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북 주민들, 식량배급 정상화 원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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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 북한의 농작물 작황 상황이 양호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내년부터 배급이 정상화 된다는 소식이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식에 일부 주민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중에 농업대회가 개최되고, 내년부터 (식량)배급제가 정상화 된다”

최근 북한의 주요 도시들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말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이 토의되었다는 미확인 소식들도 퍼지고 있어 일부 주민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일 “식량난이 아무리 극심하다해도 배급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면서 “배급을 정상적으로 타먹고 있는 간부들조차 일반 주민들이 배급을 받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배급정상화는 곧 출근의 정상화, 장마당의 폐지를 의미한다”며 “2019년, (식량을 장마당보다 싸게 파는) 양곡판매소를 처음 설치하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하루 450그램씩 보름 분의 식량을 할인판매 해주고 대신 출근을 집요하게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당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보름 분의 식량을 주는 대신 개인의 식량판매를 금지하고 장마당까지 폐쇄했다”며 “직업이 없는 사회보장자들과 연로보장자들에겐 하루 230그램의 식량만 판매해 주어(살수 있도록 해줘) 하마터면 떼죽음이 날 뻔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정상적인 배급이나 양곡판매소에서 장마당보다 20-30% 정도 싸게 판매하는 식량을 모두 배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같은 배급이라고 해도 간부들은 배급소에서 돈을 내지 않고 식량을 공급받지만, 일반 주민들은 양곡판매소에서 돈을 내고 식량을 사야합니다.

북한에선 이런 상황도 배급정상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어찌됐든 식량을 주면 배급을 준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배급을 정상적으로 받는 간부들이 오히려 배급 정상화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자신들에게 차례지는(제공되는) 배급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배급을 주는 상황이 싫다는 것”이라며 “배급을 준다는 구실로 장마당을 폐쇄하고 개인 장사를 중단시키면 간부들에게 차례질 뇌물도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자강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4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배급정상화가 토의 되었다는 얘기들이 무성한 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면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식량과 관련해서는 어떤 문제도 상정되지 않았고 토의 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간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를 진행하고 헌법수정과 장애자권리보장법, 농업관개법을 비롯해 일련의 법안들을 개정하거나 통과시켰습니다.

다만 소식통은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식량문제를 토의하지 않았지만 이달(10월) 말, 평양에서 진행되는 (식량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내각 양정일꾼 회의에서는 식량문제나 배급정상화와 관련된 문제들이 토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소식통은 “요즘 들어 배급 정상화와 관련된 얘기들이 꾸준히 나오는 원인은 올해 농사가 그만큼 잘 되었기 때문”이라며 “농사가 아무리 잘되어도 비어있는 전쟁예비물자 식량창고부터 먼저 채워야 하는 만큼 배급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소식통은 “배급제가 정상화되면 그만큼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기에 벌써부터 배급정상화라는 말에 기겁을 하는 주민들이 많다”면서 “어른은 하루 450그램, 어린이와 사회보장자, 연로보장자들은 하루 230그램인 (무료든 할인판매 등 상관없이) 국가배급으로는 굶주림을 면할 수 없기에 배급제와 관련한 주민들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4일 “귀중한 곡식을 제때에 거두어들이기 위한 투쟁으로 들끓는 전야”, 5일 “평남의 전야마다 차넘치는 알곡증산 열의” 등의 기사들을 연이어 내보내며 전례없는 작황이 마련되었다고 농업부문 성과를 과시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