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삼지연에 체육훈련을 갔던 고급중학교 졸업생이 포함된 스케이트 선수 20명이 3년~5년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훈련 중간 휴식시간에 오락회를 하며 끝말잇기 놀이를 하다 남한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북한 내부소식 김지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양강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6일 “지난 3일 오후, 혜산시 광장에서 고급중학교 졸업생 등 청소년 대상 공개폭로모임이 있었다”면서 “삼지연시에 갔던 체육선수들이 훈련도중에 오락회를 하다가 남조선 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2월 한 달간 양강도에서는 도내의 청소년 체육선수들을 모집해 삼지연시에서 동계훈련을 벌였다”면서 “도안의 고급중학교마다 전도유망한 체육선수들과 함께 도, 시, 군 체육단 선수들이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스케이트 종목 선수들로 알려진 이들 중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은 양강도 체육단 선수로 지명돼 입단을 앞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식통은 또 “도 안전국과 검찰소의 주최로 진행된 이번 공개폭로모임은 혜산시의 각급 공장, 기업소, 사회단체,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광장에서 열렸다”면서 “훈련도중 오락회에서 말꼬리 잇기를 하다가 남조선 말이 튀어나온 것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공개폭로모임에서는 오락회에 참가한 20명 전원에게 교화형이라는 법적 처벌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주민들은 앞길이 구만리같은 체육선수들이 말 한마디 때문에 교화소에 보내진다는 것은 너무한 처벌이라고 비난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공개폭로모임 대상이 된 체육선수들은 대부분 힘있는 간부집 자식들”이라면서 “하지만 이 문제가 중앙에까지 제기되면서 가차 없는 처벌 지시가 내려지고 해당 간부들은 해임 철직되고 가족은 산간 오지인 삼수로 추방결정이 내려졌다”고 덧붙였습니다.
개마고원 끝자락에 위치한 삼수는 혜산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산간지역입니다.
이와 관련해 양강도의 또 다른 주민소식통도 5일 “이틀전(3일) 혜산시 광장에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이동훈련을 갔던 체육선수들에 대한 공개폭로모임이 있었다”면서 “폭로대상 전원이 교화형에 처해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도안의 시, 군 체육단 선수들은 겨울철 동계체육훈련을 위해 삼지연시에 이동훈련을 갔었다”면서 “하지만 누군가 훈련도중에 있은 오락회 영상을 손전화로 찍었고, 한 여학생이 손전화기에 저장된 이 동영상을 보다가 불시단속에 걸려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여학생이 현장에서 동영상을 직접 찍었는지, 다른 사람이 동영상을 찍어 보내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여학생의 손전화에서 문제의 동영상이 발견돼 이번 폭로모임의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식통은 “이 여학생은 집에서 오락회 동영상을 보던 중 불시검열에 나선 단속원에게 들켰다”면서 “여학생의 손전화를 검열하던 안전원이 오락회 동영상을 문제 삼았고 이를 무마하려던 도당 간부들까지 중앙당에 신고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오락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올해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과 25살 미만의 체육선수들(을 포함해 모두) 20명”이라면서 “도내에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지만 단속한 안전원이 이를 무마하려는 사실까지 중앙당에 신고하며 당적인 시범사건으로 번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공개폭로모임 현장에 있었던 소식통은 “공개폭로모임에서 선수들에게 3년에서 5년 이하의 교화 판결이 내려지자 주민들은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오락회에 참가했을 뿐 남조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선수들까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처벌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현재 우리(북한)내부에 있는 남조선 영화와 드라마는 몇 백, 몇 천개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면서 “당에서 남한 말을 ‘괴뢰’말이라며 강하게 단속하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비밀에 붙이는데 근절할 방법이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소식통은 구체적으로 체육선수들이 끝말잇기를 하던 중 어떤 남한말을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오빠’나 ‘자기야’ 등의 남한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앞서 지난 1월 북한 당국은 북한 내에서 '남한 말투'가 급속히 퍼지자 남한말을 쓰면 6년 이상의 징역형, 남한 말투를 가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 ( 관련기사)
3년 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으로 다스리려 한 북한당국의 강경한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편, 2021년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를 비롯해 남편을 ‘오빠’, 남자친구를 ‘자기야’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을 강하게 단속한 바 있습니다.
기자 김지은,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