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특집]“북 여성, 당국에 더이상 무조건 순응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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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여성들이 전통적 역할을 수행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이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당의 정책과 사상 관철에 앞장설 것, 주부,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 자식들에게 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고마움을 심을 것…

북한의 노동신문이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1면에 실은 사설에서 나열한 북한 여성들의 책임 중 일부입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영주 부연구위원은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이는 육아, 생계 유지, 노력 동원 등의 책임을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북한 당국의 기조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김정은 체제는 시장활동으로 인한 북한 주민, 특히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를 관리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자녀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심기 등 여성들의 가정 내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북한 여성들은 당국의 다양한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 보다는 가능한 회피하는 추세라며 북한 여성들의 결혼 또는 출산 기피 현상 등이 이를 반영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북한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당국의 지시에) 무조건적인 수용, 순응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출산을 기피하거나 결혼을 기피하거나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고 노력 동원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는 다 참여를 했다면 요즘은 돈을 주고 참여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한국의 통일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북한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고서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배급제도 와해로 당국이 개인들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화와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결혼, 피임, 출산 등 문제에서 여성의 선택권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70년까지는 출산 장려 정책을, 1970년 이후부터는 출산 억제 정책을 시행하고 1990년부터 다시 출산 장려 정책으로 회귀했지만 북한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북한 여성들은 주기적으로 내려오는 당국의 임신 중절 지시 등으로 불편을 느끼지만 그 때문에 피임이나 임신 중절을 못하는 여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북한의 성 통제정책 실행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진단했습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난해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의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9명으로 세계 평균인 2.4명에 미치지 못합니다.

유엔 경제사회국의 세계피임사용(World Contraceptive Use)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피임률은 2017년 기준 70.2%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입니다.

보고서는 다만 피임과 임신 중절 관련 북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고난의 행군 이후 30여 년간 북한 여성들이 육아와 생계를 전적으로 떠맡게 된 불평등한 구조에 기인한 결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국제 기준에 따르면 (북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런데 이는 일상 생활과 의식주, 자녀 양육을 여성들이 책임지는 상황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여성들의 내핍이나 희생을 강제하는 구조 속에서 나온 결과라서 좋게만 볼 수 없습니다.

보고서는 또 북한 당국이 여성 중심의 피임 문화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아 이로 인한 여성의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피임법은 여성의 자궁에 장치, 즉 루프를 삽입하는 것인데 이는 5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지만 상당수 북한 여성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크게 아프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국가가 모든 선전 수단을 장악하고 국가 주도 의료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남성 피임법을 보급하지 않아 북한 사회에서는 피임이 온전히 여성의 책임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경제사회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북한 내 루프 설치에 의한 피임 비율은 65.4%로 단일 피임 방법으로는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남성의 피임 수단 중 가장 보편적인 콘돔의 사용 비율은 0.2%로 전무한 수준입니다.

기자 이정은,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