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0년의 저녁노을이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12월은 송년 모임으로 몹시 분주한 달이기도 합니다. 단체마다 송년회 소식을 알리는 전화로 제 손전화기는 매일 같이 불이 납니다.
요즘엔 이틀이 멀다 하고 송년회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북한인권 시민연합회 김영자 사무국장님이 송년 행사에 많은 탈북 동포들과 함께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이메일로 보내왔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흔히 있는 송년회 행사였지만, 저는 그 날을 특별히 기다렸습니다. 북한인권 시민연합회 송년회 때마다 함께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있고 남한에 와서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김영자 사무국장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송년의 밤 행사에 친구들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충정로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니 낯익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친숙한 얼굴의 대학생들과 사무국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제일 좋은 자리를 골라 한 식탁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송년회는 지난해보다 더욱 특별했습니다. 맨 처음에 북한인권 시민연합 이사장님의 인사말이 있었고, 뒤이어 탈북대학생들에게 장학증서가 수여되고, 다음으로 감사패 증정이 있었습니다.
순간 감사패를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사회자의 말에 저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자는 분명히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부름에 저는 깜짝 놀랐지만, 너무 기뻐 한달음에 달려 나갔습니다. 감사패를 받아 안고 들어오는 제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우렁찬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 박수 소리에 기분이 들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돼 한 단체의 소개로 북한인권 시민연합회와 사무국장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저는 탈북자들이 아닌 남한에서 태를 묻고 살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 좋았던 인상이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함께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고, 북한식 음식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좋은 와인, 포도주도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지나간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눈물도 함께 흘렸습니다. 때로는 같은 주부의 마음으로 웃고, 남과 북의 여성들이 수다를 떨기도 했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스트레스도 풀었습니다.
울고 웃으며 시간을 함께 했던, 저 보다 한 살 많은 김영자 사무국장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하고, 허물없는 언니와도 같은 소중한 분입니다.
감사패를 들여다보는 동안, 북한인권 시민연합과 김영자 사무국장과의 좋았던 인연이 스쳐지나가면서 내년 2011년에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습니다.
송년의 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식사와 함께 북한 노래 따라 배우기 시간을 갖고, 뒤이어 즐거운 행운권 추첨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운권의 주인공은 모두 10명이었는데, 저와 함께 간 친구들이 절반 이상 당첨됐습니다. 복은 쌍으로 온다는 말이 웬 말인가 했는데, 이번 송년회의 모든 복을 제가 쌍으로 받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즐거웠던 송년의 밤 행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역에서 빨간 띠를 두르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웃돕기 성금을 걷고 있는 자선냄비에 만원씩 넣으며, 이 시간에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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