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본의 재일 조선인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의 위상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생일을 축하하는 올해 태양절 행사에는 겨우 2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총련 관계자들은 조직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조총련의 쇠락하는 위상에 관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단적인 예가 조총련이 지난 4월 15일 주최한 김일성 생일을 축하하는 태양절 행사.
마키노 기자에 따르면 과거 2천명까지 모였던 이 행사에, 올해는 참석자 수가 2백명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마키노 외교전문 기자 :올해 4월 15일 태양절이잖아요. 올해는 2백명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평양에) 보고하면 화가 날까봐, 그냥 '축하 모임을 했다'는 사실만 보고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특별 영주권(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국적을 상실하게 된 조선인에게 부여된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약 45만 명입니다.
이 중 한국 국적을 선택한 사람은 90%로 약 40만 명인 반면, 북한 국적(조선적)을 선택한 사람은 약 5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북한 국적 대신 한국 국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키노 기자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한 한국 여권의 장점과 일본 사회 내에서 북한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 뿐 아니라,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후 재일 동포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의 영향도 컸다고 분석했습니다.
세대가 바뀔 수록 북한 국적을 선택하는 사람의 수도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키노 기자 :젊은 분들은 국적이 북한이라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일본 사람이거든요. 일본 말로 살고, 방식도, 생각도 (일본 식이고). 이 분들은 자식을 낳아서 조선학교에 보내 민족교육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 없이, 그냥 일본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현재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는 약 60여 개. 학생 수보다 교사 수가 더 많은 학교도 있습니다. 북한의 허가 없이는 학교를 폐교할 수 없어, 일부 학교는 휴교 중인 실정입니다.
조총련 본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도쿄에 위치한 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수십 명이지만,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부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총련은 일본 내에서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권리 보호에 힘썼던 조직이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평양에만 충성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동포들로부터 지지를 잃은 상태입니다.
일본 내 조총련의 상황에 대해 마키노 기자와 자세히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기자]일본 내에서 조총련의 위상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를 어떻게 보시나요?
[마키노 요시히로]옛날과 비교하면 총련의 역할과 임무가 많이 변질됐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힘이 있고, 일본 정부에게 정치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재일 동포들이 권리를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제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총련에는 평양만 바라보고 충성심 갖고 있는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재일동포들도 북한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는 걸 알고, '납치 문제가 있고 핵 개발, 미사일 발사를 하는 나라가 과연 좋은 나라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에서 고생하고 있는 친척이나 형제가 있어서 북한을 지지하지도 못합니다. 조총련이 재일동포의 지지를 많이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조총련 소속으로 활동하며 북한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키노 요시히로]재일동포 사회가 폐쇄적인 사회입니다. 예전에 일본인들이 많은 차별을 했기 때문에 재일동포들끼리 힘을 합쳐서 살아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맺어진 밀접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또한 일부는 총련에서의 지위가)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련 안에서 승진해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이 된다거나, 앞으로 혹시나 북일관계가 정상화가 되면 북한 외교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자]북한에 가족이 있는 재일동포들이 있나요?
[마키노 요시히로]있습니다. 친척이나 형제가 지금도 평양이나 지방 도시에 살아있는 재일 동포들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연락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북한 주민이 해외에 전화하려고 하면 전신국에 가야하고, 전화를 받고 싶어도 몇시에 누가 어디서 전화를 건다는 내용으로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근데 이런 전화를 계속하면 북한에 살고있는 친척이나 형제들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니까, 그런 걱정 때문에 일부러 연락을 안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자]현재 조총련과 북한 정권의 관계는 어떤 상황인가요?
[마키노 요시히로]현재 조총련 본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북한에 열렬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총련의 전용기관지 조선신보가 쓰는 내용은, 일본이나 미국을 비방하는 내용이 노동신문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러나 평양도 자체적으로 해외 정보를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신보의 내용이) 신뢰가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평양도 조총련에 대해 '일본에도 북한을 지지하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정치적인 선전으로 이용만 하고, 실질적으로 정보 획득이나 인간관계 구축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따로 지시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자]북한 정권은 조총련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마키노 요시히로]일단 재일동포가 북한의 해외 단체 중 가장 큽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힘이나 입지가 떨어졌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조선학교에 학생이 줄어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도 폐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양절에 재일동포가 참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도 나름대로 일본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총련이 예전만큼의 힘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규모 자금 송금도 해서 북한 정부의 자금이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이젠 그건 전혀 없고요. 그렇지만 이를 인정하면 북한의 위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인정도 하지 않고, 총련을 개혁하는 방한도 지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자]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젊은 세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키노 요시히로]옛날부터 계속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던 나이 많으신 분들은 계속 (조선적으로) 남아있지만, 젊은 분들은 국적은 북한이라도 머릿 속에서는 일본 사람입니다. 조선학교도 옛날에는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제는 조선학교에서 공식적으로는 치마, 저고리를 입어야한다고 평양이 말하는 대로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다닐 때는 무리해서 치마와 저고리를 입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일본 사회에서도 재일동포하고 결혼한다고 하면 (일본인) 부모님들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국제사회가 되고, 일본 사회에서도 자녀가 재일동포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재일동포들도 일본 사회에 익숙해진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자]그렇다면 조총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마키노 요시히로]총련의 미래에 대해서는 총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어렵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총련이 예전에는 동포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동포들은 동포들 나름대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양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총련이 예전에 해왔던 역할이 많이 약해지고 있어서 총련 사람들도 (미래에 대해서) 고민 중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