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준 열사마저 주체사상 선전도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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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탈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하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작가 나와 계십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지난 시간에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오늘은 어떤 작품 또는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도명학: 오늘은 남북한이 다같이 인정하는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와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있을 때 만든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를 가지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MC: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북한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마,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은 바로 남한 출신의 신상옥 감독이죠,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도명학: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남한에도 좀 알려진 영화인데, 1907년에 있었던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러 간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으로 이루어진 “헤이그 밀사 사건”을 소재로 1984년에 제작된 영화입니다. 북한으로선 처음으로 해외에서 촬영된 영화기도 한데, 아마 신상옥 감독과 김정일의 관계가 좋았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당시 신감독에 대한 김정일의 신뢰와 지원은 전폭적이었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하는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나온 지 오래지만 지금 봐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신상옥 감독은 확실히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음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당시 시대적 상황부터 시작해 이준 열사가 만국 평화회의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할복하기까지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을사늑약 체결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정객들과 군인들이 조선의 대감들을 회유 협박하는 장면과 황실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대한제국 황제를 압박하는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또 을사늑약이 끝내 체결되자 분을 이기지 못해 자결하거나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낙향하는 양반들과 땅을 치며 통곡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아프게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에 괴로워 이준은 음식도 먹지 못하며 누워 지내다 자결을 결심하지만 불현듯 들려오는 젊은 학생들의 노래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젊은이들을 교육을 통해 국권 회복의 동량지재로 육성하려고 교편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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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의 이준 열사가 분사(憤死) 전까지 머물렀던 방. /연합

“결국은 주체사상 선전

그러던 중 이준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제안한 만국 평화 회의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리하여 이준은 그 기회를 불법적인 을사보호조약을 무효로 하고 국권을 회복할 수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일제의 감시를 어렵게 피해 황제를 알현하고 특사 임명장을 받고 이상설과 함께 조국을 떠납니다. 러시아에 들려서는 대한제국 러시아 참사의 아들 이위종이 일행에 동행하게 되는데 이위종은 외국어를 잘합니다. 헤이그에 도착한 이들은 처음에는 그래도 한나라의 대표인데 자존심을 구길 수 없다고 헤이그에서 제일 비싼 호텔 방을 잡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개인 집을 알아보고 옮겨 지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 집주인 노파와 친해지면서 노파와 손녀는 조선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품게 되고 일본의 행태를 증오하며 밀사 일행을 진심으로 돕습니다.

제일 큰 난제는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려면 회의가 개최되기 이전에 각국 대표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신청서류를 접수해야 하는데 이준 일행은 이미 회의가 진행 중인 때 밀사로 온 처지여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의장국인 러시아 관료도 도와주겠다는 말뿐이고, 조선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진 미국인 헐버트에게도 부탁하지만 헐버트는 미국 측 관료로부터 일본과의 약속인 가츠라-타프트 협정대로 필리핀을 손에 넣으려면 조선을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합니다.

결국 밀사 일행은 각국 대표들을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찾아다니며 제발 회의에 참석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없는 주머니를 털어 선물인지 뇌물인지 모를 물건들까지 사다 주며 한편으론 기자회견을 하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정말 눈물겨운 노력을 다합니다. 그리하여 다행히 조선 대표를 참석시켜야 한다는 신문 기사들이 실리고 여론이 들끓게 되는데, 회의 주최 측은 각국 대표들의 동의를 물어 조선 대표들의 참석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방청객 자격이었고 이에 정식 대표로 참가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방청으로라도 참석하게 됩니다.

