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특집] 참전용사 사진작가 라미 현 “한국 의무, 북에 자유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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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직접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 액자에 담고 이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국의 사진 작가가 있습니다. 라미 현 작가인데요. 현 작가는 최근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이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사진 액자를 선물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 작가는 해외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지켜냄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은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서울의 목용재 기자가 라미 현 작가를 인터뷰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도서관 정면 외벽 게시판인 ‘꿈새김판’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의 흑백사진들이 걸려 서울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131명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게시해 놓은 겁니다.

꿈새김판에 게시된 흑백사진들은 ‘프로젝트 솔져’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작품들입니다.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진 작가 라미 현 씨는 서울시의 요청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제공했습니다.

라미 현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솔져는 군인 및 참전용사 등 제복을 입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이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서울시는 이 사업의 취지와 의미에 공감해 현 작가의 작품들을 요청한 겁니다.

라미 현 작가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참전용사들을 많은 시민들이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라미 현 작가:일단 취지가 좋았습니다. 선생님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분들한테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중요합니다. 서울시청 앞 도서관은 상징적인 곳이잖아요. 그래서 서울시 요청에 응하면 좋겠다. 그래서 참여하게 된 거죠.

프로젝트 솔져는 지난 2016년 시작됐습니다. 현 작가의 군복 사진전을 보러 온 미 해병대 출신 한국전쟁 참전용사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와의 만남이 그 계기였습니다. 현 작가는 빛나면서도 강한 눈빛을 지닌 노병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현 작가는 “당시 현역 군인 2000명 가량을 촬영했던 시점이었는데 스칼라토 씨 눈의 광채는 현역 군인들과는 많이 달랐다”며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는데 그 근원을 알고 싶었지만 대화할 시간이 없어 직접 찾아가 묻자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프로젝트 솔져 사업의 일환으로 현 작가는 해외의 참전용사들을 만나기 위해 현재까지 미국과 영국을 40차례 방문했고 한국을 방문한 해외 참전용사들도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12개국 15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을 만났습니다. 현 작가는 해외 참전용사들을 사진에 담는 과정을 통해 스칼라토 씨에게 보였던 자부심의 근원을 알아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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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현 작가(왼쪽)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촬영하고 있다. /라미 현 작가 제공

라미 현 작가:그분들은 한국전쟁 50여 년 후에 대한민국을 뉴스를 통해 본 겁니다. 현대자동차, BTS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말이죠. 아무것도 없었던 나라가 본인들이 뿌린 자유와 민주주의의 씨앗으로 지금의 한국이 된 거죠. 그래서 그분들의 자부심은 바로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 사람들인거죠. 제가 내린 결론은 그겁니다.

현 작가는 미국을 방문해 만난 참전용사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러 왔다”는 현 작가에게 웨버 예비역 대령은 “자유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진 빚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웨버 예비역 대령은 한국인들도 자유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라는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라미 현 작가:웨버 대령은 자유인으로서 그리고 직업군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자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한국인들도 자유를 전달받았기 때문에 똑같은 의무가 생긴 것이고 그 의무는 당신들의 동포가 있는 북한에 가서 자유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 작가는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신을 겁쟁이라고 자책하는 참전용사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이에 현 작가는 참전용사들이 영웅으로서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프로젝트 솔져의 또다른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라미 현 작가:많은 참전용사분들이 본인을 겁쟁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살아돌아왔기 때문에. 죽은 전우가 진짜 영웅이라는 거죠. 사진 안에는 내면의 모습이 반영됩니다. 선생님들께서 촬영할 때는 이걸 모르세요. 그런데 완성된 액자를 가져다 드리면 그때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또 우리가 얘기하는 영웅이 자신임을 느끼십니다.

프로젝트 솔져 사업은 ‘나는 군인이다(I'm a soldier)’, ‘우리는 군인이다(we are soldiers)’, ‘우리는 군인 가족이다(we are soldier's family)’, ‘한국전쟁 참전용사 찾기(Search for Korean War veterans)’ 등 크게 네가지 사업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군인이다’의 경우 군인 개인사진을, ‘우리는 군인이다’의 경우 군인들의 단체사진을 촬영합니다. ‘우리는 군인 가족이다’는 군인과 그 가족들의 단체사진을 촬영합니다. 현 작가는 현재 이 사업들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전쟁 참전용사 찾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미 현 작가:더 빨리 찾아뵐 걸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갈수록 늙으시니까요. 어떤 분은 계셨었는데 없대요. 또 어디가 편찮으시대요. 어떤 분은 돌아가셨다고 해요. 제가 좀 더 능력이 있었다면 더 빨리 뵐 수 있었을 텐데, 액자를 만들어서 다시 찾아 갔는데 돌아가셔서 전달 못한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런 게 항상 아쉽죠. 그런데 이 사업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 받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현 작가는 지난 2018년 탈북 국군포로인 유영복 씨의 모습도 사진에 담은 바 있습니다.

당시 현 작가는 한국 국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참석한 국군포로 유영복 씨의 증언을 듣고 많은 국군포로가 아직 북한에 잡혀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유 씨에게 많은 한국인들이 국군포로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가족사진 형식으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현 작가는 “당시 어린 아이부터 60대까지 40여 명을 섭외했다”며 “탈북 국군포로에게 한국인이면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유영복 선생님의 가족으로서 사진 찍을 사람들을 모집해 촬영했다”고 말했습니다.

현 작가는 다른 탈북 국군포로들의 모습도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그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촬영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라미 현 작가:연락을 드려 촬영하고 싶긴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신분 노출을 극도로 두려워하십니다. 그래서 유영복 선생님 통해서 연락 드려봤는데 다른 분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셨습니다.

현 작가는 천안함과 연평해전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선 군인 혹은 예비역들에게 한국 사회가 자부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현 작가는 촬영을 위해 이들을 만났을 때 위축돼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현 작가는 “북한의 도발에 맞선 군인, 예비역들의 자부심은 주변 환경에 따라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는데 천안함 사태의 경우 여전히 의혹이 많아 관련자들이 위축돼 있다”며 “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 작가는 한국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을 마주치면 “한국을 지켜줘서 감사하다”란 말 한마디만 건네달라는 겁니다.

라미 현 작가:한국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들이 많이 살아 계십니다. 지하철, 길거리, 버스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대한민국을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면 끝납니다. 그 분들한테는 그 말 한마디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니까요.

라미 현 작가는 오는 2022년까지 한국전쟁 참전국 22곳을 모두 방문해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모습을 담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