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2) 아이들의 장래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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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오늘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김필주 :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북도 새별에서 태어나서 17년을 살고,

대한민국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탈북청년 김필주입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향 분들에게 남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데이비드 : 저는 영국에서 온 데이비드 스미스라고 합니다.

졸업 후 북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남한에서 대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강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예은입니다.

대학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고요.

남북통일에 관심이 많고 북한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청춘만세> 지난 시간부터 ‘꿈’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있는 단어지만 탈북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한에서는 유독 ‘꿈’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요.

남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미래 자신의 모습을 꿈꾸게 하고,

그 꿈에 맞게 이것저것 많이 배우게 하고,

어른이 돼서도 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편입니다.

<청춘만세>를 함께 하는 청년들도 필주 씨는 청소년 심리상담사,

예은 씨는 러시아어 통역사, 데이비드는 북한 전문가를 꿈꾸며

남한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각국 어린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어떤 걸까요?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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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영국은 어때요?

데이비드 : 저는 통계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2015년 국립아동학대방지협회 조사 결과인데요.

영국 어린이들은 이런 직업을 선호한대요.

의사, 간호사, 축구선수, 작가나 기자, 경찰관, 철도 기관사,

배우, 동물원 관리인, 가수, 우주비행사.

진행자 :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꿈들이죠.

영국에서도 계속 꿈에 대해 물어보고, 꿈을 키우고... 그렇죠?

데이비드 : 네. 꿈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고, 목표라는 말도 하고.

필주 : 북한에서 목표는 적군을 물리칠 때 쓰는 단어죠(웃음).

진행자 : 예은 씨는 어때요?

제가 어렸을 때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장래희망을 쓰라고 해서

가수, 소설가 등 바꿔서 쓰곤 했는데(웃음).

예은 : 매년 물어봐요.

데이비드, 필주 : 그래요?

예은 : 네, 저희는 학생기록부라는 게 있어서

나중에 보면 ‘내가 그때는 이 꿈을 생각했구나’ 돌아볼 때도 있어요.

저는 자다 일어나면 장래희망이 바뀌었는데

여학생들은 어릴 때 주로 교사, 간호사,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해요. 예뻐 보이잖아요.

저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기도 했어요(웃음).

노후를 편하고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진행자 : 남한에서는 과거에 대통령 되고 싶다는 초등학생들이 많았어요.

필주 : 북한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죠.

북한에서는 아무리 내가 뛰어난 능력을 가져도 토대가 중요해요.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은 못 꿀 거예요.

예은 : 꿀 수 없는 꿈.

진행자 : 남한이나 영국에서 꿀 수 없는 꿈 있어요?

데이비드 : 네, 저는 여왕 될 수 없습니다. 핏줄이 안 돼서(웃음).

진행자 : 아, 그러네요! 거기도 토대네요(웃음).

하지만 수상, 국무총리는 꿈꿀 수 있죠?

데이비드 : 그렇죠. 되기는 어렵겠지만 꿈꿀 수는 있죠.

예은 : 남한에서는 직업으로 따지면 못 가질 꿈이 없어요.

저도 자료를 찾아봤는데

남한 초등학생들은 보통 선생님, 운동선수, 의사, 요리사, 경찰, 가수 등을 꼽는대요.

진행자 : 영국과 많이 비슷하네요.

필주 : 두 분이 통계자료를 제시하니까 제가 부담스러운데.

진행자 : 북한에서는 이런 통계가 있을까요?

필주 : 통계 자체가 없죠.

그래서 북한 어린이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요.

아마도 교사, 제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봐도 어쨌든 선생님은 위대한 존재였어요.

진행자 :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죠.

필주 :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북한에서는 ‘님’자를 잘 안 써요.

수령님, 원수님 정도에 쓰고, 유일하게 일반 직종에 쓰는 게 ‘선생님’이에요.

다른 직업에는 동지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님’을 붙이는 선생님을 많이 선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먹고살기 힘드니까 돈을 벌 수 있는 장사꾼을 많이 선호할 것 같고,

또 운전사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인기가 좋았어요.

운전하면서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진행자 : 북한이라서 가능한 인기네요.

필주 : 북한에서 운전사 자격증을 따려면 4년 이상 걸려요.

최종적으로 운전석에 앉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진행자 : 전문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운전사가 되면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적이라고 들었어요.

필주 : 그래서 많이 선호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요즘은 젊은 층 사이에서 연인, 배우자로 ‘손오공’을 좋아한대요.

‘손오공’이 뭐냐면 손전화기, 오토바이, 지식.

각각 의미하는 게 손전화기는 인적자산,

오토바이는 승용차 개념, 그러니까 경제적인 능력이 되겠죠.

그리고 지식, 이제 무식한 거 싫다.

