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디오를 들으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허예지 씨와 이 시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예지 씨는 황해남도 해주를 벗어나 2010년 남한에 정착한 뒤
현재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지난 시간, 2019년 여름에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기를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아주 힘들고도 황홀한 경험을 얘기한다고 하죠.
예지 씨 여행기 마저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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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제주도 한라산 등반을 이제 시작해야죠?
허예지 : 네, 북한에 백두산이 있다면 남한에는 한라산이 있습니다.
노래에도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한 단체에서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한라산을 등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건데요.
한라산의 높이는 1,950m이고 면적은 133㎢입니다.
굉장히 높고 넓죠.
한라산 높이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전쟁이 시작한 연도와 같은 숫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는 8시간 정도 걸리는 관음사코스로 올라갔습니다.
북한에서 산을 많이 타봐서 자신만만하게 한라산으로 떠났는데요.
한라산 등반이 30분도 안 되어서 체력이 방전되었습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너무 힘들더라고요.
오히려 한국 학생들이 산을 더 잘 타는 거 있죠. 놀랐습니다(웃음).
진행자 : 아니, 북한에서 등산을 많이 했어요?
백두산이나 묘향산, 금강산 등은 일반 주민의 경우 갈 수도 없다고 들었어요.
허예지 :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을 등반한 적은 없지만
산에 땔감을 하려고 많이 갔죠.
낮은 산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베어 가서 나무하려고 높은 산을 많이 탔습니다.
북한에서 일부러 등산을 하러 가지는 않죠.
그런데 남한에 오니까 사람들이 취미로 등산을 많이 가더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니 굳이 저 힘든 곳을 목적 없이 왜 올라가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웃음).
진행자 : 산에 오르는 재미도 있고, 멋진 풍경도 보고,
그 안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도 들고.
건강상의 이유로 찾는 분도 많고요.
허예지 :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이해됩니다.
제가 남북한 산을 모두 타본 결과
북한에서 올랐던 산들은 일단 흙과 바위가 많았고
머루랑 다래나무가 많았어요. 칡나무도요.
그런데 남한에서 등산을 하면서 칡이나 머루, 다래나무는 못 봤습니다.
진행자 : 저는 그 나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허예지 : 정말요(웃음)?
제가 북한에서 깊은 산을 다녀서 그런지 머루나 칡나무가 많았거든요.
진행자 :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나무나 식물을 많이 아시더라고요.
허예지 : 먹는 것들이니까 알아야 찾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한국은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등산길들이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올라가면서 힘들면 잡고 가라고 양쪽으로 기다랗게 밧줄이 있는데
북한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 빼고는 정돈이 안 되어 있어 길 잃어버리기 쉬웠어요.
그래서 꼭 길을 잘 찾는 친구랑 함께 떠나곤 했습니다.
한라산의 경우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화장실도 있어 좋았어요.
솔직히 화장실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워낙 산이 높기도 하니까 북한을 생각하면 당연히 상상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침에 화장실을 간 뒤 물을 안 마셨습니다(웃음).
한라산 오르면서 색다른 풍경도 봤는데요.
바로 화장실 헬기입니다(웃음).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다 보니까 분뇨가 차게 되면 헬기를 이용해 수거하더라고요.
그렇게 저희는 점심시간을 맞이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등산은 꼬부랑 국수(라면)랑 김밥이 환상의 짝꿍이잖아요.
아주 꿀맛이었습니다. 집에서 먹을 때와 완전히 다른 맛이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 김밥은 소학교 운동회나 나들이 갈 때 만들어주는데
저는 그 김밥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잖아요.
참치, 치즈, 불고기, 그 외에 다양한 야채들이 들어가 김밥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데
북한은 정말 단순한 재료를 넣어요. 재료가 없기도 하고.
저희 어머니는 시금치랑 계란, 까나리, 이렇게 단순하게 해주셨어요.
그런데도 그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났어요.
지금도 가끔 엄마한테 북한에서 먹던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이미 맛있는 김밥을 많이 먹어서인지, 배에 기름에 차서 그런지(웃음).
진행자 : 한라산의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먹는 김밥,
도심에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을 텐데요.
배도 채웠겠다,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갔나요?
허예지 : 네, 무사히 올라갔습니다.
솔직히 중간에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발목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점심도 먹고, 3번을 쉬어 가니 정상에 도착하게 되더라고요.
올라가니까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산이 높다 보니까 온도가 낮아 살짝 추웠어요.
땀이 싹 식으면서 그 절경을 보노라면 그냥 넋을 놓게 됩니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도 백록담을 많이 못 본다고 하던데
저희가 올라갔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백록담 물이 보였습니다. 운이 좋았죠.
약 180만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바다를 뚫고 올라 왔고,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자 높은 온도 차를 보이면서
강력한 수증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쌓이게 되면서 용암지와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 약 2만5천년 전 한라산 정상에서 마그마가 다시 흘러나오면서
지금의 백록담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라산 정상에 움푹 파인 큰 구덩이가 자리하게 되었죠.
한라산 정상에 흰 사슴이 많이 노닐었다 하여 백록담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백록담의 매력은 다양한데요.
제가 본 풍경은 흰 구름이 두둥실 백록담 주변을 감싸 안으면서
백록담 담수가 푸른 하늘을 비추어 주는데
마치 거울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았어요.
정상에서 30분 넘게 풍경을 보다 저희는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진행자 : 그런 색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거죠(웃음).
허예지 : 네, 그때 당시는 ‘다시는 한라산 안 올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드니까 안 가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힘들지만 또 가고 싶은 곳 중에 한 곳이 한라산입니다.
한라산 등반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죠.
나중에 노래 가사처럼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산행하고 싶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진행자 : 이번 여행이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
산행도 함께 하고, 숙식을 함께 하면서 생각을 좀 나눌 수 있었나요?
허예지 : 생각도 많이 나눴고,
남한 학생들과 바닷가를 걸으면서 이런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누리고 있는 것들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북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쉽고
하루빨리 북한도 개방이 되어서
남북한이 서로 오고 가면서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진행자 : 그러면 정말 백두에서 한라까지 산행에 나서는 분들 많을 겁니다(웃음).
여름이라 더욱 푸르를 제주도 한라산 함께 여행했고요.
다음은 어디로 떠나볼까요?
허예지 : 경기도 양평입니다.
진행자 : 양평은 서울과 가까워서 수도권에서 주말에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한데요.
양평 여행도 기대해 주시고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오늘은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하죠.
진행자, 허예지 : 청취자 여러분,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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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윤하정, 에디터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