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을 여행하는 대만

타이베이의 Central Pictures New World Building
타이베이의 Central Pictures New World Building (Photo courtesy of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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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디오를 들으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허예지 씨와 이 시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예지 씨는 황해남도 해주를 벗어나 2010년 남한에 정착한 뒤

현재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지난 시간, 탈북 청년들과 함께 2019년 1월 4박5일 일정으로 떠난 대만을 소개했는데요.

남은 여행기 마저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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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여행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요?

허예지 : 셋째 날은 국립고궁박물관과 스린야시장에 갔습니다.

먼저 국립고궁박물관은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박물관 크기도 대단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중국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이동할 때

대륙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69만 점이나 돼서

3개월에 1번씩 전시하는 소장품을 교환하고,

그래서 모든 소장품을 관람하려면 8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중국영화는 많이 봤는데

특히 장개석과 모택동, 등소평을 다룬 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그 영화에서 장개석이 대만으로 떠나면서 문화 작품을 가져가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한데,

영화에서 옮겼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나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행자 : 그 시절에 이 많은 작품을 어떻게 옮겼을지 궁금하네요.

허예지 : 그러게요. 작품을 설명해주는 오디오가이드를 끼고 감상하다가

한국 사람이 안내해주는 단체관광 인파에 묻혀 설명을 더 자세히 들었습니다.

작품이 너무 많아 다 기억은 못하지만, 옥돌로 만든 작품이 많았습니다.

특히 옥으로 만든 병풍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파란 옥돌이 병풍 가운데 박혀 있는데 눈이 부셨습니다.

청대 보물인데 중일전쟁 때 왕정위가 일본 친황에게 선물했다가

나중에 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외에 옥배추도 꼭 봐야한다는데, 아쉽게도 그날 배추는 출장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5개월간 출장 전시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 옥배추가 유명한 이유는 옥을 깎아 배추의 색깔과 모양을 구현했고,

그 아름다움이 옥에서만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요.

진행자 : 무슨 배추가 유물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와, 정말 배추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옥으로 구현했을까 신기하더라고요.

허예지 : 저도 직접 못 봐서 아쉬워요.

배추에 얽힌 이야기는 다양한데, 그날 제가 들은 이야기는

예전에 금비라는 조금 못생긴 언니와 진비라는 어여쁘고 똑똑한 자매가 있었대요.

두 자매가 같이 후궁으로 들어갈 때

욕심 많은 언니인 금비가 궁에 가지고 온 혼례품이 바로 이 옥배추라고 합니다.

여하튼 너무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1층부터 3층까지 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3시간 넘게 그 안에 있었으니 말이죠.

진행자 : 저는 다른 박물관이지만 그 안에서 밥까지 먹고 한나절 있었던 적도 있어요.

유명한 작품이 너무 많고,

요즘 세계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오디오가이드라고

개인이 귀에 꽂고 들을 수 있는 작품 설명이 한국어로도 제공되니까

작품 보고 설명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허예지 : 네, 대만 고궁박물관에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더라고요.

그것도 신기했어요.

진행자 :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남북한만 사용하는데

북한에서는 해외여행이 불가능하고,

결국 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해외여행을 많이 간다는 얘기일까요.

물론 한국 대기업에서 관련 사업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허예지 : 가는 곳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고,

현지에서 여행지를 안내하는 한국인도 많은 걸 보면

남한에서 해외여행을 정말 많이 가기는 하나 봅니다.

열심히 작품을 구경한 뒤 저희는 야시장을 가기 위해 나왔습니다.

많이 걸었으니 배도 고프겠다 발걸음이 빨라지더라고요.

시장에 도착했더니 맛있는 음식 냄새가 온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다양한 꼬치와 국물 요리, 볶음 요리가 있더라고요.

배를 채우고 호텔에서 먹을 음식까지 포장했습니다.

호텔에서 그 음식을 먹으면서 사사끼를 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북한에서는 사사끼를 거의 매일 치다시피 했는데 한국에서는 모르는 게임이니까

북한 사람들끼리 일부러 모여 사사끼를 치곤 합니다.

그날도 맛있는 음식과 맥주, 그리고 고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밤늦도록 사사끼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넷째 날은 지우펀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났습니다.

진행자 : 여행 가서는 술 마시고 늦게 자도 또 일찍 일어나요.

일정이 짧다 보니까 우리 몸이 알아서 최적화되는 것 같아요.

허예지 : 맞아요.

지우펀은 숙소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 이동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혼자 갔으면 걱정되는 거리였지만, 친구들이 8명이나 되어 든든하더군요.

지우펀은 타이완의 옛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1920~1930년대 금광 채굴로 번성을 누리던 도시였으나

광산이 폐광된 이후 한적한 시골 마을로 쇠락했다고 합니다.

그후 198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비정성시’ 촬영지로

다시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더 유명해졌답니다.

‘지우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오래 전 아홉 농가만 살고 있어 지우후라고 불리던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두메산골이다 보니 멀리서 장을 봐야 했는데

필요한 물품을 사 온 뒤 공평하게 나누었고,

이때 9등분을 한다고 해서 지우펀으로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은 대만에서 제일 인기 있는 마을이 되었으니

역시 세상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요.

집과 집들 사이에 길이 있는데 너무 좁아 앞집에서 이야기 하면 다 들릴 정도입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비탈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걸으면

골목마다 묻어나는 낭만적인 정취와 홍등이 빛나는 풍경은

정말 사진에 못 담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시간 여행을 온 느낌도 들고, 일본의 풍경을 보는 기분도 듭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앞서 얘기한 애니메이션 때문인지, 일본 사람이 많았어요.

진행자 : 예전부터 세계 인기 여행지에 가면 일본인 관광객이 많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중국인도 많죠.

아마 그들은 어딜 가나 한국인이 많다고 하겠죠(웃음)?

허예지 : 그러겠네요(웃음).

저희는 홍등을 보기 위해 저녁까지 기다렸습니다.

길도 좁은데 사람이 많으니까 너무 복잡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풍경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슬슬 어두워지니 홍등이 켜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마을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만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저희는 다시 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깝기도 하고, 아쉽게 놓친 옥배추도 볼 겸 다시 대만에 가려고 했지만

바쁜 일상과 코로나 상황으로 여태 못 가고 있네요.

비행기에 2시간만 몸을 실어도 이렇게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데

코로나 상황이 끝나도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는 고향 분들을 생각하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진행자 : 그러게요. 예지 씨가 전해주는 이 색다른 여행기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음주에는 어디로 떠나볼까요?

허예지 : 캐나다로 떠나 볼까 합니다.

진행자 : 멀리 가네요. 캐나다 여행도 기대해 주시고요.

<라디오로 떠나는 여행> 오늘은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하죠.

진행자, 허예지 : 청취자 여러분,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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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윤하정, 에디터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