예은 : 남한이랑 비슷하게 바뀌는 거 같은데요?

필주 : 그렇죠.

진행자 : 남한과 영국 어린이들의 꿈을 조사한 통계자료를 보면

선생님, 간호사 외에도 운동선수, 가수 등이 나왔단 말이에요.

1980~90년대만 해도 남한에서는 어린이들 꿈에 대통령이 많았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대통령은 사라지고 배우나 가수, 운동선수 등이 나오더라고요.

아무래도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직종은 어릴 때부터, 요즘 연습생이라고 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배우거든요.

예은 : 맞아요, 보통 예체능 계열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특히 운동은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해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최고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남한에서는 부모님들이 어릴 때부터 다 시켜 봐요.

진행자 : 그런 거 있죠. 홍명보 축구교실, 김연아 스케이팅 교실.

예은 : 네, 피아노 학원도 보내고, 노래도 시켜보고, 태권도도 배우게 하면서

좀 두각을 드러내면 전문적으로 하는 초등학교에 보내서 훈련을 받게 해요.

진행자 : 영국 같은 경우도 운동을 굉장히 잘 하고,

특히 발레, 뮤지컬(음악극), 성악 등 예술가들도 유명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 많이 하죠?

데이비드 : 많이 하기는 하는데, 좀 차이가 있다면

남한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도 그런 면이 있지만,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피아노 배워 보면 어떨까, 크리켓이라고 영국의 전통 스포츠 해보면 어떨까’

물어보셨지만 압박은 별로 없었어요. ‘해볼래?’ 정도.

그냥 학교 공부 잘하고 문제아 되지 않으면 됐어요.

진행자 : 그런데 영국은 초등학교 수업 자체에

수영을 비롯한 운동이나 악기 등을 다채롭게 배울 수 있잖아요.

남한은 학교에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사교육이라고 개별적으로 많이 배우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피아노, 수영, 테니스 등을 짧게는 가르치지만

어딘가에서 경기를 하거나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주지는 않아요.

예은 :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봐야

내가 좋아하는구나, 잘하는구나 알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걸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지 않아요?

필주 : 있어요. 소조라고 해서 남한의 동아리 비슷한 게 학교에 있어요.

진행자 : 어릴 때부터 자꾸 꿈 얘기를 하는 게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사고를 넓혀주는 것도 있지만

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잘 하는지를 알아야 부모님들이 지원해줄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도 참여를 하는데

이런 일은 성인이 돼서 시작하면 늦어요.

그럼 북한에서도 우리가 흔히 조기교육이라고 하는,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주는 게 가능한 거 아닌가요?

필주 : 일단 제 토대 자체가 안 좋아서 그런 경험을 못 해봐서 모를 수도 있지만

자녀가 특출 나면 중앙당 등에 건의는 해봐요.

‘5과’라는 게 있는데 중앙당에서 재능을 심사해서 데려가는 거예요.

남한에 와서 놀란 건

남한 친구들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다 건반 누를 줄 알더라고요.

탈북 학생들은 어떤가 살펴보면, 저는 못하지만 대부분 기타를 쳐요.

진행자 : 그 차이는 있겠네요.

예를 들어 예은 씨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치면

각종 대회도 나가면서 피아노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꿀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기타를 잘 쳐도...

필주 : 그렇죠, 중앙당에 간택되면 악단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독주는 천재처럼 잘 연주하고, 또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토대가 돼야 하니까

내 재능을 인정받는 데는 한계가 있죠.

예은 : 영국이나 남한은 제한이 없잖아요.

여러 꿈을 꿀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러시아에서는 과거 소련 시절에

졸업 때가 되면 교사가 학생들의 직업을 정해줬다고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거든요.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남의 선택에 의해 어딘가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필주 : 저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아요.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데, 그때는 안타까운 줄도 몰랐어요.

북한에서는 순응하고 살았으니까.

내 인생을 중앙당에서 정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세뇌 받았으니까.

저는 외할아버지가 전라북도 전주 출신이라서 토대가 적대 계층이에요.

적대 계층의 삶은 학교 졸업하면 군대 가고,

10년 복역하고 나면 국가에서 정해준 일을 하는 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

그런데 먹고살기 힘드니까 중국으로 갔는데,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내가 본 세상에 차이가 크니까 의문을 품게 된 거죠.

내 인생이 왜 저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나.

진행자 : 어릴 때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는 20대, 대학생이 돼도

꿈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꿈을 키워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관련해서 강연도 많고요.

지금은 북한에서도 과거와 달리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꿈을 이루는 데도 돈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영국에서든 남북한에서든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개천에서 용 절대 안 난다’고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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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의 제한도 없고, 수많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남한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라진 건 왜일까요?

아마도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어서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좀 더 나눠보죠.

<청춘만세>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