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위해 미국과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내 한국전쟁과 관련된 피해자들 및 그 가족들은 종전선언에 앞서 책임규명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26일 종전선언에 대해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음을 시사한 것과 관련, 한국 정부는 미국과 진지한 협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적극적인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에 대해 한국 내 한국전쟁 피해자들은 종전선언을 서두르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규명, 책임자 처벌 및 전쟁 납북자 문제 해결 등의 조치 없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27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한국 전쟁 중 벌어진 납치문제 등에 대해 남북이 의미있는 논의를 벌인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해당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종전선언은 6.25납북 피해자들을 두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모두 잊자는 얘기 아닙니까.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때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이 문제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북한이 일으킨 한국전쟁 중 한국의 민간인 약 9만여 명이 납북되면서 가족들이 생이별을 겪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국군포로도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자력으로 탈북해 귀환한 국군포로는 80명에 이릅니다. 2011년 이후부터는 국군포로의 고령화, 북한 당국의 탈북 감시 강화 등으로 귀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탈북 국군포로는 16명 뿐입니다.
한국전쟁 중 북한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고 탈북 국군포로 및 그 가족들은 북한에서 국군포로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권유린을 당했습니다.
이미일 이사장은 "한국전쟁 중 북한 무장 군인에 의한 민간인 침해문제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며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다했듯이 북한에 대한 책임규명 이후에 종전선언을 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군포로의 딸로 지난 2005년 탈북한 손명화 6.25국군포로가족회 회장은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 없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 추진 전에 관련 배경 및 상황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는 지적입니다.
손명화 6.25국군포로가족회 회장: 6.25전쟁으로 인한 그 유족들, 참전 유공자들과 현재 살아계신 분들이 몇분 안 됩니다. 그 분들에게 화랑무공훈장 한개라도 주면서 정부가 "미안하다", "챙겨주지 못했다" 이런 말이라도 해야 국군포로 가족 입장에서 종전선언을 받아들일 것 아닙니까. 정부가 포로로 잡혀서 돌아가신 분들 이름 석자라도 불러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아닙니까.
국군포로 출신으로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겪다가 지난 2000년 탈북한 유영복 씨는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폐기하지 않는 한 종전선언은 아무 의미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영복 씨 :북한이 핵무기 폐기하겠다는 조건에서 종전선언하면 좋겠죠. 그런데 북한이 미군도 철수하라 이런 조건을 내놓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텐데 이런 게 해소되면 종전선언이 의의가 있겠죠. 하지만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종전선언이 되면 우려가 됩니다.
이어 유영복 씨는 한국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토로했습니다.
유 씨는 "한국을 위해 싸운 국군포로들이 몇만명이나 있는데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서 죽임을 당했다"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한국 정부도 이런 문제를 꺼내지 않고 문제시하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종전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기자 목용재,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