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한인가(3) 알아서 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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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오늘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김필주 :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북도 새별에서 태어나서 17년을 살고,

대한민국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탈북청년 김필주입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향 분들에게 남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예은입니다.

대학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고요.

남북통일에 관심이 많고 북한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브게니 소코브 : 안녕하세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예브게니 소코브라고 합니다.

남한에 온 지 2년 정도 됐고, 전문 통역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께 러시아와 남한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재밌게 들어주세요.

<청춘 만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의 예브게니 씨와

북한 새별 출신의 필주 씨가 왜 남한에 왔는지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필주 씨가 어떻게 남한에 정착하게 됐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또 러시아,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관심이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남한 사람들은 러시아나 북한에 관심이 적은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청년들의 얘기 마저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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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이번에는 북한 새별 출신의 필주 씨가 남한에 정착하게 된 경위를 들어볼까요?

필주 : 일단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을 탈출했어요.

2001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중국에서 4년 정도 살았어요.

중국에서 매체를 통해 남한 사회를 접했죠.

진행자 :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필주 : 몰랐죠. 남조선으로 알고 있었고, 한국, 대한민국이라는 말도 몰랐어요.

미국을 등에 업고 주관도 없이 사는 그런 나라,

그래서 저 대상을 미국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요.

그리고 제 또래 친구들이 모두 거지인줄 알았어요.

그때가 17살인데, 그럴 정도로 남한에 대해 무지했어요.

중국에 살면서 ‘중국이 천국 같다’고 했더니,

조선족이 ‘여기가 천국이 아니야, 한국이 천국이야’ 그러더라고요.

한국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너네 말하는 남조선’이라고.

너무 모른다며 한국 시디알(CDR)을 보여주는데 정말 놀랐어요.

드라마 속에 보이는 남조선의 배경이.

한 4년을 북송 당할 위험을 감수하며 숨어서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행자 : 남한에 오면 숨어 살지 않아도 되니까.

필주 : 그리고 내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못사는 게 아니라 아주 잘살고.

예은 : 그런데 탈북민들은 선택권이 있잖아요, 꼭 남한에 오지 않아도 되고.

아예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는데 왜 남한으로 왔어요?

필주 : 외국에 가도 되지만, 거기서 언어, 문화 모든 걸 다시 해야 하는데

최소한 남한은 언어와 문화가,

물론 외래어를 많이 쓰지만 그건 제가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요. 고민의 여지도 없이 남한에 왔어요.

진행자 : 직접 와서 10년 정도 살아보니 어떤가요?

필주 : 저는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어요.

예은 : 특별히 좋은 점이 있어요?

필주 : 가장 좋은 건

‘알아서 하라’는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알아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왜냐면 북한에서 제 삶은,

청취자 여러분은 잘 아시겠지만 북한에는 3대 계층이 있어요.

핵심, 동요, 적대 계층으로 나뉘는데

저는 외할아버지가 전라북도 전주 출신이라서 적대 계층이었어요.

적대 계층은 인생이 국가에 의해 정해져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10년을 군대에서 복무하고, 돌아오면 국가에서 직업을 주고,

거기에 맞게 살다 죽는 게 제 인생이었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내 인생을 내가 개척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지금 남한 정부에서 뭘 지원해주지 않아도 국적을 준 것만 해도 고맙고 만족하는데

대학교 등록금도 주고 영구임대주택도 보장해 주니까

그런 점에서는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

진행자 : 힘든 점도 많을 거예요.

필주 : 힘든 점은 외래어를 많이 써서 소통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같은 말인데 다른 뜻이라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

‘괜찮다’는 표현을 북한에서는 ‘일없다’고 하는데,

남한에서 ‘일없다’는 ‘너하고 볼 일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상대방이 불쾌해 하거나.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북한에서는 남한과 한민족이고, 통일해야 할 대상이라고 교육을 받아서

이질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북 관계의 영향인지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인 것 같아서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진행자 : 예은 씨는 탈북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예은 : 저는 탈북민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어요.

왜냐면 남한에 탈북민이 많다고 해도 실제로 주변에서 만날 기회는 많지 않거든요.

진행자 : 그렇죠, 남한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인데 탈북민은 3만 명 정도예요.

예은 : 저는 의지를 가지고 만난 거라서 많은 질문이 있었어요. 북한은 정말 그럴까.

왜냐면 단절돼 있으니까 알 수가 없잖아요.

진행자 : 예은 씨만 해도 이 방송도 오래 했고

기존에도 북한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지만,

예은 씨 또래 친구들은 탈북민이라는 말 자체가 뉴스에서나 나오는 말일 거예요.

예은 : 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요즘이야 남한 텔레비전에 탈북민들이 나와서 다양한 방송을 하니까 좀 알게 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아예 몰랐어요.

진행자 : 그럼 필주 씨가 북한에서 남한에 가졌던 편견은 실제 남한에 와서 깨졌잖아요.

필주 씨가 봤을 때 남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편견은

어떤 게 가장 심한 것 같아요?

필주 : 일단 북한은 도발밖에 할 줄 모르는 나라로 생각하는 것 같고,

북한 주민들은 바보냐고, 왜 민주항쟁을 안 하느냐고 해요. 왜 당하고만 사느냐고.

