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오는 3월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5주년을 맞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의지가 적다는 비판이 한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법이 제정 5주년을 앞두고 있는데도 법 이행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북한인권재단이 여전히 출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 10조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인권대화와 대북 인도적지원 등을 위한 연구 및 정책 개발을 위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합니다.
이에 한국 정부가 해당 법을 정상적으로 이행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한국의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실이 자유아시아방송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이 취임한 지난해 7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국회에 재단 이사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한 차례도 보낸 바가 없습니다. 지난해 5월 21대 국회가 새롭게 출범했음에도 재단 이사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아직까지 보내지 않은 겁니다. 통일부가 마지막 공문을 보낸 시점은 지난해 3월입니다.
지성호 의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인권법을 책임있게 이행해야 하는 통일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 전반적으로 현재 한국 통일부가 (북한인권법의 정상적 이행에 대한) 의지가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없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통일부가 의지가 없고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통일부의 경우 재단 이사 12명 가운데 2명을 추천해야 함에도 현재까지 이사 추천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재단 이사 추천 여부는) 인선과 관련된 문제라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이 취임한 이후 북한인권법에 따라 통일부 장관을 자문해야 하는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도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이 취임한 이후 국회에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들을 추천해달라는 요청 공문을 한 차례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국회에 요청 공문을 보낸 것은 지난해 3월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는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과 집행계획 수립,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운영에 관한 사항, 북한인권분야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 등을 통일부 장관에 자문하는 기구입니다. 자문위는 10명 이내의 국회 추천 인사로 구성되며 1기의 경우 2년 간의 임기가 지난 2019년 1월 종료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자문위는 모두 공석인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통일부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 2019년 1기 자문위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 국회에 수차례 추천 요청을 한 바 있다”며 “(국회 차원의) 추천 지연으로 2기 자문위가 구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 현재 상황은 명백하게 불법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 통일부의 직무유기도 작년에 이어 2년째이고요. 상황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통일부가 이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월 이후 자문위원회가 공석인 상황에서 2020~2022년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과 2019, 2020년 북한인권증진집행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계획들의 경우 자문위원들의 자문을 거쳐야 합니다.
지난해 수립된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의 경우 ‘인권문제는 북한의 수용 가능성과 남북관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취지의 문구가 포함돼 당시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임기가 종료된 1기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으로서 지난해 기본계획과 집행계획 수립에 참여한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당시 관련 회의에서 기본계획과 증진계획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볼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 : 내용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크게 다루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임기 중인 것도 아니었고 잠시 (해당 계획안들에 대해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자격으로 내용을 점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용을 심도있게 보지 못했던 거죠. 이와 관련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한국 통일부가 이미 임기가 종료된 자문위원들을 거수기 역할로 활용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일부가 임기가 종료된 자문위원들의 자문을 구하는 절차도 매끄럽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기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이었던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은 “임기가 종료된 이후 추가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취지의 통보를 받았다”며 “후임 인선이 완료될때까지 임기가 끝난 위원들이 자문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와 관련해 통일부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동의 요청도, 안내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희윤 대표도 “지난 2019년 12월경 새로운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과 집행계획에 한정해서만 자문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관련 규정이 시행되기 전에 이와 관련된 안내나 공지는 받은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 운영규정’을 마련해 시행했고 해당 규정의 임기 관련 조항의 경우 모든 자문위원들에게 구두로 설명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통일부 산하에 설치된 북한인권기록센터가 대외용 보고서를 전혀 생산한 바가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지성호 의원실에 따르면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지난 2017년부터 지난 1월까지 북한인권과 관련한 사안을 수집, 기록한 총 1964건의 문건을 법무부에 이관했지만 대외 공개용 보고서는 지금까지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지성호 의원은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설립 이후 민간에서도 발간하고 있는 북한인권백서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며 “북한인권법 이행을 위한 통일부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외교부도 여전히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여상 NKDB소장은 “북한인권법으로 인해 통일부, 법무부 공무원들의 직제만 늘어났고 실질적인 인권개선의 노력보다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며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협력과 지지를 받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윤 소장은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 민간과 협력하는 기본 입장으로 돌아와 재단 설립, 북한인권대사 임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