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분석해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코로나 비루스 대유행이 남긴 가장 큰 후유증은 경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례적인 고물가 속에 장사와 사업이 멈췄던 여파는 특히 서민들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특히 오지, 농촌 등의 경제 사정이 바닥이라는 소식입니다. 농사철 시작을 앞두고 분조담당제를 포기하고 과거 집단 영농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 소식, 취재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오늘도 손혜민, 안창규 기자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지난주 RFA의 북한 내부 소식 보도에는 함경북도의 오지에 살던 40대 여성이 아사해 자녀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손 기자, 평안도 고아원에도 어린 자녀를 버리는 사례가 빈번하다고요? 요즘 들어 이런 사례들이 많습니까?
손혜민 기자 : 네, 그렇습니다. 돌이 지났거나 두 살 밖에 안 된 아기들이 엄마의 손으로 버려지는 건데요. 어린 자녀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의 손에서 굶어 죽을까봐 고아원 문 앞에 몰래 눕혀놓고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러는 엄마도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게 아니지 않나요.
북한 여성들이 어린 자녀를 버리는 사례는 기존에도 있었는데요. 시장의 발달과 다출산 정책의 부작용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여성들이 무슨 장사라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장사가 삶의 전부가 되다 보니 여성들에게 양육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기혼여성들은 불가피하게 피임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2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인구가 감소하자 북한 당국은 다출산 정책을 선포했습니다. 즉, 피임과 낙태 수술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통제한 것이죠. 산부인과 병원에서 몰래 피임을 해주거나 낙태 수술을 해줄 경우 해당 의사는 노동교화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러니 임신 및 출산 여성에 대한 복지정책은 하나도 없는데, 의도치 않게 아기를 임신하거나 출산한 여성들은 유아를 길가에 버리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김정은 시대 들어서면서 북한 지역마다 고아원이 설립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국제 사회는 아동의 생존권을 우려해 북한 고아원에 식량과 영양식품, 의류 등을 꾸준히 지원했는데요.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고아원에 들어가면 최소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아원에 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북한 내부 식량난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확인은 안 되지만 확실히 어렵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악화된 경제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봐야 할까요? 손 기자, 안 기자! 북한의 식량 사정,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손혜민 기자 : 우선 가격의 시선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오히려 북한 장마당 식량 가격이 하락했었는데요. 쌀 1킬로에 3,600원까지 내려갔었거든요. 당시 식량가격이 안정된 것은 국가에서 직접 군량미를 풀어 공급하는 등 정책적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 3년이 지나며 북한의 비축미가 바닥을 드러낸 건데요.
거기다가 2021년부터 북한이 국가식량판매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장마당에서의 식량 유통을 통제하다 보니 쌀 가격 상승이 시작됐죠. 지난해부터 쌀 1킬로 가격이 5천원대에서 올해 6천원대까지 상승했습니다. 아직 코로나 봉쇄로 장사 활동이 제한되는 조건에서 6천원대 쌀을 구입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식량 현물이 없는 것이냐, 식량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체감으로 느끼는 것이냐를 파악해 봐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봉쇄가 풀려 장마당 경기가 좋아지면 주민 소득도 오르고 구매력 역시 상승해 6천원대 쌀이라도 구입이 가능하니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주민 반응은 완화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안창규 기자 : 북한의 식량부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코로나 감영병 사태로 3년간 국경이 봉쇄돼 물자 교류가 차단된 결과, 식량 상황이 최악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농자재 부족과 봄 가뭄, 장마철 집중호우 등으로 작년 농사 작황이 좋지 않은데다 중국에서 공식, 비공식 교류로 들어오는 식량도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북한 당국이 군인들에게 차려지는 식량공급량까지 줄이고 ‘애국미 헌납’ 운동을 벌이겠나요. 땅이 척박한 지역이나 교통이 열악하고 장사가 안 되는 작은 군에 사는 주민들은 정말 아우성입니다. 돈이 있어도 쌀을 구입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 등 식량난에 대한 체감도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소위 ‘오지’라고 불리는 지역, 소외된 지역들이 더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국경 봉쇄 해제 등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치가 절실해 보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 3.8 부녀절이 지난주였죠? 지난해엔 북한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 인민 군대에 보내는 게 최대 애국이라고 선전해서 주민들의 빈축을 샀는데요. 안 기자, 올해 부녀절은 어땠습니까?
안창규 기자 : 네, 올해도 3월 8일에도 북한 노동신문은 국제부녀절을 맞아 낸 사설에서 여성들이 김정은만 따르는 충성의 꽃이 될 것을 주문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아 훌륭히 키워 내세움으로써 조국의 부강번영에 적극 이바지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노동신문에 이 같은 노골적인 가부장적·성차별적 사설이 실리기 전에 이미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은 각 지역별로 가두여성들을 모아놓고 사상교육을 벌였습니다. 사상교육의 핵심은 자녀를 많이, 많이 낳아 잘 키워 인민군대에 보내는 것이 애국이고 최대의 원군이라며 자식들이 나가 있는 인민군대를 성심 성의껏 지원할 데 대한 것이었지요.
