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 통일부는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에 대한 과다지출로, 북한 주민들의 민생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난과 민생난을 탈북민들에게서 직접 들어봤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그 친구들이 지금 20대 후반일 텐데, 그때보다 더 많은 화를 품고 살아가고 있겠죠.”
지난 2011년, 19살의 나이에 탈북한 한송미 씨는 더욱 강해지는 북한 당국의 통제에, 남아있을 친구들의 삶을 걱정했습니다.
한국 통일부가 6일 탈북민 대상 심층 조사 결과를 분석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를 공개하며, 북한 주민들의 민생이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들은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당국의 사회 감시 및 통제가 더욱 강화됐다고 답했습니다.
거주지에서 감시 받았다거나, 가택 수색을 당한 경험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한 씨는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와 친구들도 당국의 통제가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한송미 씨 : (아이들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을) 단속하니까, 자기들끼리 이제 "이런 것도 못 하게 해"하는 말은 했지만, 어른들 앞에서는 함부로 못 했어요. 어른들이 항상 "조심해라, 너 때문에 부모도 잡혀간다"라고 하니까.
한 씨는 또 “검정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어야 했는데, 평양 사람 중 한국식 청바지를 입거나 귀걸이를 하고 있다가 단속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배급망 붕괴로 식량 조달의 시장 의존도 일상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붕괴한 배급제는 회복되지 않아 2016~2020년 탈북한 이들의 72.2%는 식량 배급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공식 직장에서 노임과 식량배급 모두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2000년 이전 탈북민도 33.5%로 꽤 높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상승해 2016~2020년 사이 탈북민은 50.3%를 기록했습니다.
계획 경제가 무너진 상황.
김정은 집권 이후 시장에서 식량을 조달한 비율은 70.5%에 달합니다.
이처럼 북한 내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져 여성의 가정 내 위상이 다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남편을 하찮거나 쓸모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부르는 ‘멍멍개’, ‘낮전등’이라는 단어도 생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송미 씨 : 보통 대부분 여성들이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남편들은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에서 배급도 안주고 돈도 잘 안 주니까, 그 대부터 여성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던 것 같아요. 여성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했으니까.
권력층에 의한 수탈이 만연한 것도 주민들의 경제난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월 수익의 30% 이상을 수탈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1.4%, 2016~2020년 기간에는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응답률은 54.4%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014년 말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이현승 씨는 이날 RFA에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뇌물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습니다.
이현승 씨 : 경제적 자유가 없기 때문에 경제생활을 하는 분들은 국가의 보호 체제상 법의 보호를 못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뇌물을 주고 그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서 (처벌을 피해) 경제 생활을 합니다.
이런 가운데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상황에서 전력이 산업이나 공공 목적으로 우선 사용 되면서, 가정용 전력 수급은 훨씬 더 열악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일반 가정용 전력 공급은 하루 약 4.3시간으로, 2000년대 이전 수준인 5.7시간보다도 낮아졌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1998년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김수경 씨는 이날 RFA와의 통화에서 가정용 전력 공급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해 “어떻게 내가 탈북하기 전보다 지금 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는 지, 상상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수경 씨 : 제가 북한에 살 때는 전기가 들어오는 날은 명절 같았어요. 전기가 들어오면 온 아파트가 함성을 질렀습니다. 불 자체가 반가울 뿐이었어요. 하루에 한 번도 안 들어올 때도 많았고요. (전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밧데리 충전이었습니다. 알칼리 용액 밧데리를 충전해서 조명용으로 쓰는 거예요.
가정용 난방 역시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구해와 해결하고 있는 비율이 69.7%로 전기, 석탄, 석유 등 난방 연료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통일부가 탈북민 6300여 명을 2013~2022년, 10년 동안 1 대 1로 설문 조사한 결과입니다.
탈북민 면접조사 결과는 ‘3급 비밀’로 분류돼 그동안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가, 북한의 실상을 알린다는 취지로 이날 최초 공개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