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북한 당국이 지방인민회의를 앞두고 대의원 후보자 선정단계에서 복수 후보 등장과 경쟁을 도입한 새 선거 방식을 적극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북한 주민은 긍정적인 평가도 내놓고 있지만 형식만 변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더 많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는 11월 26일 북한에서 도, 시, 군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됩니다. 4년에 한 번 진행되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북한은 지난 8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27차 전원회의에서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법을 수정한 후 첫 선거라며 주민들이 선거에 적극 참가할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헌법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은 도, 시, 군(구역) 지방인민회의 대의원선거 후보자 선정에서 이전과 달리 당국이 선출한 복수의 후보자 중에서 지역 주민들이 표결로 1명을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 관련기사)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국의 각 선거구에서 선거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당국은 새 선거법에 따라 당과 국가, 인민에 충실한 진정한 대표들이 대의원으로 선출되게 되는 이번 선거와 이들을 뽑는 선거자회의에 적극 참가할 것을 독려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지금까지 선거자회의는 당국이 추천한 후보자의 이름, 직장 직위, 경력, 공로 등을 소개하고 정식 대의원 후보자로 결정하는 형식적인 모임”이었다며 “각 인민반에서 동원된 50~60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참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선거자회의를 앞두고 경원군 읍에서는 각 선거구 별로 주민 100명 이상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며 인민반을 동원해 주민들을 회의에 참가시켰다”면서 “보통 저녁에 하던 이전과 달리 선거자회의가 대낮에 진행되었고 새 선거제도의 우월성과 당의 조치에 대한 선전사업이 있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2명의 대의원 후보 중에서 주민들이 투표로 최종 후보자를 선택하도록 한 새 선거제도에 대해 대의원들이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을 가지고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하는 중앙집권제원칙에 기초한 민주주의적 선거제도라는 주장을 폈다는 겁니다.
소식통은 “선거자회의에 이어 군당위원회가 선출한 군 대의원 후보자 2명 중에서 1명을 예비선거로 뽑았다”며 “달라진 선거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의원이 된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형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이들의 주장은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대의원 후보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에서 모든 대의원 후보자는 각 지역 노동당위원회 조직부가 선정합니다. 보통 간부가 대의원 후보자의 과반을 차지하며 일부 노동자, 농민 중 노동당에 충성하는 사람이 선발되기도 합니다.
또 각 도, 시, 군 인민위원회에 지역 인민회의와 대의원 관리를 담당한 대의원사업부라는 부서가 있으나 대의원들에게 회의 날짜나 필요한 지시 같은 것을 통보하는 일부 행정 업무를 수행할 뿐 후보자 선출 권한은 없습니다.
한국 통일부도 9일 북한이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경쟁'을 도입하는 등 선거법을 개정한 것에 대해 "실질적인 주민의 선거권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조치에 대해 "국제사회의 여러 비판과 경제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민 민심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조치로서 약간의 제도를 변경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같은 날 “백암군에서도 각 선구분구 별로 선거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백암군 읍내 선거구에서 2명의 군 인민회의 대의원 후보를 놓고 예비선거를 진행했다”며 “당국이 예비선거로 정식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적극 선전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4년 전 지방인민회의 선거를 앞두고 우리 기업소에 군 대의원 후보자 1명을 추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선정 기준은 35살 미만의 제대군인 청년 중 작업반장 혹은 세포비서를 하는 사람, 이런 대상이 없는 경우 제대군인 출신의 모범 청년 노동자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다행히 기업소에 세포비서를 하는 34살의 제대군인 청년이 있어 그가 추천되었는데 결국 그가 군 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며 “그런데 그가 군 대의원으로 하는 일을 보니 분기에 한두 번 회의에 참가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오는 게 다였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계속해서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통해 누가 최종 후보자가 되든 다 노동당이 뽑은 사람”라며 “말이 대의원이지 아무런 권한도 없고 인민을 위해 하는 일도 없는 노동당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