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디오를 들으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허예지 씨와 이 시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예지 씨는 황해남도 해주를 벗어나 2010년 남한에 정착한 뒤
현재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오늘은 어디로 떠날지, 예지 씨 직접 만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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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안녕하세요. 오늘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허예지 : 오늘은 베트남 호찌민으로 떠나보려고 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청취자 여러분에게 다른 국가보다는 익숙할 듯해요.
저도 베트남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야기를 북한에 있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들만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진행자 : 그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탈북 청년들이 베트남을 많이 찾더라고요.
허예지 : 맞습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짧게나마 베트남에 대한 역사를 짚고 가려고 합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공산주의 국가로
한반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베트남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북이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남베트남은 민주진영으로 대치되어 있었고
20여 년의 통일 전쟁을 통해 공산화되었죠.
베트남 전쟁 당시 북, 남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이념적 맞대결은
마치 1950년대 한국전쟁과 비슷한데요.
결과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북베트남이 사실상 승리하며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북한과는 다르다는 점인데요.
북한의 경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김 씨 일가의 독재 체제인데
베트남은 공산주의를 이어가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북한보다는 많이, 아주 많이 자유가 주어진 나라이죠.
중국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른 국가를 갈 수 있듯이
베트남 사람들도,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북한만 세계 여행을 통제하고, 고립된 나라이죠.
또 베트남에는 불교, 천주교 등 종교가 있지만
북한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요.
이뿐이겠습니까. 인터넷, 핸드폰 등 모든 것이 차단되어 있죠.
얘기를 하면서도 씁쓸하네요.
진행자 : 그러게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도
북한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게 안타깝죠.
예지 씨가 직접 확인한 베트남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베트남 호찌민에 간 거죠?
허예지 : 네,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인데요.
저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호찌민에 갔습니다.
분단 시절 남베트남의 수도였죠.
2018년 7월 말에 갔는데요.
제가 탈북 청년들을 위한 기숙사에서 지낸다고 했잖아요.
그 기숙사 친구들과 여행경비를 후원해 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베트남 호찌민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저희는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갔는데
한숨 자고 나니 호찌민에 도착해 있더라고요.
바로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N자립지원센터라는 곳으로 향했는데
어려운 베트남 사람들을 돕는 기독교 단체라고 합니다.
저희도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계란을 포장하고, 수제 비누도 만들었어요.
직접 전달해주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새로운 경험이었죠.
진행자 : 탈북 청년들이 남한에서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데,
북한에서는 ‘봉사’라는 개념, 그 뜻이 좀 다르다고 하죠?
허예지 : 네, 저는 봉사활동이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서비스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봉사원 동무, 또는 복무원 동무’로 불렀기 때문에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 북한에서 말하는 봉사를 다른 나라에서는 ‘서비스’라고 하는데요.
이 경우 대부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
우리가 흔히 봉사라고 할 때는 돈을 받지 않고, 또는 아주 적은 금액만 받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거죠.
허예지 : 저는 봉사라고 하면 그저 남을 돕는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양한 봉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종종 봉사를 합니다.
참, 이번 봉사활동 중간에 간식으로 반미라는 샌드위치를 주셨는데요.
베트남이 과거 프랑스 식민지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문화와 베트남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음식도 마찬가지라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겉이 딱딱한 바게트 빵에
속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소스와 고수 치즈, 불고기 등을 넣더군요.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봉사를 마치고 숙소로 갔습니다. 집주인이 한국분이었어요.
숙소가 깔끔해서 좋았고,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절반은 호텔 같은 느낌, 절반은 가정집 같은 분위기라서 좋았고요.
짐을 풀고 숙소 주변도 구경하고, 피로한 몸도 풀 겸 마사지도 받았습니다.
진행자 :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할 때면 대부분 마사지를 받는데요.
청취자 여러분이 마사지라는 표현을 바로 이해하실까요?
허예지 : 글쎄요, 일단 북한 말로는 마사지를 무엇으로 표현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네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마사지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아마도 제 생각엔 ‘문지르기’라고 말하는 게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진행자 : 안마도 비슷한 의미일 것 같아요.
허예지 : 네. 저도 북한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고향에서 사용하던 언어가 생각이 안 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이런 부분들이 저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을 때도 있죠.
나는 과연 어느 쪽 사람인가?
한국에 대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북한에 대해서도 20살까지만 알고 있으니,
남과 북 경계선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기분이 듭니다.
문지르기로 다시 넘어와서 말하자면
저는 마사지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긴장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일단 저희는 6명이 나란히 한 방에 누었는데요.
여성분이 문지르기를 해주었습니다.
옷은 다 벗는 게 아니라, 마사지용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문지르기를 받을 때는 반바지만 입고,
위에는 속옷 없이 수건으로만 가리고 마사지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진행자 : 저도 좀 불편해하는 편인데,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코를 곯게 되죠(웃음).
허예지 : 맞아요(웃음).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만지는 게 이상했는데,
지압으로 피로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니까 생각 이상으로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했던 제가, 여행 내내 문지르기를 받으러 갔습니다.
가격이 생각보다 싼 편이라 부담 없이 문지르기를 받았어요.
달러로 계산하면 42$ 정도 될 거 같네요.
진행자 : 그 정도면 전신, 또는 상체를 받은 것 같고요.
10달러 정도에 발만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경락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여행 중에도 좋고,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면 어깨가 아프니까 종종 이용하죠.
허예지 : 네, 그 문지르기가 혈액 순환이나 장 운동도 돕는지
여행 내내 문지르기를 하고 나면 배가 고프더라고요.
진행자 : 베트남 먹을 거리가 인기가 많아서 할 얘기가 많을 텐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들어 볼까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오늘은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하죠.
진행자, 허예지 : 청취자 여러분,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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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윤하정, 에디터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