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들과 설레는 대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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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디오를 들으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허예지 씨와 이 시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예지 씨는 황해남도 해주를 벗어나 2010년 남한에 정착한 뒤

현재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오늘은 어디로 떠날지, 예지 씨 직접 만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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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할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허예지 : 대만으로 떠나보려고 합니다.

대만은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푸젠성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로

중국 본토에서 약 150km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함께 떠난 친구들은 모두 북한 청년들이어서

동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 같아 여행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8명이 함께 했으니 얼마나 시끌벅적했겠어요(웃음).

저희는 2019년 1월, 4박 5일 일정으로 떠났습니다.

한국은 엄청 추운 날씨였는데, 대만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이 안 추웠습니다.

진행자 : 대만이 아열대기후라서 겨울에도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죠.

허예지 : 네, 지도에서 찾아보니까 대만이 한국보다 훨씬 아래쪽에 있더라고요.

여행 떠나기 전날은 늘 너무 설렙니다.

북한을 떠날 때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 가는 것’이어서 그런지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늘 특별함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아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여행에서 입을 옷을 캐리어(여행 가방)에 넣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리며 그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면 정말 즐겁습니다.

여행 당일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모두 와 있더라고요.

저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친구들은 더 빨리 왔던 있죠.

그래서 ‘왜 이리 일찍들 왔어?’라고 물으니

그들이 합창을 하듯이 ‘설레서 잠이 안 왔다, 어머 나도 나도’라고 손뼉을 쳤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를 마치고 12시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2시 5분 정도 되니까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하더라고요.

짐을 다 찾고 출구 쪽으로 나오니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 유심을 팔더라고요.

줄을 서서 구매하고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철도를 탔습니다.

다행히도 저만 빼고 모두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이라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진행자 :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로 이동하는 거죠?

그런데 많은 탈북민이 중국어를 꽤 잘하시더라고요.

허예지 : 맞아요. 탈북하는 과정에서 중국 체류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여유가 되는 친구들은 학교를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또 어떤 친구들은 집에 중국어 선생님이 오셨고요.

제 친구들은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학교를 다닌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중국에 한 주 정도 머물렀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만도 중국어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대만 언어가 따로 있더라고요.

중국어로 물어보면 대답을 잘 안 해줘서

먼저 ‘한국 사람인데’라는 말을 하고 이것저것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타이페이 역 근처 호텔을 잡았는데,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짐을 맡기고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진행자 : 전날 이용한 고객들이 보통 12시쯤 나가니까

청소하고 정리하면 오후 3시쯤부터 체크인, 그 방을 이용할 수 있는 거죠.

허예지 : 네, 타이베이 역 근처인 데다 호텔 주변에 백화점도 있고 볼거리가 많아서

시간 때우기 좋더라고요.

빈둥빈둥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대만 대표음식 중 하나인

샤오롱빠우랑 우육면을 시켜 먹었습니다.

우육면은 소고기 육수에 면과 고기를 말아먹는 대만의 대표 면 요리입니다.

고기가 정말 부들부들했어요.

한국에 와서 그 맛을 다시 맛보고 싶어 음식점에 갔는데, 대만이랑 맛이 다르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저는 샤오롱빠우를 한국 만두처럼 생각하고 한입에 넣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다 까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웃음).

‘음식마다 먹는 방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행자 : 한국 만두도 한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난리날 텐데요(웃음).

중국식 만두는 안에 즙이 있어서 더 뜨겁긴 하죠.

허예지 : 맞아요. 그 이후로는 중국 만두도 그렇고, 한국 만두 먹을 때도

끝에만 살짝 잘라 먹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중국이랑 대만은 확실히 만두가 맛있는 것 같아요.

샤오롱빠우는 대나무 찜기에 넣어서 찌는데

한국 만두처럼 만두피에 돼지고기를 넣어서 만듭니다.

안에는 돼지고기 육즙이 차 있는데

만두를 조금 젓가락으로 찢으면 그 안에 뜨거운 국물이 흘러나옵니다.

그걸 호록 마신 다음 샤오롱빠우 소스를 올려서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샤오롱빠우를 처음 먹다 보니 이 방법을 몰랐던 겁니다.

입천장은 다 까졌지만,

단백하면서 쫀득쫀득한 식감을 가진 샤오롱빠우를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맛나는 음식과 반짝반짝 빛나는 대만의 시내를 보니

입천장이 찢어진 아픔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첫째 날 타이베이 시내와 대표 먹거리를 즐긴 저희 일행은

둘째 날 국립중정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중정기념관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입니다.

1980년 4월 5일 개관했는데,

2007년 3월에 대만민주기념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마잉주 총통 시대에 들어서 다시 원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파란 기와를 머리에 얹은 높이 70m의 웅장한 중전기념관으로 오르는 계단은 89개인데요.

89는 장제스 서거 당시 나이를 뜻한다고 하네요.

계단을 올라가면 내부 중앙에 앉아 있는 장제스 동상이 보이는데,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대만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위병들의 교대식 때문이기도 한 듯해요.

한국 덕수궁에도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외국인이 많이 찾는 것처럼 말이죠.

저희도 교대식을 보기 위해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는데요.

그러고 보니 북한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네요. 금수산기념궁전이 있죠.

저는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서만 구경했습니다.

궁전 밖을 구경하는 것도 신분증을 모두 검사하고 출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이었습니다.

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데,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무섭더라고요.

진행자 : 지난 9월 초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이 장제스 동상이 철거될 예정이라고 해요.

장제스는 오늘날 대만의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와

대만섬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억압한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서

어떤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동상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복원되기도 하나 봅니다.

허예지 : 그래서 기념관 이름도 자꾸 바뀌나 봅니다.

북한도 민주주의 정권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의 생활에 득이 되는 공약을 들고 나오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한편으로는 북한 정권이 바뀌면 그 수많은 김일성 동상이며,

김 씨 가문만을 위해 만든 궁전, 초상화는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도 고민일 듯합니다.

진행자 :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와 밀접한 사회와도 비교를 하게 되죠.

4박 5일 일정이니까 대만을 절반 정도 여행했는데요.

남은 여행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지, 다음 시간에 자세히 만나 보죠.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오늘은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할게요.

진행자, 허예지 : 청취자 여러분,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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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윤하정, 에디터: 오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