면 마지막으로 밥 한 번 해달라고 . 지금도 저한테 남은 아버지는 딱 그 모습이에요 .

[ 박지현 ] 삼촌이 아버지 장례를 해줬었는데 , 제가 삼촌한테 빌었어요 . 아버지 무덤에 데려다 달라고 . 근데 삼촌이 안 알려 주더라고요 . 그래서 아버지 무덤도 못 갔어요 . 저는 아버지 무덤 갈 때까지 살아야 돼요 . 그때까지는 진짜 통일돼야 돼요 . 무조건 .

[기자] 지금 이렇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시면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으세요?

[ 박지현 ] 아마 자랑스럽다고 얘기하셨을 것 같아요 . 그런 어려운 고비가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딛고 일어섰다며 아마 자랑스러워하시지 않을까 . 아버지가 ( 탈북하라고 떠밀어 준 ) 용기가 없었다면 , 저는 여기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5.png
동행 취재 내내 밝은 모습이던 박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박 씨는 지난 2016년에 마지막으로 꿈에 나온 아버지가 활짝 웃고 있었다며, 다시 꿈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 RFA Photo

창밖에 내리는 소나기의 빗줄기가 박 씨의 집 창문을 때립니다.

20년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오늘도 전 세계에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 박지현 ] 제 한마디로 ( 북한의 실상을 )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 그건 지금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 그리고 제 이야기는 이제 과거잖아요 . 그런데 지금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어요 .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 인권 활동을 ) 해야 할 거예요 . 유대인들도 ( 홀로코스트가 있은 지 ) 70 년이 지났지만 , 지금 90 살이 넘어 100 세의 나이에도 본인들이 겪었던 일을 다른 이에게 알리잖아요 . 우리도 계속 그렇게 가야 할 것 같아요 .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