특히 여맹은 이번 사상교육에서 지난 2월 8일에 있은 인민군 창건기념일 경축행사 때 김정은이 원군미풍열성자(군대를 적극 후원한 사람)들을 특별히 불러 환대한 사실과 오는 7월에 있을 전승 70돌 경축행사에도 특별 대표로 또 초청하겠다고 말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인민군대를 적극 원호하면 이들처럼 김정은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2021년 6월에 개최된 여맹 7차 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김정은은 “여성들이 아들, 딸을 많이 낳아 키우는 것은 나라의 흥망, 민족의 전도와 관련한 중대사”라며 자식을 많이 낳아 키울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 여성들이 어머니로서 자식들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부문들,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초소에 용약 달려나가 청춘시절을 빛내어나가도록 적극 고무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김일성 김정일 시기부터 지속되어 온 북한의 가부장적·성차별적 세계관과 가치관은 김정은 시대에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부녀절에 두 가지를 강조했네요. 아이를 많이 낳아라, 그래서 군대에 보내라. 왜 자꾸 부녀절에 군대 얘기를 하는 걸까요? 저출산으로 군인 숫자가 줄어드는 걸 우려하는 겁니까?
안창규 기자 : 맞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식량부족과 같은 생활상 어려움으로 인한 저출산의 영향이 큽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전에는 한 가정에 자녀가 3~6명씩 되었지만 지금은 1명이 보통이고 많아야 2명 정도입니다.
인구 감소 추이는 각 학교들에서 입학생 부족으로 학급 수가 줄어들고 학교가 통폐합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큰 도시 학교의 경우 한 학년에 학급이 보통 8~12개씩 되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절반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이는 군대에 나갈 남성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여기에 더해 최근 북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나 군대에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대부분의 간부와 돈주들은 권력과 뇌물을 이용해 자녀를 입대 대상자 명단에서 뺍니다. 결국 군대에 나가지 않게 되는 거죠. 또 이전에는 북한 사회에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북한 당국이 어머니 대회라는 것을 개최하고 자녀를 많이 낳아 군대에 내보낸 여성들에게 모성영웅 칭호를 수여하는 등 여성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을 독려하고 또 이전에 비해 여성들을 군대에 많이 모집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분조관리제 즉,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했고요. 일정 부분 좀 효과를 보기도 했죠. 그런데 올해는 거의 집단영농 방식으로 돌아선 것 같다고요? 손 기자, 북한 당국이 포전담당책임제를 공식적으로 포기를 했다고 선언한 건 아니죠?
손혜민 기자 : 네, 북한이 공식적으로 포전담당책임제를 포기한다고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황해북도와 평안남도 등에 자리하고 있는 협동농장에서 올 봄에는 농민들에게 농경지를 분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이에 따라 올해 포전담당책임제가 도입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 제8기7차 당 전원회의(2.26-3.1)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농업부문에서의 변혁을 강조했는데요. 농업부문에서 부정적인 요인을 없애라는 내용도 있었죠. 이러한 연장선에서 올해 협동농장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이 임시적 조치인지, 정책적으로 포기하도록 조치한 것인지는 조금 더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를 보면 내부 소식통이 포전담당책임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을 전했는데요. 꽤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행 초기, 농민들은 오히려 환영하지 않았습니까?
손혜민 기자 : 사실 포전담당책임제, 즉 분조관리제는 개인농에 가까운 영농방식이므로 개혁에 가까운 정책입니다. 2003년부터 부분 도입되었던 포전담당제는 2012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면서 '포전담당책임제'로 용어가 바뀌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포전담당책임제란 3명~5명의 가족단위 분조에 농경지를 분여하고 가을에 수확한 알곡을 국가와 농민이 배분하는 영농방식입니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도입된 포전담당제는 개혁파였던 박봉주 내각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협동농장의 경영권을 대폭 위임하자는 개혁안을 제의하였고, 이를 김정일이 승인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농민들의 근로 의욕을 자극해 알곡 증산을 유인함으로써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실제로 ‘국가에 얼마 바치고 나머지 다 너네(농민) 다 먹어라’는 당국의 지시로 포전담당제가 실시되었던 농촌지역 농민들의 생활수준이 상당수준 올랐습니다. 가을이 오면 농민들은 수확한 알곡을 장마당에 팔아 TV도 사고 집도 보수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포전담당제로 개인 이기주의가 양산되고, 식량가격이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으로 이원화되자 북한은 2005년 양곡전매제를 실시하고 국가배급소를 살려낸다며 포전담당제를 중단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면서 다시 포전담당제는 포전담당책임제로 명칭을 바꿔 본격적으로 도입됐으나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당국이 국가 납부와 군량미 등 명목으로 농민들이 수확한 알곡을 탈곡도 하기 전에 대부분 징수했기 때문인데요. 빈손으로 나앉은 농민들이 많았죠. 이때부터 농민들은 차라리 도시로 나가 장사하는 게 낫겠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포전담당책임제는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북한의 농업 정책은 포전담당제와 집단영농 방식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을 만 하면 북한 당국이 강제적 조항을 끼워 넣고 나중에는 흐지부지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갔는데요. 북한 농업 정책이 도돌이표처럼 이렇게 돌고 도는 이유, 뭐라고 보십니까?
