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물망초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저지른 학살사건과 관련한 두 번째 진실규명신청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천 학살사건을 포함한 7건입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8살이었던 신 모 씨는 경기도 이천군에 북한군 중위가 지형정찰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들어온 날을 기억합니다.
신 모 씨의 아버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북한군 중위를 잡아 감금했지만 북한군 중위는 탈출했고 신 모 씨 아버지와 주민들은 이후 마을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보복 학살을 당했습니다.
신 모 씨 (북한군 민간인 피해자 가족): (북한군) 중위가 지형정찰을 와서 자전거 타고 가니까 (우리 아버지가) 창고에다 가둬놨어요. 새벽에 도망가서 북한군들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동네가 쑥대밭이 되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역사라고. 군번 없는 용사라고. 밀가루 한포대, 한쪽도 얻어먹은 사실이 없다고 정부에서. 우리 그렇게 살았어요.
김 모 씨 삼촌은 한국전쟁 때 지역 청년들과 반공 청년단을 결성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북한군이 퇴각하자 김 모 씨 삼촌과 지역 청년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싸웠고 이 과정에서 김 모 씨 삼촌은 사망했습니다.
김 모 씨 (북한군 민간인 피해자 가족):그 마을에 있는 청년들하고 같이 깃발을 흔들고 태극기를 흔들고 지나가는 괴뢰군들 보고 욕도 하다가 괴뢰군들이 때리고 싸움도 일어나고 그런 모양이더라고요. 삼촌은 끝까지 뛰어서 마을로 들어왔는데 마을 어귀에서 총을 맞고 팔과 가슴을 맞은 모양이더라고요.
다만 신 모 씨 아버지와 김 모 씨 삼촌은 아직도 북한군에 의한 피해자로 한국 정부에 인정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 물망초는 1일 이처럼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민간인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7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의 진실규명을 요청했습니다.

지난달 18일 10건의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서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제출한 뒤 두 번째입니다.
지난 6월부터 물망초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를 이끌고 있는 차동길 센터장은 북한군에 의한 피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마치 죄수가 된 것처럼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며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차동길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 센터장: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에요. 진실을 규명해야 된다는 거죠. 그분(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명예(회복) 부분도 있고 진실이 사회적으로 왜곡되거나 해서 마치 자기(피해자)들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사회 풍토, 이것은 역사 왜곡과도 맞물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죠.
차 센터장은 현재 피해사례 150여 건이 물망초 신고센터에 접수된 상태라며 자료를 구비해 9월 29일, 10월 20일 신청서를 추가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오면 90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달 물망초가 제출한 사건 10건의 조사 개시 여부에 대한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에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기자 한도형,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