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인권 법규를 제정하는 등 일부를 수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이 22일 발표한 '2020년 전후 북한의 인권정책 동향 분석과 평가' 보고서.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보고서에서 국제사회가 북한 내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가운데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도 일부는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이 같은 문제제기와 책임규명 요구 등이 이른바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으로 대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인권 개선을 지향하는 여러 법규를 제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 2019년 11월 ‘대응조치법’을 제정해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와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경제제재 등을 ‘비우호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대응하는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법이 ‘공화국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를 비우호적인 행위 가운데 첫 번째 유형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등을 제정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 외부 정보 유입·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2021년 4월 제정된 ‘혁명사적사업법’에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개인 우상화 대상으로 처음 명시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집권 10년을 앞두고 우상화에 힘쓰던 시기에 제정된 것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에 한정됐던 ‘수령’ 호칭과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김정은 이름 앞에 붙는 사례가 잦아지는 등 이른바 ‘김정은주의’라는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하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는 것입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혁명사적사업법은 유일영도체계 수립을 혁명사적사업의 기본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며 “향후 김정은으로 상징되는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사상·정보·문화통제가 지속·강화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법규가 외부로부터의 문제 제기 등에 높은 수위로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균형적이며, 수사적인 대응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인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다만 북한이 지난 2020년 제정한 제대군관 생활조건보장법,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 등 인권 관련 법률, 특히 2021년 제정된 ‘구타행위방지법’에 주목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수용한 측면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법률에 나타난 구태행위에 대한 제지 및 신고, 조사 및 처리, 손해보상과 처벌 규정 등에 주목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폭력 문제, 특히 여성 폭력에 대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 등을 통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영향이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탈북민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구금시설에서 이뤄진 고문 및 가혹행위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간 이후인 2014~2015년쯤부터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는 증언이 나왔다면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로 인해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방침이 상부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증언을 전했습니다.
이어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 인권 실태가 개선되고 법제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이 수용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앞서 COI는 지난 2014년 북한 내 인권 침해 상황을 고발하고 이를 반인도범죄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