손혜민 기자 : 우선 반쪽짜리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농경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도록 하였으나, 농민들의 영농수단 소유권을 허용하지 않았죠. 그러니 밭갈이 할 때 농민들은 농장 부림소 등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부림소를 사용한 날짜를 계산해 가을에 농민들에게 현물 알곡을 징수했습니다.
결국 포전담당책임제를 포기한 농민들이 늘어나자 농장 간부들은 아예 개인 돈주에게 농경지를 임대했습니다. 국가에서 영농자재를 공급하지 않고 국가에 바쳐야 할 알곡 계획을 수행하라고 하니 농장으로써도 방법이 없는 겁니다. 결국 개인 돈주들은 농민들을 일공으로 고용해 임금을 주면서 땅콩이나 수박 등 고수익 작물을 재배했는데요.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계급이 생산되는 부작용이 초래되자 북한은 체제 근간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해 다시 사회주의 농업협동화를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래서 결국 북한의 농촌 정책은 사회주의 집단영농으로 후퇴하는 것 같네요. 이제는 초모철입니다. 안 기자, 고급중학교에서 군대 나갈 것을 독려하는 행사와 모임이 개최되고 있다고요 ? 기사를 보니 군복무를 독려하는 형식도 다양하네요.
안창규 기자 : 네, 가장 노골적인 것은 각 지역 기관 별로 청년들이 참가하는 탄원모임을 열고 군대에 입대하겠다는 탄원서에 서명하게 하는 것이지요. 탄원행사를 하는 것을 보면 주석단 앞에 책상이 놓여있고 그 위에 탄원서가 있습니다. 수표(서명)는 한 사람씩 앞에 나와 하게 되는데 주석단에 있는 간부나 모임 참가자들이 다 보는 가운데 하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수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한국 전쟁에 참가한 노병이나 오랫동안 최전연(최전방)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노병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노병과의 대화’, 그리고 군대에 나갈 것을 독려하는 해설담화, 웅변모임, 결의모임 등 행사의 명칭과 형식이 다양합니다.
특히 지난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을 맞아 일부 지역에서는 2021년과 2022년에 군대에 나간 선배학생들이 모교의 후배 졸업생들에게 모두가 군대에 나가 김정은을 결사 옹위하는 영웅이 되자는 내용의 격려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그 편지를 통해 청년들이 설 자리는 조국보위 초소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조국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는 등의 사상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개별적인 학교가 어느 부대에 가 있는지도 모르는 선배 학생들에게 후배 졸업생들을 위해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역당국이나 청년동맹이 조직적으로 의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남북 모두 남성들은 의무 복무를 하고 있죠. 그런데 초모를 앞두고 탄원을 독려하는 행사까지 열리는 건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또 안 기자님 세대와 지금의 초모 분위기가 다를 것 같은데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안창규 기자 : 북한에서 군대에 나갈 것을 독려하는 행사나 모임이 주요 기념일이나 초모철을 앞두고 진행되는 것은 오래된 관례입니다. 하지만 최근 더욱 심화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과 청년들의 사상 및 의식변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적지 않은 북한 청년들이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있고, 7~8년씩 군대에 나가 청춘을 소비하는 것을 허무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모르지 않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부정적 기류를 누르고 입대 대상자들이 한 명도 누락됨이 없이 군대에 나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세우려 하고 있는 겁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학급에서 누가 먼저 군복을 입는가 하는 것이 경쟁이었습니다. 누구나 1차로 먼저 군대에 나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건강이나 가정 사정 등 부득이한 이유로 군대에 못 나가는 친구들은 축에 빠지는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군대에 안 나가는 것이 똑똑하고 현명한 처사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그 이유는 수십 년간 이어진 경제난에 따른 열악한 병영 환경,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긴 복무기간, 제대되어도 고향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중요 부문에 집단 배치되는 것과 같은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요.
2020년대 초부터 인민군의 복무 기간이 7~8년 정도로 줄었죠. 그래도 북한 인민군은 2위와 비교할 수 없는 세계 1위, 최장의 복무 기간을 자랑합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집니다. 손혜민,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손혜민 ,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금 북한은> 진행에 이예진, 제작에 서울지국이었습니다.
손혜민, 안창규, 이현주, 이예진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