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매년 12월 1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의 날'입니다. 제72차 세계인권의 날을 앞두고 유럽 내 사회주의국가였던 폴란드 즉 뽈스까 출신 북한 인권운동가로, 16년째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을 만나 봅니다. 대담에 양희정 기자입니다.
기자: 호사냑 부국장님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NKHR)에서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가족이 있는 폴란드를 떠나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헌신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호사냑 부국장: 저는 동유럽과 중부유럽에 공산국가가 있던 시절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바르샤바대학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에 있을 당시 폴란드는 이미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일성대학에서 수학했던 교수님들조차 북한 문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1990년대 중반 인터넷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의 증언이 소개된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 웹사이트를 찾아냈습니다. 과거 나치 독일이 운용하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던 폴란드인으로서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후 2004년 2월 폴란드의 헬싱키인권재단에서 인권운동가로서의 훈련을 마친 저는 한국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이 단체에 요청해 폴란드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인권행사에서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이 행사가 끝날 무렵 북한인권시민연합 창립자인 고 윤현 이사장은 제게 한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즉시 수락해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기자: 북한 인권 운동을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전환기 정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도 받으셨는데요.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이룬 동유럽∙중부유럽의 '전환기 정의'가 북한 상황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요?
호사냑 부국장: 제가 한국의 서강대학교에서 '중부유럽의 전환기 정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독일, 체코, 폴란드 등에서의 전환기 정의 연구는 2013년 저희가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조사위원회(COI)가 설치되도록 옹호하는 활동을 하는데 큰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북한 인권 침해에 관련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 활동을 벌이는 등 북한 인권 유린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치를 어떤 식으로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북한 인권유린 피해자를 위한 진실 규명, 정의 구현, 피해 보상과 치유, 재발 방지 보장 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임추궁을 통한 (전환적 정의 구현)의 주요 요소들이지요. 2014년 발간된 유엔 북한 인권 조사위원회의 역사적 보고서와 책임추궁을 위한 전문가단 보고서 등은 국제사회가 향후 (북한이 민주국가로 전환될 경우)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북한 인권 유린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기반을 마련한 첫 조치였다고 봅니다. 미래에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을 원하는지는 그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현재 북한에는 이러한 문제를 다룰 어떤 시민사회도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에 정착한 북한 인권 유린 피해자나 시민단체 등이 북한 인권 유린을 증언∙조사∙기록하면서 북한 주민이 원하는 전환기 정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기자: 올해 초부터 북한은 코로나19를 이유로 극심한 국경통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외부세계로부터 북한의 고립이 더욱 심화되었는데요.
호사냑 부국장: 코로나19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철저한 국경통제로 북한 내부 상황 파악이나 대북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국경 너머 중국으로부터 혹은 장마당에서 생활 필수품을 구할 수도, 북한을 탈출할 수도 없습니다. 저희가 해마다 평균 100여 명의 탈북민을 구출했는데, 올해는 단 세 명을 구출하는 데 그쳤습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 뿐 아니라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는 코로나19나 보건 관련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오히려 북한에 정보를 전달하려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복사판(mirror government)처럼 코로나19의 민감한(fragile) 상황에서 북한 주민이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국 여당에서는 전단살포금지 등 일부 법률개정이 국경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요?
호사냑 부국장: 한국 정부의 법률 개정은 제3국을 통한 활동마저 처벌할 우려가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국경지역에서 (전단과 인쇄물이나 보조기억장치와 같은) 물품 이외에 인도적 물품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중 국경지대에서는 월경한 북한주민들이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의약품을 지원하거나 탈북을 돕기도 하죠. 통일부의 인권단체 사무감사 등을 포함해 한국 정부가 언론∙표현∙집회의 자유 등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사회 권리를 하나씩 침해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악화를 이러한 단체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국제사회의 전문가나 외교관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를 비웃습니다(being laughed at). 수년간 지속되어 온 대북전단 살포활동이 남북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단지 희생양으로 삼고 있습니다. 매우 우려됩니다. 앞선 다른 진보 정권에서도 대북 정보와 지원, 탈북자 지원과 같은 인권단체의 활동을 현 정부만큼 억압한 적은 없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유린 책임자 처벌 문제 등에 대한 폴란드 출신 북한 인권운동가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의 견해를 들어 봤습니다. 대담에 양희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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