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빈손 귀국길 북 노동자 “총 한 자루 구해달라”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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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과 중국 간 국경이 열리면서 중국에 파견됐던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귀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거세지는 모양샙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강동완] (중국에서 일했던) 북한 노동자 중에 저한테 '총 한 자루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 노동자가 있어요.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한 북한 노동자에게서 뜻밖의 부탁을 듣고 귀국을 앞둔 중국 내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딱한 현실을 알게 됐다고 지난 23일 RFA에 털어놨습니다.

[강동완]얼마나 절박한 상황이면 저한테 총을 구해달라고 얘기를 했겠습니까? 그 총의 용도가 뭐였냐면 바로 자기를 관리하는 그 직장장을 쏴 죽이고 싶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지난 3년 동안 해외에 나와 일을 했는데 정작 손에 쥐고 있는 건 단돈 50달러도 되지 않고, 이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3년간 노동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거죠.

지난해 8월, 코로나19로 인해 막혔던 북중 국경이 3년여 만에 열리면서 그동안 중국에서 발이 묶였던 북한 노동자들의 귀국 행렬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손에 쥔 돈이 얼마 되지 않은 북한 노동자들과 공장 관리원 간 마찰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 신문 외교 전문 기자 역시 이날 북중 외교 소식통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라며 북한 노동자들의 격앙된 상황을 귀띔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중국에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이 높지 않고, 그 임금 안에서 여러 가지 상납을 해야 하는 돈이 많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까지 있어서 사건 사고가 많이 있었나 봐요. 북한서 파견된 당 비서나 국가 보안성 (소속) 이런 사람들이 그 수습을 했던 것 같아요.

앞서 고영환 한국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도 최근 북한 소식통 등을 인용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 지린성 내 공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여러 곳에서 거센 항의를 이어갔다고 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를 중국에 파견한 국방성 산하 여러 회사가 코로나 사태로 북중 간 왕래가 끊긴 지난 2020년 이후 중국 측이 지급한 임금 가운데 북한 노동자 몫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모두 전쟁 준비 자금 명목으로 북한에 보냈습니다.

중국 회사가 지급하는 노동자 1인당 급여 중 60~80%에 달하는 금액을 북한에 충성 자금으로 상납하고, 남은 금액 중 또다시 수시로 북한서 요구하는 각종 기부금으로 떼이고, 최종으로 남은 5~10%에 불과한 돈이 노동자 몫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별로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지린성이 속한 중국 동북 3성에서 사업을 해온 한인 안 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씨는 25일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통화에 “이 일대 북한 노동자 한 달 임금은 2천100~2천500 위안(미화 300~350달러) 선이다. 중국 내 일반 노동자 임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수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자 1인당 한달에 2천500위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충성 자금으로 60%인 1천 500위안을 상납하고, 남은 1천 위안 중 기부금으로 500위안을 떼면 노동자 몫으로 돌아오는 돈은 고작 500위안, 미화로 70달러에 불과합니다.

관례상 노동자 몫인 이 돈은 중국 회사로부터 북한 측 노동자 관리 회사 간부가 받아서 관리하다가 노동자들이 귀국할 때 그동안 모아둔 임금을 한꺼번에 지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북한 측 관리 회사 간부가 이 남은 돈마저 모두 북한으로 송금을 해 버렸고 결국 이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은 귀국할 때 한 푼도 챙기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겁니다.

한국 탈북자 동지회 서재평 회장은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에 고강도 노동까지 이중고에 시달려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재평] (월급을) 중국인들의 한 3분의 1 정도 받나? 노동자들이 밖으로 거의 나가지 못하고 거의 갇혀 있잖아요. 완전히 수감된 상태에서 일을 한다고 봐야죠. 저는 그 시설(북한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국인하고 대화해 봤는데 중국인 자체가 '야 그런 데서 몇 년을 견디는 게 보통이 아니다.' 그 사람들(북한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연장 작업을 그렇게 많이 한대요.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고, 특히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인 감독자들이나 북한 감독자들에 의해서 상당히 노동 강도가 높고….

서 회장은 중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암울한 숙소 분위기를 전하며 현재 이들이 처해있을 허탈할 심정을 대변했습니다.

[서재평]저녁이면 서로 울고, 심지어 3~5살짜리 아이를 두고 온 여성 근로자들 같은 경우는 저녁이면 애 사진을 붙들고 운대요. 또 어린 나이에 (중국에 파견된) 17~18살 어린 친구들은 부모가 그리워서 울고. 하여튼 그 숙소가 울음바다가 된대요.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중국으로 파견됐다가 코로나19로 인해 4년 가까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북한 노동자는 약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가족과 생이별했던 아픔을 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도 잠시, 이들의 느닷없는 ‘빈털터리 귀국’ 소문이 돌면서 중국 내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몰려 있는 국경 지역에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