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 식솔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요즘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장마철이라 그런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당국자 회담에서도 비를 소재로 대표들끼리 얘기가 오갔습니다. 좀 차가운 주고받기였지만 말이죠.

먼저 북측대표단 단장은 지금 내리는 비도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면서 회담이 잘 돼서 공업지구정상화에 큰 기여를 한다면 이 비가 공업지구의 미래를 축복하는 비가 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한철 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남측대표는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는다는 말이 있다며 오늘 대표들이 서로 신뢰를 갖고 회담에 잘 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화답했습니다.

아무튼 지금 오는 비가 남북의 미래를 축복하는 비, 북쪽의 올해 농사에도 해가 아니라 큰 도움이 되는 약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14일 남한뉴스에는 지난 1월 24일 기자회견을 했던 김광호씨 가족이 다시 탈북 해 중국에 갔다가 공안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10달 된 딸이 같이 입북했었죠. 이번에는 온 가족과 함께 처남, 처제도 같이 탈출했다 네요.

북한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자랑하는 '한집안식솔, 장군님 식솔'이 무색해 지고, 파괴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저도 김씨 부부의 기자회견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남한에 대한 비판에서 그렇게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 않더라고요. 어쩌다 가족이 인질로 돼 북한에 다시 잡혀 들어간 모양입니다.

'고향은 다르지만, 뜻이 같아 뜻에 살고, 만난 곳 어디여도 정에 끌려 정에 사네. 흘러서 흘러, 모여서 모여, 형제 같은 너와 나는, 아 한집안 식솔, 장군님 식솔.'

이는 북한에서 인민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버이 수령, 어머니 당, 수령․당․대중의 3위 일체, 일심동체'를 감성적으로 최고의 수준에서 표현한 노래죠.

그러나 김광호씨 가정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북한의 이 '한집안식솔, 장군님식솔'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이번 김광호씨도 사실 다시 붙잡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길이였을 겁니다.

그것도 자기 혼자가 아니고 자기 처, 1살밖에 안 되는 딸, 그리고 이번엔 처제와 처남도 목숨을 걸었죠. 왜 이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북한에서 '남조선'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한 다음에도 다시 이런 결심을 한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이들이 자유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유세계가 아무리 냉정하고,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가 쉽지 않아도, 자기가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직업의 선택의 자유가 있고, 한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지기 때문에 결코 꿀맛 같은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죠.

예로부터 못살던 시절은 금방 잊지 만, 잘살던 때는 절대로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죠. 또 자유에 대한 갈망은 북한 내에서도 이미 증명된 것입니다.

90년대 꽃제비들이 득실거리던 시절,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단속하고 해당 시설에 집결시켜 충분치는 않지만 밥도 먹여주고 일도 시켰는데, 이들은 기를 쓰고 시설을 탈출했죠. 비록 방랑생활이지만 한 벗 맛본 자유로움을 잊을 수가 없는 거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