회의에 참석한 이준 일행은 발언권이 없음에도 장내에 일제에 의한 을사보호조약의 부당성을 절절한 심정으로 폭로하게 되고, 각국 대표들은 일본의 행태를 비난하며 조선대표를 정식 대표 자격으로 받아들이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본 대표는 이준 일행은 가짜가 분명하다며 조선 황실에 특사를 보냈는지 먼저 조회를 해보자고 역제안을 합니다. 이준은 특사 임명장을 주면서 “경은 나를 믿으라. 짐이 어찌 어려움에 처한 신하를 모른다 할 것인가” 하던 황제를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최 측에 전달된 조선 황제의 회신은 특사를 파견한 일이 전혀 없다는 내용입니다. 분명 일제의 농간이었지만 옥새까지 찍힌 친서로 어떻게 변론할 길이 없게 되자 일본대표는 저 사기꾼들을 당장 내쫓아야 한다고 떠들고 이에 속았다고 생각한 각국 대표들 전원이 당장 나가라고 손짓하며 고함을 지릅니다. 더는 출로가 없고 일행은 경비원들에 의해 끌려 나가게 되자 불현듯 이준이 연단 앞으로 달려 나가 칼을 꺼내 쳐들고 “보라! 우리 조선 민족의 독립정신을” 하고 외치며 배를 가릅니다. 순간 회의장은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 되고 이준은 외세를 믿고 구걸해 국권을 회복하려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한탄하며 숨을 거두고, 영화는 외세 의존은 구국의 길이 아니라 망국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끝납니다.

MC: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원했던 작품인만큼 김 위원장이 원했던 것들이 작품 속에 많이 녹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도명학: 영화를 통해 강조된 사상은 한마디로 주체사상의 정당성입니다. 정치에서의 자주, 사대주의 타파, 결론적으로 주체사상의 조국을 세운 김일성이 얼마나 위대한 수령인가를 가슴 깊이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남한 문학도 독립운동에 관심 가져야"

MC: 이 영화를 본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도명학: 내용상으로는 북한 당국이 의도한 바대로 주체사상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살릴 가장 훌륭한 사상이라는 생각, 절세의 위인 김일성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행운인지를 실감하게 되고, 작품성 면에선 역시 신상옥 감독의 영화는 손색없는 명작들이구나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MC: 이준 열사를 다룬 작품이 남한에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도명학: 네, 이준 열사에 대한 영화를 찾을 수 없더군요. 뮤지컬, 연극, 만화 같은 작품들은 있던데, 제 생각엔 얼마든지 좋은 영화를 만들어 대박 날 수 있을 소재인데 아쉽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영화 자체는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스케일도 크고 배우들 연기, 화면 구성 등 다 좋습니다. 물론 2025년 시점에서 보면 다소 어색한 면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1984년에 나온 영화 치곤 굉장히 잘 된 영화입니다. 허구도 사실과 잘 어우러져 허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영화들 대개가 그렇지만 이 영화 마지막 부분도 속심이 빤드름히 보이는 선전선동이 감흥을 깨는 것이 치명적 결함인데, 신상옥 감독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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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북한 피납 6년째에 상봉한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김정일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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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남한과 북한이 이준 열사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차이점이 있을 수 있을까요?

도명학: 북한에서는 영화에 나온 대로 이준 열사를 인식하고 있을 뿐 이준 열사에 대해 더 깊고 자세한 것은 모르기도 하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헤이그에서 할복한 애국 열사라는 것이 다입니다. 남한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시간상 다 얘기 할 순 없지만 사실 이준 열사는 만국평화회의에 들여놓지 않아 전혀 들어간 적 없고 칼로 배를 갈랐다는 것도 실은 다아시 대한매일신보라는 신문이 애국심에 불을 지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지어낸 거죠. 이준 열사의 사망은 종기가 나 수술하다가 독이 퍼져 사망했다는 설도 있고, 헤이그에서의 실패에 분을 이기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고 앓다가 사망했다는 설 등이 있던데 어느 것도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저로선 그냥 참고만 하고 있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만약 이준 열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집필하게 되신다면 무엇에 중점을 두시고 싶으신가요?

도명학: 글쎄요, 제가 써도 신상옥 감독 작품과 별다를 게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준 열사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사료에 중점을 둘 것 같습니다. 역사물과 인물 전기는 객관성이 결여되면 사회와 후대 교육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MC: 북한에서는 위인전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인가요?

도명학: 북한에는 위인전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것 외에 있을 수 없고, 다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들의 전기나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 그리고 특별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신임을 받은 사람들의 수기, 같은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봅니다. 위인전, 영웅전은 그리스 로마 영웅전이나, 에디슨, 노벨, 마리큐리 같은 과학자 등 외국 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오늘은 이준 열사와 또 그를 다룬 북한의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