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의 남한 살이]③ 소통을 이끄는 미술의 힘

2009년 현재 한국에서 일반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은 대략 1,200여 명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가을 개편을 맞이해 이들의 한국 생활을 집중 조명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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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한국에서 일반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은 대략 1,200여 명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가을 개편을 맞이해 이들의 한국 생활을 집중 조명해 봤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자신의 내면에 고민과 상처를 숨겨둔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친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 중 하나인 ‘집단미술치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서울의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 교육시설인 <여명학교>에서 한 학생이 흰색 도화지에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이 학생이 그린 건 색안경, 그러니까 선글라스입니다. 평소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이 학생은 어떤 생각을 갖고 왜 하필이면 선글라스를 그렸을까.

<여명학교>는 학생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학교에서 연구주임으로 일하는 채혜성 선생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이건 어느 학생이 그린 선글라스네요. 색안경. 이건 어떤 의미로 그린 건가요?

채혜성:

보통 여기 있는 학생들이, 북한 학생들이 선글라스를 패션모델이나, 유행, 그러니까 자기는 쉽게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미술) 시간을 통해서 자기가 직접 선글라스를 만들어보고 그려보고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귀한 사람이다’라는 걸 깨닫는 거죠. 그게 그렇게 몇몇 특정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는 데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거죠.

때로는 그림 한 장이 이처럼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특히 심리적 상처가 많고,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있거나, 나이가 어려서 언어적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바로 그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은 이른바 ‘집단미술치료’라는 이름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탈북 청소년에게 이 방법은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지난 2006년에 <탈북 청소년을 위한 집단미술치료 체험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쓴 ‘미술 치료사’인 신형미 선생에게서 집단미술치료의 방법과 장점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신형미:

장점이 있다면,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거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이미지를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다는 여지 자체가 미술이 가지고 있는 미술 치료의 힘인 것 같아요.

기자:

그러면 치료하는 과정이 어떻게 되지요? 학생이 와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신형미:

네,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이미지가 말해주는 부분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요.

박성우:

함께 나눈다는 건 무슨 말씀이시죠?

신형미:

이야기로도 나눌 수 있고, 아니면 오늘 한 작업만이 아니라 몇 주 전에 했던 이미지를 다시 꺼내놓고 그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함께 나눌 수도 있고요.

기자: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탈북자들이 하게 된다는 말씀이시죠?

신형미:

네. 소통의 기회를 주는 거죠.

신 선생의 논문에 등장하는 3명의 탈북 청소년들도 다양한 유형의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셋 중에서 특히 당시 17세이던 여학생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신 선생은 말합니다. 남과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던 이 학생은 지난 2002년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남한으로 곧장 넘어왔습니다.

이 학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북한을 떠나오면서 느낀 갈등과 배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공포가 심리적 상처, 그러니까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고 신 선생은 분석합니다.

신형미: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갈 사람을 가족 중에서 뽑은 거예요. 그 중에는 간다는 사람이 있고, 안 간다는 사람이 있었죠. (남쪽으로) 가기로 한 사람이 어느 날 일시에 모여서 ‘정말 우리는 이 배를 타고 가다가 잡히면 다 같이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어른들의 약속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머님이 쥐약을 며칠 동안 사서 모으셨대요. 그러니 (남쪽으로) 오는 동안 얼마나 그 상황이... 그 긴박한 상황이 이 친구에게는 트라우마였던 거 같아요.

지난 2003년에 한국에 온 당시 20세의 남학생도 중국에 있는 어느 지하실에서 한 달 동안 숨어 지내며 느꼈던 공포가 심리적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한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서울 시내의 야경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두려움”도 이 학생을 움츠려들게 했다고 신 선생은 말합니다.

이밖에도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시던” 할머니와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도 이 학생의 서울 생활을 힘들게 합니다.

신형미:

이 친구가 가졌던 트라우마는, 북에 남겨두고 온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인사도 할 수 없이 그냥 갑자기 넘어오게 됨으로 인해서, 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아주 컸어요.

신형미 선생은 이런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먼저 신뢰감을 주고 서로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신 선생은 설명합니다.

신 선생은 석 달에 걸쳐서 이들과 대략 1시간 30분 씩 10번을 만나 집단미술치료를 실시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온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너는 뭐가 제일 힘드냐’는 질문이나 ‘너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은 애초부터 묻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대신 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미술이라는 도구를 이용했다고 덧붙입니다.


신형미:

이 친구들에게는 ‘나를 어떻게 보이고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에 대한 부담감이 저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것 같아요. 그냥 ‘나는 북에서 왔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깜짝 놀라는 반응이 너무 싫고, 그렇다보니까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어떨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래서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이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처음에 그냥 ‘너는 어떤 친구야’, ‘너는 어디서 왔어’ 이런 걸 물어보기 전에, 그냥 나라는 사람을 이미지로 한 번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신 선생은 가위와 풀, 그리고 사진이 많이 나오는 잡지책을 학생들에게 나눠준 다음 잡지 속에 있는 사진을 오려 붙여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나’에 대해서 표현해 보라고 부탁합니다.

17세의 여학생이 잡지책에서 오려낸 사진에는 무뚝뚝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입도 꾹 다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옷차림은 각양각색입니다. 새빨간 연지를 바른 여성의 입술만 확대한 사진도 두 개나 오려붙입니다. 말을 할 듯 말듯 한 입술 모양이 특징입니다.

신형미:

다른 친구에 비해서 이 친구는 정말 많은 잡지(의 사진을)를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붙이고, 말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어요. 그런데 꿈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입을 다물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여기에 보면 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어요. 이 친구는 ‘내 안에는 너무 많은 색깔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아주 힘이 있는 사람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원하지 않았던 탈북과 남한에서 겪는 이질감. 이런 이유로 “집에서도 삐뚤어져 있고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낙인찍힌” 이 여학생이 “내 안에는 이렇게 다양한 내가 숨어있다”는 걸 미술을 통해 표현한 겁니다. 소통의 시작인 셈입니다.

신형미:

‘어떻게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친구들에게 ‘내가 뭔가를, 나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표현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통쾌함, ‘나는 그냥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라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너무 색다른 경험이죠.

신 선생은 논문을 쓸 당시 17세이던 그 여학생을 지난 해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고 말합니다.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교로 가는 길이라며 밝게 웃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신 선생은 말합니다.

이 학생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게 전적으로 집단미술치료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한국 사람과의 소통 자체가 불편하다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미술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고민을 털어 놓고 다른 이들과 고민을 나눔으로써 자신의 상흔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