예은 : 맞아요, 그런 생각 많이 하더라고요.

필주 : 처음에는 그 질문을 듣고 ‘글쎄, 나도 모르겠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남한에서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일단 세뇌교육,

옳은지 그른지 비교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그리고 감시 체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진행자 : 그럼 그건 편견은 아니네요?

필주 : 그렇죠. 그리고 예를 들어 ‘바나나 먹어 봤느냐’고 물어봐요.

저는 못 먹어봤지만, 모든 탈북자들이 못 먹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은 : 하긴 저도 ‘북한에서는 아직도 옆에서 누가 굶어 죽어가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북한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까

북한 체제가 안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장마당이 있는지도 모르고.

배급이 끊기면 그대로 굶어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아직 배급 체계라고 아시더라고요.

예브게니 :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예은 : 관심이 없으니까 미사일 발사하는 것만 아는 거예요.

필주 :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니까.

열악한 건 사실인데 열악한 상황에서도 변화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남한 친구들이 탈북민들을 대할 때 이런 실수들을 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어떻게 보면 필주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민족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힘들어서 남한으로 온 다른 외국인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거죠.

예은 : 상처받았을 것 같아요.

필주 : 저는 상처를 별로 안 받았는데, 상처 받는 고향 친구들이 많아요.

진행자 : 왜 이렇게 됐을까요?

예은 : 일단 저희 세대는 사실 북한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계속 소통해야 정보도 교류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한민족이라는 마음은 있지만 통일이 언제 될지도 모르고

그렇다 보니까 점점 관심을 끊게 되는 것 같아요.

필주 : 그리고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아요.

실제로 북한 당국이 남한을 너무 괴롭혔잖아요.

그것에 대한 국민들의 암묵적인 미움이 탈북민한테까지 적용돼서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진행자 : 예브게니 씨는 남한에는 관심이 많은데 왜 북한에는 관심이 없어요?

예브게니 : 일단 북한 문화가 알려지지 않았고, 잘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러시아 사람들이 남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잘살기 때문이거든요.

결국 밥 때문이에요.

그리고 북한에 가더라도 잡지 등을 가져올 수 없어요.

만약에 동영상을 찍으면 검열 받아야 하고, 숙소에 있을 때도 감시당하고.

다 알고 있거든요.

밖에 나오더라도 정해진 노선만 가야 하고.

그게 무슨 여행이냐, 그냥 감옥을 체험해 보는 듯한.

그래서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만 북한에 가는 것 같아요.

결국 북한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북한 제품도 없고,

뉴스에서는 미사일 얘기만 나오고.

러시아의 일반 사람들은 북한이 소련의 부정적인 특징만 갖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예은 : 십여 년 전만 해도 세상에 북한이 남한보다 더 알려졌을 수 있어요.

핵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하니까.

진행자 : 외국 사람들이 남한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김정일 위원장 이름은 알더라고요.

예은 : 그런데 남한이 계속 발전하고,

북한이 부정적인 느낌으로 알려져 있다면

남한은 문화 등 긍정적인 면에서 알려지고 있어요.

진행자 : 앞서 ‘러시아 친구들은 남한에 관심이 많은데,

왜 남한 친구들은 러시아에 관심이 없을까’라는 현상과 똑같이,

지금 북한 친구들은 한국에 관심이 생겼단 말이에요.

드라마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그런데 왜 남한 친구들은 한민족인 북한에 관심이 없을까 생각해 보면

일단 재밌는 게 없어요(웃음).

필주 : 맞아요, 인터넷 들어가면 북한 영화 나오거든요.

예전에 저걸 재밌다고 봤는데 이제 졸려서 못 봐요.

진행자 : 우리가 역사든 그 나라의 문화든 공부로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뭔가 끌리는 게 있어야 파고들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알아보고 여행도 가는데.

일단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재밌는 나라가 아니라서 관심이 더 안 가는 것 같아요.

예은 : 그리고 북한의 역사를 예로 들면 거짓이라는 게 저희 입장에서는 보이잖아요.

‘그걸 굳이 알아서 뭐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알려고 하지 않아요.

진행자 : 그래서 ‘다 못살아서 남한에 왔다더라’라는 편견이 생기고,

그 편견을 깰 기회는 없고.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도 없고, 탈북민을 자주 만날 기회도 없고.

예브게니 : 그래서 민간 교류가 있어야 해요.

민간 교류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중요한 장치예요.

예은 : 학생들이 그런 걸 잘하잖아요.

요즘 대학에서 탈북민들이 공부를 많이 하니까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도 하고,

남한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류의 장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조금씩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필주 : 북한에서는 소조라고 하죠,

북한에 관심을 갖자는 동아리가 생겨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해요.

진행자 : 그리고 최근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2월에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게 되면서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될 기회가 생겼죠.

예브게니 씨 말처럼 뭔가 교류가 있어야 관심을 갖고, 오해나 편견도 깰 수 있을 거예요.

북한에서는 남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어떤 게 있을까요.

네, 오늘 이 시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 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진행자 : <청춘 만세>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