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북 인권보고서’ 첫 공개 발간...“청소년도 공개처형”

0:00 / 0:00

앵커 :한국 정부가 2018년부터 매년 비공개로 작성해 온 북한인권보고서가 올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심각한 북한 내 인권 침해 사례들이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담겼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30일 탈북민 5백여 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북한인권보고서는 지난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2018년부터 매년 발간돼 왔지만,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탈북민 개인정보 노출과 북한의 반발 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바꿔, 올해부터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리는 데 중점을 두기로 한 것입니다.

보고서는 북한 내에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나 공개 처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주민들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특히 ‘즉결 처형’ 사례에 대한 증언이 지속적으로 수집됐는데, 살인 등 강력 범죄 뿐 아니라 마약 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유엔 자유권 규약상 제한되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형이 집행됐다는 설명입니다.

여성들이 가정과 학교, 군대, 구금시설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과 청소년이 처형된 사례도 제시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18년 청진시 강변에서 미신 및 종교행위로 처형된 주민 2명 가운데 1명이 18살 미만이었고, 2015년 강원도 원산시의 한 경기장에서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16~17살 아동 6명이 한국 영상물 시청과 아편 사용 등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곧바로 총살됐다는 것입니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당시 임신 6개월이었던 이 여성이 손가락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 됐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유엔 자유권 규약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을 엄격히 제한하는 한편, 18살 미만인 자나 임산부에 대한 사형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경 인근에서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즉결 처형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2020년 이후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국경 봉쇄 지역에 들어갔다가 실제로 사살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 보위부가 관리하는 구금소 등에서 동성애나 성매매 등을 이유로 구금된 자들이 비밀 처형됐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보고서는 경제난으로 식량 배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주민들이 개인 경제활동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의료 체계와 관련해 무상치료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의료진에게 현금이나 담배 등 현물로 사례를 해야 하며 진료비 외에 약품이나 소모품, 의료기 가동을 위한 연료비 등을 대부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증언도 이뤄졌습니다.

정치범수용소 내 수용민에 대한 처형 및 강제노동과 한국전쟁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에 대한 감시 및 차별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도 고발됐습니다.

증언자들은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공개 처형이나 비밀 처형이 빈번히 이뤄지고, 수용자들은 광산 등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전쟁 국군포로와 가족들은 진학과 직장, 군 입대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 받으며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의 직업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고, 납북자들 가운데 다수 역시 광산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2017~2022년 탈북한 508명의 1천 6백여 개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전체 조사대상 3천 412명 가운데 문답서를 작성한 탈북민은 2천 75명”이라며 이 가운데 2017년 이후 탈북민의 기초 자료로 쓸 수 있는 유의미한 증언을 추려 보고서에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증언자 남녀 비율은 비슷했고, 연령대는 20대가 31.1%로 가장 많았습니다.

북한 내 거주지는 60% 가까이 차지한 양강도가 가장 많았고 함경북도와 평양시가 뒤를 이었는데, 접경지역 사례가 많이 이용된 것과 코로나에 따른 국경 봉쇄로 탈북민이 급감하면서 2022년 이후 사례가 매우 적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보고서가 제시한 사례들은 유엔이나 한국 국내·외 민간단체들이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다룬 바 있지만, 이번에 한국 정부의 보고서 발간을 통해 공식적인 재조명이 이뤄졌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2016년 초당적 협력으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발간하는 한국 정부의 첫 공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향후 연례보고서 형태로 매년 발간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