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 당국이 종교활동을 탄압하고 있다는 탈북민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1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북한 내 종교 자유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 가운데 100%에 가까운 99.6%가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23일 열린 북한 인권 관련 토론회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펴낸 ‘2019 북한종교자유백서’를 인용해 북한이 겉으로만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을 뿐 실제로는 종교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안현민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 연구위원: 내부적으로는 종교 탄압 정책을 시행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종교를 인정하고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는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종교 박해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백서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대부분인 98.7%는 평양이 아닌 지방에는 북한 당국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가정예배 장소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북한 내에서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비율은 4.1%인 557명으로 나타났지만 2000년 이전 탈출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불과 16명에 그친 것에 비해서는 크게 늘었습니다.
북한에서 종교 활동을 하다가 적발되는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이 가장 높은 수준의 형벌인 ‘정치범수용소 수감’을 꼽아 종교 활동에 대한 처벌 수준이 매우 높다는 인식을 보였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 2013년부터 17년 동안 취합해 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벌어진 종교 박해 피해자 생존율은 불과 22%로 나머지는 사망하거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종교박해 사건을 직접 겪거나 목격한 사례들을 조사한 결과 사망과 실종, 상해, 구금과 이동의 제한, 추방 등 매우 강력한 처벌이 가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교 활동 탄압 외에도 북한 내 전반적인 인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펴낸 ‘2019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감소세였던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과 피의자·구금자의 권리 등에 대한 침해가 다시 증가했습니다.
생명권 침해의 경우 지난 2000년대에는 전체 인권침해 사례 가운데 7%를 차지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13%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공개처형 등 사법집행에 의한 사망이 많았지만 이후에는 비공개처형이나 구금시설 내에서의 인권침해 등으로 인권침해 유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취임한 뒤 정권 안정과 사회질서 유지 정책을 강화하면서 형법을 개정하고 사회통제시스템을 강화한 데 따른 결과라는 겁니다.
다만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 장마당 등으로 인한 경제활동 활성화로 정보 유통이 늘면서 북한 내에서도 인권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소원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 연구원: 과거와 달리 시장활성화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한 것과 북한 형법상의 처벌기준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엔주재 한국대사를 역임한 오준 경희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조사가 북한 인권에 당장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준 경희대 교수 (전 유엔주재 한국대사): 북한 인권의 실질적인 개선을 도모하려는 모든 노력은 우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올바른 인식에 기초를 둬야 합니다. 이 같은 조사와 연구 활동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점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권장돼야 합니다.
한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한국 국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87.2%는 북한 내 인권 상황이 심각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